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성호 Apr 07. 2020

우리의 인생은 모두 특급품이다.


내 삶에 찾아온 시련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깨닫고 나자, 그제서야 타인의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주기적으로 한 번씩 상태가 어떤지 검사를 받으러 대학 병원에 갔다가 돌아오던 중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골수이식 부작용을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는 수준이었다. 택시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대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러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참 자유롭고 밝아 보였다.


택시 기사님이 라디오를 틀어놓고 있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마침 그때 어떤 희귀병을 앓고 있는 여성 환자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게 귀기울여 듣게 됐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척수성 근위축증이었던 것 같다. 이 병도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온 몸의 근육이 말을 듣지 않고 퇴화되어 작아지는 병이다.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다. 라디오에서는 이 환자의 사연과 환자를 지켜보기만 할 수밖에 없는 부모님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어쩌면 이렇게 비슷할까. 아니, 어쩌면 내가 겪었던 것은 이에 비하면 훨씬 다행이다. 나는 어쨌거나 골수이식을 받을 수만 있으면 완치 가능성이 있는 병이었다. 부작용이 생길 우려도 있지만 나는 다행히 큰 부작용 없이 잘 나았다.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더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구나. 나는 지금 이렇게 생활할 수 있게 된 것도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구나를 느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 나는 우연한 계기로 봉사활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메이크어위시(Make A Wish)라는 재단에서 하는 봉사활동이었다. 메이크어위시는 미국에서 시작한 자원봉사 단체인데,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일을 한다. 아이들이 난치병에 걸린 경우 제대로 꿈을 펼쳐보기도 못하고 학교 생활을 병원에서 대신하게 된다. 미국에서 난치병에 걸린 한 어린이가 죽기 전에 경찰관이 되고 싶은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준 것을 계기로 메이크어위시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국에도 메이크어위시 재단이 있고, 최대 후원자 중 하나가 푸르O셜 보험이다. 나는 어떤 강의에서 만난 생명보험 설계를 하시는 분과 인연이 닿아 메이크어위시 재단에 대해 알게 되었다. 푸르O셜에 계신 분들은 매년 메이크어위시에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그분이 마침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푸르O셜 봉사활동에 팀원으로 참여하게끔 해주신 것이다. 내가 희귀난치성 질환을 극복하고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를 다니고 있으니, 나 같은 사람이 꼭 봉사에 참여해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동참하고 싶다고 했다.


6~7명 정도의 자원봉사자가 한 팀이 되어 난치병과 싸우고 있는 단 한 명의 어린이의 소원을 성취해 주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다. 처음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날, 우리 팀이 앞으로 소원을 들어주게 될 어린아이(위시키드)의 간략한 신상정보에 대해 듣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외부에 공개하면 안되기 때문에 때문에 여기 쓸 수는 없다.


이날 내가 앞으로 만나게 될 어린아이에 대해 듣고는 너무나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손이 바르르 떨릴 정도였다. 바로 내가 받았던 진단명과 같은 질병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렇게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 질병이 발병할 확률은 80만 분의 1 정도가 된다. 얼마 전까지 환자로 있다가 이제 처음 세상에 나와 자원봉사를 처음 시작하며 처음으로 알게 된 아이가 역시 80만 분의 1의 확률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80만 분의 1과 80만 분의 일이 우연히 만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 않을까. 이것은 신을 믿지 않는 나에게도 어떤 계시 같은 일이었다.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게 함으로써 나에게 결코 놓쳐서는 안될 내가 꼭 이뤄야 할 중요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 주는 것만 같았다.


그 이후에 있었던 일들은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공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날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주변에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이 이제는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의 사촌동생이 희귀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 같이 학교에 다니던 후배들 중에도 희귀한 면역질환으로 1~2년 휴학을 하기도 하고, 가깝게 지내던 친구도 어릴 적에 신장에 문제가 있어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아는 동생은 희귀한 약물 부작용으로 갑자기 전신 화상을 입은 것처럼 검해지고 살갗이 닿기만 해도 칼로 베이는 것 같은 시절을 보냈다고 하고, 최근에 알게 된 분도 신경세포 말이집에 문제가 생기는 희귀병으로 인해 손가락 발가락에서 전기가 찌릿찌릿하는 느낌이 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실 희귀난치성 질환은 각각의 질병은 희귀하지만, 희귀난치성 질환을 모두 모아놓으면 그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4대 중증질환에는 암 질환,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 그리고 희귀난치성 질환이 있다. 이중 암 질환 다음으로 많은 것이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인간이 아직 잘 모르는 병의 종류가 훨씬 더 많고 다양하다는 뜻이다.


- 암 질환 : 90만 명

- 심장 질환 : 7만 명

- 뇌혈관 질환 : 3만 명

- 희귀난치성 질환 : 59만 명

- 4대 중증질환자 : 160만 명


전국민을 5천만 명으로 생각했을 때 3.2%에 해당하는 사람이 4대 중증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30명 중 1명 꼴이다. 여기에서 환자 1명을 위해 가족 2~3명이 고통을 함께 한다고 생각해 보면 10명 중 한 명은 중증질환으로 인해 지금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주변에 물어보면 가족과 친척 중에 큰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없는 경우는 드물다. 만약 가족과 친척들이 모두 건강하게 살고 있다면 정말 엄청난 행운이다. 주변에 지인 10명을 알고 지낸다면 그중 평균적으로 한 명은 질병으로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누구나 친한 친구 10명 정도는 있다고 한다면, 전국의 모든 사람들은 직간접적으로 중증질환과 연관이 있다는 뜻이다.


놀랍게도 중증질환자 전체 중에 희귀난치성 질환이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전국민으로 계산해서 1%가 넘는다. 나를 괴롭혔던 희귀병은 발병율이 80만 명 중에 1명, 매년 62.5명의 신규환자가 생기는 희귀한 질병이다. (출처 : 2015년 논문, 서울아산병원 김대영 교수, '성인 혈구탐식성림프조직구증식증의 이해, 진단 및 치료') 그런데 희귀난치성 질환 중 산정특례가 적용되는 질병은 2019년 기준으로 927개가 있다. (출처 :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이 수치는 아직 현대의학이 밝혀내지 못한 질병까지 합친다면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


각각의 희귀난치성 질환은 극히 드문 확률로 발생하지만 희귀병의 종류가 많기 때문에 모두 다 모아놓으면 암 질환 다음으로 많은 숫자가 된다. 하지만 각각의 희귀병은 워낙 케이스가 적고 특성도 다 다르기 때문에 치료법이나 치료약을 개발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희귀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정말 많지만, 이들은 모두 각개전투를 하며 외롭게 싸우고 있다는 뜻이다.


투병 중일 때 나는 세상에 나 혼자만 이렇게 불행한 줄 알았었다. 나 혼자만 이렇게 힘들고, 고통받고, 절망 속에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제대로 원인도 잘 밝혀지지 않은 질병에 걸려서 허무하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숫자로 살펴봐도 그게 아니었다. 내가 겪은 것은 누구나 겪을 수 있고,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일이었다.


잘 생각해보니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소리가 아닌가? 생로병사, 이것은 본래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다. 이 당연한 말의 의미를 깨닫기까지 나는 정말 먼 길을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세상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시련들이 있다. 질병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살면서 저마다 인생의 시련을 겪게 된다.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도, 삶의 큰 고통을 겪었던 사람도, 그리고 그런 이들을 가족으로 둔 사람도, 주류로부터 공격을 받는 소수자들의 삶도 그 자체로 불행한 삶이란 없다. 어떤 삶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누구의 삶도 위대한 것이 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시련이 있어야만 진정으로 행복하고 위대한 삶이 될 수 있다. 언젠가부터 나는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시련을 통해 특급품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가수 김혁건 또한 특급품이라 생각한다. 평범한 일요일 어느 날 TV에서 하는 강연100도씨를 통해 그를 알게 되었다. 김혁건은 노래방을 좋아하는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봤을 만큼 유명한 노래를 부른 더크로스의 메인 보컬이다. 당연히 나도 더크로스 노래를 좋아했다. 다만 더크로스 보컬이 김혁건이라는 사람인지는 몰랐었다.


강연100도씨에서 휠체어에 탄 사람이 나와서 조이스틱 같은 걸 이용해서 배를 눌러주는 기계를 사용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저 사람은 누굴까?'하면서 의문이 들면서도 계속 보게 되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 사람이 그 유명한 더크로스 보컬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김혁건이라는 이름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목이 부러지면서 전신 마비가 되었었다는 사연도 알게 되었다.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동안 등에 욕창이 생겨 썩은 살을 도려내는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으며, 한 달 만에 의식을 되찾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언젠가 휠체어를 탈 수 있게라도 된다면, 강으로 나를 밀어달라'라고 말했을 정도라고 했다. 그 고통을 당사자가 아닌 타인이 어떻게 다 헤어릴 수 있겠는가.


손가락 하나를 까딱거리며 움직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1년에 가까운 재활 기간 동안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어깨와 팔까지는 움직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비록 하체는 움직일 수 없지만 상체 일부라도 돌아온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을 것이다.


다만 김혁건의 인생에서 가장 불행이었던 점은 배에 힘을 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의 본업은 무엇인가? 바로 가수이다. 그것도 가창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가수이다. 그런 그가 배에 힘을 줄 수 없어서 다시는 예전처럼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것은, 살았어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룻밤의 교통사고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꿈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여기까지는 김혁건 인생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금이 가버린 사건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해서 그의 가수로서의 인생도, 한 인간으로서의 인생조차 실패한 것일까? 나는 김혁건을 보면서 불행과 시련은 결코 인간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혁건은 전국에 모든 장애를 가진 성악가들을 찾아다니면서 어떻게 하면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을지 알아보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배에 힘을 줄 수 없으면 결코 예전처럼 노래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맞게 살아라.'라고 말해주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일반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혁건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억울하고 분하게 지내던 어느 날, 그날도 지하주차장에서 악을 쓰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겨우 한두 소절도 못 부르고 숨이 차서 더 부를 수 없었다. 배에 힘을 줄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때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셨을 아버지가 아들의 배를 내려치면서 '힘을 주란 말이야!'라고 소리쳤다. 그랬더니 정말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사고 이후로 처음으로 애국가 1절을 끝까지 다 부른 것이다. 배에 인위적인 힘을 주어서 내려친 덕분이었다.


그때 김혁건과 아버지는 '직접 배에 힘을 주지 않더라도 외부에서 힘을 주어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는 배를 눌러줄 수 있는 기계를 찾아보았다. 그의 아버지는 전국의 철공소란 철공소는 전부 다 돌아다니셨다고 한다. 대학 기계공학과 교수님들을 찾아다니면서 복부를 눌러주는 기계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어머니는 그의 손발이 되어 병간호를 해주셨다. 다 큰 아들을 위해 얼마나 큰 부모님의 희생이 있었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꾸만 눈물이 고인다.


많은 거절 끝에 결국 서울대 로봇융합연구센터에서 1년 간의 시행착오 끝에 그를 위한 '복부 압력 기계'를 만들어 주었다. 이것이 내가 TV에서 본 것이었다. 휠체어에 탄 그가 조이스틱 같은 손잡이를 조작하면 배에 압력을 주었다가 뺐다가 하면서 그가 마음껏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주는 특별한 장치이다. 그는 이 기계를 이용해서 또다시 수없이 많은 연습과 훈련을 통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2015년 내가 처음 그를 강연100도씨에서 봤을 때, 그가 부른 노래는 자작곡 <넌 할 수 있어>였다. 대단한 가창력이 없어도 낮은 음정들만 있어서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였다. 과거에 고음병이 걸렸던 그였다면 아마 시시해서 부르지 않았을 법한 노래였다. 하지만 나는 김혁건이 최고 전성기 시절 불렀던 <Don't Cry>보다 지금 휠체어에 앉아서 부르는 <넌 할 수 있어>가 훨씬 위대한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전자는 뛰어나지만 위대하진 않고, 후자는 뛰어나진 않지만 위대하다. 후자가 위대한 이유는 김혁건이라는 사람이 겪어낸 시련이 모두 응축되어 있는 곡이기 때문이다. 이 곡을 부르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특급품 인생을 보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이후로 그의 가창력이 다시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었다는 사실이다. 2020년 2월, 그는 슈가맨3에 나와서 <Don't Cry>와 <당신을 위하여>를 불렀다. 방송에 출연해서 17년 만의 그의 라이브 공연을 보고 울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는 이 무대를 선보임으로써 인간성이란 그 어떤 질병이나 시련에 의해서도 파괴될 수 없는 것이며, 피나는 노력과 위대한 인간 정신을 통해 기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그는 2012년 3월 26일 교통사고 이후로 8년 동안의 시간을 거치면서 완전한 특급품으로 거듭난 것이다.


물론 나는 그가 <Don't Cry>를 다시 재현해낼 수 있으리라고까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해도 그의 위대함에 어떤 흠집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미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희망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누가 김혁건을 '그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의 노래 한 곡에는 그의 인생이 담겨 있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불시에 찾아올 수 있다. 크고 작은 시련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시간일 수 있다. 시련 때문에 좌절하고 분노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나약하다.


하지만 인간이 정말 인간다울 때는 그 시련에 굴하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부터이다. 시련은 나약한 인간을 잠시 주저앉게 할 수는 있지만, 인간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인간은 다시 일어서고 다시 앞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또한 결코 나약하지 않다.


교통사고로 인한 전신마비는 김혁건을 잠시 불행 속에 살게 했다. 하지만 시련은 그 자체로 김혁건이라는 인간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김혁건은 다시 살아갈 방법을 찾아냈다. 다시 노래를 부르고 싶은 열망으로 결국은 방법을 찾아냈다. 거기에는 본인의 피나는 노력과 주변의 희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에게는 배에 힘을 줄 수 없다는 장애가 있었지만 그는 독특한 기계를 개발하고 그것을 활용해서 노래 부르는 법을 터득함으로써, 한계를 뛰어넘었다.


우리가 김혁건을 보고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을 하게 되는 것은 그가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갖추고 있어서는 아니다. 그는 사고 이전에도 이미 뛰어난 가수였다. 하지만 그가 신체적 장애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과정 속에서 위대한 인간 정신이 드러나기 때문에 보는 이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는 것이다. 그의 고음이 몇 번째 음까지 올라갔는가는 부차적인 것이다. 우리는 그의 음이 3옥타브 솔까지 올라갔는지, 혹은 그 이상으로 올라갔는지에 집중하지만 이것은 겉으로 보이는 최종적인 성과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곳에 이르기까지 그가 시련과 투쟁했을 모든 과정이다. 지난 8년 간의 모든 피와 눈물이 그가 3옥타브 솔 음을 낸 그 순간 모두 터져나왔던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인간에게 찾아온 시련은 크고 매서울수록 더욱 좋다. 절대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시련이 닥쳤을 때 인간은 그만큼 더욱 위대한 인간 정신을 발휘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닿을 수 없었던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하고, 달을 넘어 화성으로 인류를 보내고자 도전하고, 척박한 사막에서 마라톤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주목받는 이유도 모두 같다. 이들은 시련을 맞서서 인간 정신을 꽃피우는 자들이다. 이를 통해서 특급품 인생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인생에 시련이 찾아왔는가? 힘들고 암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시련을 피할 수 없는가? 그렇다면 시련을 받아들이자. 당신에게는 특급품이 될 수 있는 인생 최대의 기회가 온 것이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인생은 언젠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특급품의 인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



누구의 어떤 삶이든 고결하고 아름다울 자격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