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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호 Dec 27. 2019

의대는 들어가는 것보다 그만두는 것이 더 어렵다

의대 자퇴생의 고졸로 살아가기

고등학생 때 나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 꿈이 내가 진정으로 원한 것이었는지, 혹은 나도 모르는 다른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의대에 합격하기 위해 수능을 세 번을 봤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3 첫 수능에서는 SKY 중 하나에 합격했고, 의사가 되겠다고 반수를 해서 지방대 의대에 합격했다. 거기서 다시 SKY에 속한 의대에 가고 싶다고 세 번째 수능을 봤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다시 원래 다니던 지방대 의대로 돌아오게 되었다.


마지막 도전에서는 실패했지만 아무튼 나는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 생각했기에 딱 마음을 접을 수 있었다. 후회없이 드디어 대학생이 될 수 있었다. 매년 수능 공부 준비하다고 봄에는 벚꽃이 피는 것도 모르고 가을에는 찬바람이 불면 이제 곧 결전의 날을 알리며 온 몸의 감각이 날카롭게 곤두섰었는데 몇 년 만에 마음껏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었다.


의대에 합격하면 마치 집안의 경사라도 난 듯이 모두가 축하를 해준다. 친척 분들에게도 전화가 와서 그동안 고생했다고 위로를 해준다. 나 스스로도 절제하며 살았던 시간들과 정당한 노력한 댓가로 얻은 정당한 결과라 생각하며 합격의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하고싶은 것도 참아가며 휴대전화도 아예 없애고 고시원 같은 작은 공간 (학사라고 하는 곳)에서 인터넷강의에서 만나는 선생님들한테 '오늘도 안녕하셨습니까'라고 마음속으로 인사하는 것이 유일한 대화였다. 수능이 끝나고 한동안은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말이 자꾸 엉켜서 나왔다. 오랫동안 발성 기관을 쓰지 않아서였다.






한 명의 의사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한 가족의 희생과 지원이 필요하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때부터 우리 집에는 TV가 없었다. 내 동생이 대학생이 되고 나서 다시 TV가 생기기 전까지 부모님은 밤마다 심심하셔도 TV 없이 참으셨다. 덕분에 난 지금도 유행을 잘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학원과 과외비는 일반적인 소비와는 달랐다. 거의 신성한 곳에 쓰이는 헌금처럼 아낌없이 투자되었다.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도 큰 비용이 든다. 의대생이 훌륭한 의사로서의 지식과 윤리 의식을 갖추기 위해 의과대학 6년의 교육과정과 그 이후 수련 과정을 포함해 최소 10년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나는 주변의 도움이 있긴 했어도 오로지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낸 줄 알았다. 얼마나 큰 가족의 희생이 있었는지, 그리고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혜택을 얻고 살아왔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의대를 자퇴하고 다른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혼자 힘으로 의대를 간 것이 아니었다. 의대를 관두는 것도 내 마음대로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냥 대학교를 자퇴하는 것일 뿐인데 왜 이렇게 힘든 일이 많은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원해서 의대에 왔고, 이제는 내가 원해서 떠나겠다는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하지만 나의 꿈에는 가족과 친척들의 꿈과 기대가 함께 응축되어 있었다. 내가 한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가족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도 마찬가지있다. 재수 삼수를 포함한 입시 공부에 드는 비용, 비싼 대학 등록금 등은 부모님이 공짜로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다. 여지껏 의사가 되라고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는데 돌연 내가 자퇴하겠다고 한 것은 마치 회사가 파산 신고를 한 것과 같은 일이었다.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이상 결코 내 뜻대로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내가 원하는 것과 투자자인 부모님이 원하는 목표가 같았기 때문에 거래가 성사되었을 뿐이다.






만약 당신이라면 어떻겠는가?


가장 친한 친구가 잘 다니던 의대를 돌연 그만두겠다고 한다. 선뜻 친구의 편을 들어줄 수 있겠는가? 심지어 그 친구가 다른 대학을 가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 친구는 앞으로도 쭉 '고졸'로 살아갈 예정이라 한다. 그 결정에 얼마나 동의해줄 수 있는가?


친구가 아니라 가까운 친척, 혹은 친동생이라면 어떨까? 아마 친구였을 때보다 자퇴를 더 말렸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부모이고, 아들이나 딸이 자퇴를 하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의 경우에는 위에서 말한 순서대로 반대가 심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가장 심했다. 부모님과의 의견 충돌은 정말로 힘들었다. 사실 부모님은 설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 다음은 친척 분들이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친척 분들께서 돌아가면서 전화가 와서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아시니?'라고 한참을 설득하셨다. 친한 친구들도 거의 대부분 도저히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교수님들조차 나에게 무슨 말 못할 근심이 있거나,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나 커서 그런 것은 아닌지 걱정하셨다.


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반대하는 정도가 심했다. 부모님께서는 무엇이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지지해주실 줄 알았지만, 완전한 착각이었다. 나는 이미 성인이고 스스로 길을 결정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놀랍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지지해주진 않더라도 최소한 내가 가는 길에 관심은 가져줄 줄 알았지만, 그것 역시 나의 오산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그 어떤 이유로 자퇴하건 간에 무조건적인 결사반대였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대학교를 반드시 졸업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었다.



가끔 나한테 자퇴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분들이 있다. '부모님이 자퇴를 반대하시는데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라는 질문에 나는 '거의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한다. 부모님께서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수십 년 이상 살아오시면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생각이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부모님의 생각은 대단히 합리적으로 맞다.


하지만 본인의 인생을 부모님이 살아주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 조언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모 입장에서 하는 조언일 뿐이다. 그것을 참고해서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은 본인이다. 딱 기한을 정해서 최선을 다해 부모님께 자신의 뜻을 말씀드려 보되, 최악의 결과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최악의 결과란 부모님이 끝까지 반대를 하고 모든 경제적 지원이 끊기고 집에서도 쫓겨나는 일이다. 자퇴를 하고 싶은 뜻이 확고하다면 최악을 감수해야 한다.



나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생겼다는 것, 의대를 꼭 졸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앞으로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 오히려 대학을 졸업하지 않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것을 포함해서 할 수 있는 말은 다 해보았다. 하지만 거의 들으시려고 하지 않거나, 듣더라도 마지막 결론은 '그래도 졸업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에는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내 임의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부모님께는 말하지 않고 수업에 거의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간에 새로운 삶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연구했다. 이미 고졸 자퇴생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다양한 경험을 해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 제적으로 처리가 될 때까지 나는 새 출발을 할 마음의 준비를 거의 끝내 놓을 수 있었다. 그 기분이 어땠냐고? 완벽한 자유에 대한 기쁨, 새로운 출발에 대한 설렘, 그리고 이제 정말 학벌이 아닌 내 실력으로 미래를 설계해 나가야 된다는 두려움과 짜릿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제부터는 계급장 떼고 맨주먹으로 붙는 싸움처럼, 인생도 학벌 떼고 실력으로 승부봐야 한다. 대학 졸업장이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 주고 싶다. 누군가에게 이끌려 다니는 삶이 아니라, 내가 이끄는 삶을 살겠다. 이런 마음이었다.


학교에서 제적되고 조금 지나자 부모님께서 퇴학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집안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부모님께 이렇게 큰 상처를 남겨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불효 자식이 된 것 같아서 많이 괴로웠다. 내가 뭐가 잘나서 부모님 뜻을 꺾고 나 하자는대로 하겠다는 건지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도대체 인생이라는 게 뭐길래 내가 내 인생 하나 결정하지 못하는 건가,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왜 그렇게 내 인생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가,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다.


약 2~3달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집안의 험악한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행동을 개시할 수 있었다.






실제로 자퇴를 하는 것 자체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자퇴를 둘러싼 사회적 비용, 가족의 기대와 같은 것들이 엉켜서 자퇴가 정말 힘든 일이 된다. 거기에는 의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선망과 한국의 공교육의 본질적인 문제, 학교를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취업시장에서 몸값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학벌주의, 물질만능주의가 모드 껴들어 가 있다.


그래서 내가 의대를 관둔 것은 단순히 학교를 그만 둔 것이 아니다. 위의 모든 것과의 처절한 싸움을 한 것이다. 자퇴가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죽은 듯이 공부만 열심히 하면 어쩌면 의대에 합격할 수도 있겠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의대를 관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대는 들어가는 것보다 그만두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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