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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달 Feb 20. 2023

막돼먹은 보슬씨

갑자기 100번 글쓰기 21

동네 친구 언니네 집에 그 집 시댁 강아지가 가끔 와있는다. 하얀색 포메라이언인데 귀티 잘잘에 케어받은 티가 팍팍나는 부잣집 강아지 클래스.

그 아이는 일주일에 세 번 강아지 유치원을 가는데 이곳까지 셔틀이 안 와 그 언니는 그 아이가 와 있을 때마다 라이드를 하곤 한다.

- 근데 강아지들이 확실히 배운 티가 나더라. 예의도 바르고. 얘들도 큰 개가 괴롭히면 선생님한테 달려간대

- 우리 보슬이는 막돼먹었는데 어쩌냐. 아주 자기 멋대로 하고 사는데


도무지 배운 티가 안 나는 우리집 보슬이는 밤마다 나를 두 시간에 한 번씩 깨운다. 밥은 바닥에 뿌려줘야만 먹고 자기 기분 나쁠 때는 으르렁거리다 못해 물기도 한다. 길가는 다른 개한테 미친듯이 짖어대고 의기양양하다. 완전 자기 멋대로.

아무데나 털썩털썩 누워서도 잘 자고 똥도 지가 누고 싶은데다 눌 때도 많다.

실은 내가 케어에 젬병이라 그냥 옛스럽게 키우는 것도 있어 언뜻 보면 유기견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계층 차이가 확연해보인다.

관리견들에게 볼 수 있는 멋진 컬을 찾아볼 수 없는 자연견의 형상이 더 좋기도 하다만 게으른 자의 핑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매일 밤 열 시 화끈한 공놀이를 농구장에서 해주고 웬만하면 낮산책 한 번은 꼭 해주고 있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자면 할 수 있다. 진짜 이 녀석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잖아!


오늘은 무얼 잘못 먹었는지 계속 하얀 거품토를 한다. 모두들 걱정스런 얼굴도 쳐다보니 천진난만하게 뭐 좋은 일이 생기나 쳐다본다. 한 달 전에는 눈길에 데리고 나가 공놀이를 했더니 발바닥에서 피가 나 기겁을 했었더랬다. 내내 건강하게 괴롭혀 힘들다가도 이상이 생기면 모두들 가족으로 여기고 근심을 한다. 너 비록 막돼먹은 녀석으로 자라나고 몰골은 봉두난발일지라도 사랑받으며 자유롭게 활개치고 있는 거지.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자위하나...

오늘 토하는 모습을 보니 좀더 신경을 써주자 식겁해서 다짐을 했다. 버르장머리 없고 배운 게 없는데다 없어 보이든 말든 무엇이 중요하냐. 건강이 쵝오야! 오래오래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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