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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달 Feb 18. 2023

누가 똥쌌어

갑자기 100번 글쓰기 20

그날은 내가 아르바이트로 학원에 나가는 날이었다.

매번 출근하자마자 큰일을 보는 학원의 가장 대빵 강사가 화장실에서 나오며 '돼지야돼지야 화장실 막혔어 처리 좀 해줘'라고 서버를 잡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원장에게 이야기를 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원장은

"난 비위가 약해 그런 거 못해 자기 똥은 자기가 치워야지"

라고 하였으나 그는

"내가 쉽게 뚫렸으면 이야기 안했지"

하며 자신의 책상으로 쪼르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똥은 그럼 누가 치우는 것인가.

데스크 여자 직원과 여자 팀장이 둘이서 뽁뽁이를 가지고 와서 남자화장실에 가서 한참을 시름한다.

"아 절대로 안 내려가요 어떡해요"

"비닐을 가지고 와서 퍼낼까"

두 처자는 화장실과 데스크를 오가며 종종거린다.

나는 모르는 척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가서 같이 치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하수구 업체만을 하염없이 찾아보았다.

결국. 데스크 직원이 수십번의 시도 끝에 성공의 환호를 하며 나왔고 그와 동시에 원장은 서버연결을 성공하며 그날의 총체적 난국은 해결이 되었다.


그래서 자신이 싼 똥은 자기가 치우라는 말이 있나보다란 하는 깨달음. 자신의 똥을 치우지 않는 사람을 결코 좋아하거나 신뢰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내 똥을 치운다는 것 자체가 싫을 것 같은데 자신의 치부를 남에게 던져서 해결하게 하는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것인가. 평소 실력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으나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독불장군처럼 나만 옳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긍정적으로도 생각했던 고지식한 태도가 순간적으로 백프로 비호감으로 전환되었다. 그 무책임한 똥때문에.


우리집 보슬이는 밤 10시가 되면 항상 공놀이를 위해서 산책을 나가야 한다. 급하면 종종 나가기 전에 흥분하여 집안 아무데나 똥을 싸버리거나 하는 짓을 하곤 하는데 어제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공놀이를 한참 하고 다시 엘레베이터를 타는데 문 바로 앞 정중앙에 똥이 한덩어리 크게 있다. 엘레베이터 가장 끝에 괴로워하는 두명의 입주민과 함께 다시 올라오며 이 똥은 보슬이가 나가면서 누었던 똥인데 내가 인지하지 못한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가졌다. 보슬이의 똥은 우리의 똥일 터인데 이것을 방치하는 것은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매우 무책임한 짓일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우며 15프로 정도 아닐 가능성이 있더라도 내가 치우자는 마음으로 다시 나가 그 똥을 치웠다. 애매할 때는 남의 똥일지 모르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책임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무신경하기 이를 데 없는 내가 보슬이가 똥을 싼 것을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농후했기에 치운게 컸지만.


결국 책임이란 건 부끄럽지 않으려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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