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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제작소 Jan 12. 2021

거대한 풍경에 놓인 정물의 삶

지아 장 커 감독의 <스틸 라이프>

본 글은 스포일러와 줄거리, 평가가 없는'3無 영화읽기' 입니다.




‘2천년의 역사가 2년만에 잠겨 버린 곳’ 샨사는 차오르는 댐의 수위와 함께 떠나가고, 잠기고, 무너지는 과정을 겪는다. 영화 속 모든 풍경은 잠긴 것과 잠길 예정인 것, 무너져 내리는 것들과 그 위에 새롭게 건설된 것들의 연속이다. 


이러한 풍경 속에서 사람은 댐의 수위에 따라 떠나가고 이동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어느 누구도 감격스러워 하거나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노자가 말한 물의 이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영화 속 산샤에 들러붙어 살아가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시간은 댐의 수위가 차오르는 과정까지의 시간이며,  그 시간 속에서 한정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긍정과 부정이 없으며, 기쁨과 분노가 모두 차오르며 흘러가는 물을 닮은 사람들. 


<스틸 라이프>는 산샤댐 건설의 과정과 피해, 개발에 밀려 황폐해져가는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새롭게 건설되는 것보다 무너지고 잠기는 것들이 더 빠른 속도를 내는 곳에서 과거에 묶여, 혹은 그 과거를 확인하기 위해 산샤를 찾거나 산샤에 머문다. 


풍경이 주인공인 영화 속에서 그저 지금, 이 영화의 시간 속에서 제3기 수위가 차오르기 직전인 2기와 3기 사이의 한정된 시간이 보여주는 풍경과 그 풍경에 둘러붙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놓인다.

산샤(三峽)로 한 남자가 스며든다. 16년 전 떠난 아내가 남긴 주소가 적힌 쪽지 한 장을 들고 아내를 찾는다. 이미 그 주소는 수몰지역이 되었으며, 철거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휴일이면 아내를 찾아 나선다. 


소식이 끊긴지 2년 째 남편을 찾아 산샤로 찾아 든 또 한 명의 여자. 그녀 역시 산샤의 풍경을 배경으로 남편을 찾아 산샤를 떠돈다. 


지아 장 커 감독의 영화 <스틸 라이프>는 산샤라는 공간, 하루 하루 모습을 달리하는 그곳이 주인공이다. 그 주인공이 배경이 되고 은유가 되어 풍경 속에서 하루 하루를 버텨가는 인생들을 배치시킨다. 2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가 16년의 공사를 거쳐 단 2년만에 물에 잠겨 버린 곳으로 16년전 헤어진 아내를 찾아, 2년 째 소식이 끊긴 남편을 찾아 산샤를 찾아 온 것이다. 

짧게 등장하고 퇴장하는 이들의 모든 사연은 깊이와 넓이가 있겠지만 카메라는 그 속에 머물지 않는다.

샨샤가 변화를 거친 기간과 그곳으로 스며든 이들의 시간이 나란히 병치된다. 지폐속에 남은 산샤의 아름다웠던 풍경을 이야기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화면에 놓는다. 그 속에 100만 명 이상의 사람이 이주했으며, 유구한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했던 장소가 어떻게 수몰되어갔는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름다웠던 과거의 풍경과 아름다운 지금의 풍경이 교차된다. 자연이 만든 풍경과 인간이 만든 풍경이다. 자연이 만든 풍경이 물 속에 잠겨 갈 때, 인간이 만든 풍경은 스스로가 만들었던 것을 허무는 과정에 드러나는 폐허의 아름다움이며, 그 폐허 위에 장엄하게 건설된 다리와 댐의 모습이다. 영화 속에서 두 번의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두 스스로가 만들어 낸 아름다움 위에서 인간은 춤을 춘다. 


풍경이 주인공인 영화 속에서 그저 지금, 이 영화의 시간 속에서 제3기 수위가 차오르기 직전인 2기와 3기 사이의 한정된 시간이 보여주는 풍경과 그 풍경에 둘러붙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놓인다. 짧게 등장하고 퇴장하는 이들의 모든 사연은 깊이와 넓이가 있겠지만 카메라는 그 속에 머물지 않는다. 


그렇게 영화는 끝까지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몇 개의 약속을 하지만 그 약속이 희망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불행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도 않다. 구구절절한 사연과 현재의 모습이 불행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잣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철거의 과정에 유적이 나와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 이들과 철거 현장에서 끊임없이 무너뜨리는 이들과 그 위에 거대한 공사를 완성한 이들 모두가 산샤댐 수위에 맞춰 살아가는 삶이다. 거대한 공간(혹은 풍경)이 주인공인 영화 속에서 인간은 영화의 제목처럼 하나의 ‘정물’로 머문다. 

그 ‘정물’은 댐의 수위에 따라 위로 이동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떠나갈 것이다. 영화 속 풍경과 정물 속에서 UFO가 하늘을 날고, 창밖으로 보이던 건물이 갑자기 로켓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을 목격하더라도 놀랍거나 당황스럽지 않다. 


그것은 영화 속 풍경(산샤)에 놓인 정물(사람)의 삶이 어떤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놀랍지 않은 모습으로, 역사가 수몰되고 새로운 건설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펼치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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