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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호 Dec 18. 2020

다시 돌아온 학교

주입식 교육의 한계와 모순을 확연히 느끼다

2016년, 그렇게 나의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남들 같으면 대학교 4년을 졸업하고도 남았을 시간 만큼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다시 학교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제는 직접 내 입으로 과거에 겪었던 일을 말하지 않으면, 내가 희귀병과 그로 인한 후유증까지 겪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 정도로 회복이 된 채로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3월에 다시 대학생이 되어 캠퍼스를 누빌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나를 어둡게 누르고 있던 무언가로부터 벗어나 가볍고 상쾌한 마음으로 벚꽃이 핀 모습을 감상도 해보았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과거에는 너무나 당연했던 일상이 더없이 감사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 수업 시간에 배우는 내용들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대개 의과대학 수업은 양이 방대하여 교수수님도 빠르게 진도를 나가고, 학생들도 정신없이 필기하기에 바쁘다. 그래서 그 내용에 담긴 진짜 의미를 잘 알기 힘들다. 그런데 나는 이미 수업 내용을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내 몸이 겪은 경험으로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면역학 시간이 그랬다. 교수님이 앞에서 무미건조하게 강의를 하는 내용 속에는 내가 그토록 생사를 다투며 견뎌낸 순간들이 있었다. 아직 그 경험들이 너무나 생생해서 매 수업 시간 때마다 속으로 울컥, 하고 차오르곤 했다. 매일 아침 내 혈액의 백혈구 수치를 확인하면서 생명의 전율을 느꼈던 그 내용들이 '이것은 시험에 나오니까 암기하고, 저것은 시험 범위가 아니니까 넘어가도 되는' 한 조각 지식에 불과했다.


주입식 교육이 얼마나 무섭고 차가운 것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교수님이 들어와서 '자기주도 학습'에 대한 강의 자료를 PPT에 띄워놓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심하다는 말투로 교과서 내용에 시비를 걸었다.


"학생이 무슨 수로 스스로 목표를 정하죠?"

"학생이 무슨 수로 수업에 쓰일 자원을 구하고, 스스로 평가를 한단 말이죠?"

"자기주도 학습 같은 말도 안되는 건 생각도 하지 말고, 학생들은 내가 시키는 거나 잘하세요."


교수님의 말뜻은 이런 것이었다. 의과대학 6년 동안 배워고 익혀야 할 양은 무지무지하게 많다. 그걸 수업 시간에 다 하기도 벅찬 시간에 무슨 자기주도 학습이냐는 것이다. 의대의 거의 모든 수업은 절대적으로 교수님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압도적으로 많은 지식을 갖춘 교수님이 수업 내용을 빠짐없이 주입식으로 전달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교수님의 말을 법처럼 떠받들어서 그대로 이해하고 외우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모든 반 학생들은 비밀리(?)에 교수님의 모든 수업을 녹화하고 다시 볼 정도이다.


교수님이 보기에는 어설프게 자기주도 학습이니 뭐니 하면서 학습 목표와 학습 계획을 세우면서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교수님이 잘 정리해둔 지식을 빠르게 전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것이다. 그러면서 마치 자기주도 학습 같은 시스템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교육 현장을 전혀 모르고 만든 것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때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우리의 학교 교육은 제도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 교육자가 없다. 그들은 바뀐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없고, 그렇게 할 의지도 없다.


학교는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교는 취업률, 고등학교는 입시 성적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게다가 주입식 교육 하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야말로 의사가 아닌가? 그런 교수들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학교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나는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외부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변화했기 때문이었다. 예전 같으면 지루하다고 느꼈을 반복적인 일상이 지금 나에겐 너무나 특별한 일상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줄 알았던 주입식 교육 현장도 지금 나에겐 확연한 모순으로 보이게 되었다.



다음 글에서부터는 내가 보고 겪은 한국 교육의 모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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