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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달 Sep 11. 2019

나는 한때 에어비앤비 슈퍼호스트였다.

그 시간들을 기억창고에 차곡차곡 쌓아올리다

며칠전 조지아와 축구경기를 하는 것을 보던 남편

“조지아란 나라도 있네”

“우리 에어비앤비 왔던 여자가 조지아 얘기 엄청 했잖아”

“그래? 전혀 기억이 없는데?”     

그랬다. 조지아가 와인의 최초 발상지라고 하며 그곳 와인을 좋아한다던 미국여자를 보고 나는 그 곳에 여행을 가야겠다고 한참을 찾아본 적도 있었건만 남편은 그 부분을 깔끔하게 삭제시켜버린 것이다.

“그 거만하  여자 기억 안 나? 집 잘 산다고 엄청 자랑했는데. 경비행기 타고 말 탄다고 그러고.”

“그러고 보니 기억나는 것도 같은데. 남자친구가 보트 타다가 죽었다고 하던 여자 아니야?”    


이런 제멋대로 기억력들이라니.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듬성듬성.  시간이 흐르면 그것조차 남겨지지 않을 것이다.  기억의 객관성과 지속성을 믿지 않는다. 왜곡과 삭제는 앞으로 더 빠르게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나는 2014년부터 최근까지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해왔다. 적어놓고 나니 짧지 않은 기간이네. 그래서 이제는 휴업중으로 어쩌면 폐업의 수순을 밟고 있는 사라져가는 그날들의 기억을 호출해 더 잊기 전에 서랍에 차곡차곡 넣어봐야겠다.



처음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것은 2013년 캐나다 밴쿠버에 언니, 아이들과 함께 여름연수를 가면서부터이다. 장기간 투숙을 하기 위해 우리는 조금이라도 싼 숙소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두 아줌마는 예산절감을 위해 열심히 밥을 해댈 의지가 넘치고 있었고 그러기위해선 부엌이 필수였기에 에이비앤비란 플랫폼을 처음 발견하게 되었을 때는 꽤나 기뻤다. 게다가 호텔에서 지내는 데 드는 비용에 비하면 비교적 아름다운 가격이었다. 그렇게 2주 코퀴틀람과 1주 빅토리아에 독립된 공간의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밴쿠버 아일랜드에 위치한 빅토리아에서는 콘도 하나를 빌렸는데 낮에 스물스물 마리화나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빼곤 좋았다. 매일 장을 봐서 세끼를 꼬박꼬박 해먹으면서 제법 현지인처럼 살았다. 호텔이 줄 수 없는 맛이 이거구나 싶었고 에어비앤비 예찬론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두번째 예약한 코퀴틀람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사진설명과는 다르게 1층이 아닌 반지하라는 사실이 마음이 상했지만 이제와 어쩌냐 하는 마음에 뭐라 하지 않고 짐을 부렸다. 가격이 반지하란 것을 고려하면 과한 면이 있었지만 깨끗하면 되었다고 애써 언니와 나는 만족하려고 노력했다. 문제가 된 것은 그곳을 퇴거하고 난 후였다. 자신의 집 열쇠가 고장났으니 우리에게 수십만원에 달하는 돈을 지불하라고 에어비앤비를 통해 요금이 정해져 메세지가 온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열쇠를 고장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열고닫고밖에 하지 않았다고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이지 우리는 예약시 반지하라는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지만 참았다. 라고 답장을 보냈다. 이에 너희들은 그래도 사슴을 보고 좋아하지 않았냐고(너네가 풀어놓았냐!) 또 나가면서 좋은 시간 보냈다고 웃으며 말해놓고 무슨 소리냐는 황당한 메일을 보내 우리의 분노게이지를 상승시켰다. 한국에서는 예의상 아무리 안 좋아도 헤어질 때는 웃는 얼굴로 마무리 짓는다고 얘기했지만 막가파 호스트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여 계속 서로의 메세지는 거칠어졌고 그 와중에 에어비앤비는 아무런 중재역할을 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에어비앤비와 연결된 카드를 없애고 그 계정을 죽이는 것으로 불쾌하고도 찝찝한 마무리를 하고 말았다.


그런 에어비앤비 본사의 무책임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련이 남았다. 여행자들이 가지고 다니는 공기도 쐬고 싶고 식사 한끼 나누며 이런저런 세상사람들과 무려 '영어'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영어도 잘 못하면서. 같은 공간에서 방 하나를 내주는 게 실은 그리 심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였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뭘 믿고 집에 들이냐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여행자'는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믿음, 오가는 메세지를 통해 그 정도는 감별해낼 수 있다는 자신 정도가 그들의 부정적인 물음에 대한 답이였던 거 같다. 모든 일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조차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있지  않으면 어떤 일도 시작되지 않는다. 따지지 않고 저지르는 것은 내 잊혀진 적성이기도 했기에 망설이는 남편을 설득해 무조건 직진.

아직도 처음 게스트를 받았던 기억은 또렷하다. 덜컥 예약을 받아놓고 막상 온다고 하니 오만 걱정이 밀려들었다. 걱정을 시작하면 또 없던 상상력이 만개하는 성격이라 호러 시나리오를 써대며 잠이 안왔다. 차라리 여자였으면 좀 마음이 편했을 텐데 남자라니. 나 혼자 집에 있을 때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쏜화살을 주워담을 수도 없고 그렇게 영국에서 살던 한국 청년과 조금은 특별한 일상의 시작을 함께 했다. 결과적으로 걱정이 무색하게 우리는 영국살이 이야기며 하는 일이 어쩌니 하는 많은 대화를 나누고 훈훈히 헤어졌고 그래, 걱정 따윈 개나 줘버려 하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  한 명 한 명 그들의 여행 목적과 살아가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고  대만으로, 홍콩으로, 미국으로 앉아서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다니는 듯 즐겼다.  그 당시에 내가 생각해도 어찌나 친절던지 그에 대한 결과로 2년이 넘는 기간동안 슈퍼호스트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슈퍼호스트가 많지 않아 에어비앤비 한국지사에서는 슈퍼호스트를 위한 파티도 진행하여 거기에 가서 공짜로 술이나 음식을 먹고 다른 슈퍼호스트와 교류를 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한국에 오는 이유도 각양각색이었다. 홍콩 대학교수라는 아저씨는 마라톤 매니아로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굳이 서울까지 왔다. 때마침 홍콩여행 계획이 있었던 우리는 이런저런 현지인 맛집도 물어보고 여행 꿀팁을 몇개 전수받을 수 있었다. 펜싱을 하는 호아퀸은 유난히 귀족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는데 아이와 남편은 펜싱경기를 직접 보러가기도 했다. 하필 메르스때 삼성병원으로 인턴쉽을 하기 위해 미국서 건너온 재미교포 아가씨는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다 결국 인턴쉽을 중도에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일본 여자와 결혼해 삿포로에 사는 제라드는 아티스트였는데 우리집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어 아이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친구는 플룻을 본인은 기타를 치며 동네 지인들과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줬다. 최근 방문한 미국인의사 앤드류는 여행지에서 좋은 매너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기분좋게 잘생긴 얼굴로 마지막을 장식해 주었다.


우리집을 방문한 어느 한명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거짓일 것이다.  처음엔 정녕  한 명 한 명 그들과 함께 한 시간과 이름이 다 생각났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젖어든다는 것이 이런걸까. 아침밥을 차리는 것도 귀찮았고 얼굴근육이 아프게 웃는 것도 힘들어지고 안되는 영어는 더 걸치적거리게 되면서 단지 게스트로서만 그들을 대하게 되었다. 개인의 이름은 없이 게스트만 되어버린 그들도 점점 달라졌다. 에어비앤비는 퇴색되어 가고 점점 한국인들이 그저 숙소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나의 계속 호스트로서의 위치를 유지하려는 의지는 급속도로 꺽여갔다. 웬만한 예약은 다 거절하고 가끔 내킬 때만 예약을 받다가 이제 그마저도 접으려 남편에게 이제 그만할까 하니 언제나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지점에 있던 남편은 밝은 얼굴로 냉큼 "그러자!"라 한다. 이렇게 한 시절이 또 저물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로서 보냈던 시간들은 나의 지루했던 일상들에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해줬고 훗날 게스트하우스 하나 해도 재밌겠구나 하는 생각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성공의 증거도 되어주었다.  그들을 통해 여행자가 외국에서 게스트로 하는 어떤 행동이 바람직한가도 호스트 입장에서 경험해볼 수 있었으며 보다 열린 마음으로 여행지에서 교류할 수 있는 자세도 살짝 배우지 않았나 하는 혼자만의 기대도 있다. 언제나 자신의 방을 활짝 열어놓고 있던 게스트가 불편했던 적도 있지만 그 열림이 이제 어색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니  '나는 머무르던 곳에서 2센치정도 이동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굿바이 에어비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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