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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달 Sep 23. 2019

아줌마에게 아르바이트란?

저지르고 생각하라

지난 1월부터 학원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수학교재를 집에서 편집하고 일요일에 데스크를 보는 일이다. 말이 편집이지 이것이야말로 현대식 눈알붙이기 같은 단순노동이구나 싶다. 한글에서 수식은 모두 바꾸기 기능이 불가능하여 하나하나 수식에 들어가서 수정을 해야 하는데 그게 주된 업무다. ~을 ```으로 수도없이 바꾸다보면 눈이 빠질 거 같다. 전체적인 틀에 맞춰 바꾸는 것도 하지만 그건 매크로라는 기능이 도와줘서 빠른 시간에 처리가 가능하다. 나는 20년 전 한글 97로 작업하던 시절에 멈춰 는데 지금은 2014년 버전을 이용하고 있건만 전혀 힘들지가 않다는 이상한 사실. 그동안 한컴은 무엇을 한 걸까? 한글에서 수식기능이 모두바꾸기가 가능하면 이 아르바이트는 위태로울 터이다. 어쨋든 배운 게 도둑질이란 말을 46살에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하나의 기술이라고 한때 한글의 신이였는데 아직 녹슬지 않아서 이리 써먹다니 재미난 일이다. 게다가 최저시급을 받다 최근 뭐라 말도 안 했는데 9000원으로 올랐다. 금액보다 성실성을 인정받은 거 같아 실실 웃음이 나서 자랑했다. 제일 나이 많은 아줌마를 왜 뽑았는지 모르겠지만 학생이라고 하기도 아줌마라고 하기도 그러니 나는 어느새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하하. 요즘 글방서도 선생님 학원서도 선생님 뒤늦게 선생님복이 터졌다.


아줌마들에게 사실 아르바이트는 민감한 일이다.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에게 지나가던 남자들이 "저런 일은 이혼녀들이 하는 거야" 라고 하며 쌍으로 이혼녀와 캐셔를 보내버리는 게 비일비재하다. 동네에서 청만들기 수업으로 지인 아줌마들을 동원하여 과도한 금액을 청구하며 클래스를 열었던 아줌마는 "남편이 변호사라는데 벌이가 시원찮은가봐?"라는 금액에 대한 것보다 더 기분나쁜 비난을 들었다. 약국에서 약사로 아르바이트 하는 것은 꼭 "약사 파트타이머"로 일한다고 구별지어서 불리어진다. 아르바이트도 다 같은 아르바이트가 아닌 거 같다. 알바몬을 검색하는 것도 이력서를 내는 것도 나는 그게 뭐가 이상한지 알 수 없었는데 누군가는 "아니 어떻게 그런 용기를"이라고 한다.  내 남편도 어디선가 돈 못버는 남자가 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에서 주인공 여자가 이런 것들이 참으로 지긋지긋해서 호주로 이민을 갔었지. 나는 그냥 신경쓰지 않는 편을 택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모르게 생활이 바뀌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음에도 일주일이 짜임새가 있어졌고 나머지  시간조차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는 의지가 간만에 생겼다.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개탄하던 어떤 교육전문가는 과도하게 아이들에게 집착을 하지말라며 극단적으로 차라리 바람을 피우라고 농담갖지 않은 농담을 했다. 그것에 비하면 아르바이트는 지극히 건전하지 않은가.   일정부분 효과를 보았다.

아줌마가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가지가 아닐까? 1. 남의 시선때문에 2. 적당한 일을 찾지 못해서 3. 필요성을 못느껴서 4. 시간이 없어서 3, 4를 제외한다면 나는 어떤 일이든지 간에 하는 것을 추천한다. 4의 경우도 엄마들모임을 때려치면 아이가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충분히 가능하니 시간이 없다는 것이 핑계일 경우도 있을 거다.  뭐든 자신만의 눈높이에 맞려고 하지 않고 계속 탐색을 하면 결국 가능하다. 뜻이 있으면 길은 있더라. 자신의 노동력이 돈으로 환원되는 것은 그것이 단순노동이든 전문직종이든 똑같다.  시간을 쪼개 써보면 나머지 시간도 쪼개지며 의미를  부여받는다. 내가 세젤예를 보며 또 분노를 터뜨렸던 것은 주인공 유선이 은행에서 일을 하다 마트캐셔가 되니 세상의 끝을 본 거 같은 주변사람들의 태도다. 그런 잘못된  드라마의 시선이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단 말이지!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나 역시 남의 눈에서 완벽하게 자유롭지는 않다. 불필요한 뒷담화의 대상이 되어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일이 생길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렇다면 적당한 타협선에서! 에어비앤비를 하면서도 가까운 지인 외에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말을 하고 나면 동네 '에어비앤비 하는 아줌마'로 불릴 것일테니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다고나 할까.


나는 단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뿐인데 인디자인도 배우고 싶고 글방도 스스로 찾아가고 출판사도 차리고 싶고 독립서점도 열고 싶고 줄줄이 꿈이 려서 왔다. 해버렸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생각한 대로 행동하지 마라고 최근 어떤 쌤이 말했는데 나는 다른 의미로 전적으로 동의한다. 생각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못한다. 일단 저지르고 생각하고 수습하는 게 체질에 맞는다. 저지를 일이 많아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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