《텃밭에서 만난 동반자들》

설혜린 개인전 전시 서문

by 박제언 Curator Jenny



b65c8f0071bcc.jpg 《텃밭에서 만난 동반자들》(2024, 삼세영 갤러리) 전시 전경 c.설혜린


불교의 사성제에서는 삶이 고통이며 고통의 원인이 욕망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역시 인간의 욕망과 의지가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며 충족되지 않은 욕망에서 불안과 고통이 야기 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주어진 삶에서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욕망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오는 고통에서 우리는 무엇을 희망으로 찾아야 할까? 작은 의지마저 좌절될 때 인간은 어떤 사유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


작가 설혜린이 보여주었던 2017년 작품 <무명등 (無明燈 )>(2017)은 그에게 위의 질문에 대한 작은 답변과도 같았다. 그는 홀치기 염색을 사용한 천을 이용하여 무명등 무리를 만들고 관객의 이름을 붙여 달았다. 우연적인 효과로 만들어지는 염색의 과정은 작가에게 삶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순간을 상징했고 아름답게 염색되었다가 예상치 못하게 번져가는 천 자락에서 작가는 삶 속에서 반복되는 고통과 그럼에도 어느 순간 찾아오는 우연한 행복의 모습을 발견했다.


2021년 작 <만다라(Mandala)>(2021)는 작가가 고통의 순간에서 치유로 넘어가는 교두보 같은 작업이다. 그는 꽃을 끓이고 저어 색을 내거나 사람들에게 흩뿌리며 일종의 종교의례와 유사한 행위를 통해 명상과도 같은 치유를 경험시켰다. 퍼포머와 꽃을 가지고 만다라와 같은 형상을 그 주위를 도는 행동은 그에게 반복되는 회귀를 의미하였지만 그 회귀는 이전 작품 <속박의 잔재, 회귀>(2017) 또는 <시작, 고통, 굴레>(2017)에서 보여준 것과는 다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작품 <만다라>에서 다른 퍼포머들과 일종의 제의 같은 체험을 함께했던 경험은 작가에게 ‘관계’에 대한 인식을 관객으로까지 확대하는 계기가 된 것처럼 보인다. 설혜린이 선보이는 이번 전시 《텃밭에서 만난 동반자들》(2024)에서 그는 보다 본격적인 관계적 사유에 관해 이야기한다. 2022년부터 식물 ‘쪽’을 기르고 푸른색의 니람(泥藍)을 재배하여 염색 작업을 위한 염료를 직접 경작하기 시작한 작가는 텃밭에서 가족들과 함께 땅을 개간하고 풀무질하는 경험 나누고, 이웃 경작자에서 길을 지나가는 행인에 이르는 다수의 동반자를 마주하면서 타자와 상호작용을 하는 상태와 그것을 통한 치유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가 그의 저서 관계미학(Esthétique relationnelle)(1998)에서 "예술 작품은 더 이상 독립적이거나 고립된 객체가 아니라, 인간관계와 그 사이에서 생기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된다."고 언급한 맥락에 따라, 설혜린의 ‘텃밭’은 단순한 농업 공간을 넘어 사회적 상호작용의 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상호작용은 인간들 간의 관계뿐 아니라, 자연, 식물, 동물, 소리 등 다양한 타자들과의 관계를 포함하며 예술이 사람들이 공동체 내에서 상호작용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공간적 매개체로서 기능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는 것이다.


작품 <텃밭에서 만난 동반자들>은 4가지 섹션으로 구성된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으로, 관객은 전시장에서 직접 모종을 심고 풀을 밟으며, 자연 속에서의 감각적 경험을 통해 작가의 경작과 노동을 체험하게 된다. 부리오가 짚어낸 것과 같이 동시대 미술에서 "관람자는 더 이상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니라, 작품의 일부가 되는 존재이다. 그들의 경험과 참여가 예술적 의미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한다. 관객은 이 전시에서 자신의 몸과 감각을 통해 일방향의 미적감상을 넘어 타자와의 관계 맺는 과정 자체를 체화하며 작품의 의미를 궁극적으로 완성시키는 한 조각이 되는 것이다.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진 전시에서 1전시실은 총 4개의 세션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세션에서 관객은 모종삽을 사용해 직접 모종을 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텃밭에서 농사를 짓는 듯한 경험을 하며 노동과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느낄 수 있다. 이 세션은 부리오가 강조한 사회적 상호작용과 공동체적 경험을 촉발하는 요소이다. 모종을 심는 과정은 텃밭에서 이루어지는 실제적인 농사 노동을 예술적 경험으로 변환한 것이며, 이를 통해 관객은 자연이라는 '타자'와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작가가 경험한 농사라는 일상적 노동은 관람자에 의해 재현되며, 관객은 전시의 일부로 참여하면서 의미를 형성한다.


두 번째 세션에 관객은 작가가 조성한 풀밭을 직접 밟아보는 경험을 한다. 텃밭에서의 물리적 경험을 더욱 감각적으로 확장시키는 이 세션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실감 음향(Immersive Sound) 시스템을 통해 구현된 다양한 소리이다. 관객은 발걸음에 따라 작가가 텃밭 주변에서 들었던 자연의 소리, 자동차 소리, 새소리 등을 듣게 되며 주변 타자들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다.


세 번째 세션에서는 관람자는 버드나무가 몸에 스치는 경험으로 초대받는다. 이는 자연과의 물리적 접촉을 통해 감각적 경험을 더욱 강화시키는 세션이다. 자연의 한 부분인 버드나무와 접촉하고, 접촉순간 센서를 통해 나는 소리를 경험하면서 관객은 자연의 존재와 그것이 자신의 몸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적으로 체험한다.

<텃밭에서 만난 동반자들>이 확장되는 순간은 바로 네 번째 세션이다. 이 세션에서 관객은 작가가 텃밭에서 촬영한 영상을 감상하고, 꽃 모양의 조형물을 수확하며, 그 과정에서 실제 씨앗을 얻는 경험을 하게 된다. 씨앗을 얻어 집으로 가져가는 과정은 예술적 행위가 일상적 경험과 연속성을 가지며,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는 부리오의 관계 미학적 개념과도 닿아있다.


두 번째 전시실에서 관객은 작가가 2년여간 길러온 실물 ‘쪽’이 심어진 텃밭을 실제로 대면하게 된다. 텃밭 주위에 놓인 염색된 천과 회화작품들을 감상하며 관객은 단순히 작품의 완성된 상태뿐 아니라 그 과정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천과 캔버스는 독립된 작품으로서만 기능 할 뿐 아니라 작가가 텃밭에서 이어온 노동과 체험의 순간에 대한 예화(instantiation)로 작동하는 것이다.


전시에서 작가가 반복적으로 관객에게 관계에 대해 체험시키며 전하고자 하는 감각은 ‘연결’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초기 작업에서 작가 설혜린이 천착했던 주제인 고통과 그것의 연기성에서 그는 끊임없는 굴레에 대해 연상하며 일종의 승화를 염원했던 것처럼 보인다. 작가가 찾은 작은 해답 중 하나는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통한 일종의 환기였다. 텃밭에서 경작하며 인식된 그의 삶 주변의 수많은 동반자들은 인식하지 못한 순간에도 그의 주변에서 상호작용을 하며 작가의 삶에 개입하고 있었다. 그 동반자들은 어떤 순간에는 함께 텃밭을 경작해 준 가족이었고 작은 호박을 선물한 이웃이었으며,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였고 산책자의 발소리였다. 또한 작가의 손길에 따라 연약한 뿌리를 이어 묵묵히 자라난 ‘쪽’의 잎사귀 역시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인간의 현존재에 관해 이야기하며 인간이 세상과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은 항상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과 연관되어 있으며, 근본적으로 ‘존재의 장막’에 가려진 상태에서 서로를 이해하기에 타자를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혹자는 공동체와 타자를 통한 위로나 치유가 일정 부분 지나치게 낙천적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관객에게 씨앗을 쥐여주며 작은 소망을 전한다. 부디 이 씨앗이 당신에게 동반자가 되기를, 그리고 싹을 틔우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될 주변의 소리와 동반자들에 대한 인식이 당신의 삶에 작은 위로로 다가올 수 있게 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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