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성호 Dec 18. 2020

2000년대 전문직 열풍과 나의 학창시절

극단적 의사 선호 사상은 모두에게 '폭력'이 되어 돌아온다!

우리 나라의 교육의 모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훨씬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직접 보고 겪은 것만을 생생한 경험으로써 느끼고 있다. 나머지는 다만 나의 경험에 비추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교육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 나이대인 10대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나는 89년생이다. 90년대 중반에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 금융위기가 터졌다. 당시에는 IMF가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해에 중학생이 되었다. 2005년에 고등학생이 되어 수험생 생활이 시작되었다.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인터넷강의로 스타 강사가 배출되던 사교육의 전성기였다. 2007년 겨울에 처음 치른 2008학년도 수능부터 해서 09학년도, 10학년도까지 총 세 번의 수능을 봤다.


슬슬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추석이 되면 연휴 내내 추석 특강을 들으러 다녔던 수험 생활을 3년 한 끝에 드디어 의대생이 되었다. 부모님도 기대하셨고 나도 꿈꿨던 결과였다. 물론 나는 간절히 원했던 꿈을 이뤘던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난 글에서 썼던 대로 어쩌면 그 꿈조차 '수능 배치표'가 결정한, 혹은 주변 환경에 의해 주입된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글 '천재들이 모인 의과대학 vs 배치표가 결정한 인생' 참고)


그렇다면 내가 무슨 꿈을 꿀 것인가조차 결정할 만큼 강한 영향력을 지닌 수능 배치표는 왜 의대를 가장 윗칸에 두었을까? 의사는 시대를 초월해서 항상 선호받는 직업이기 때문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불과 10년, 20년 전만 해도 의대보다는 공대가 더 선호받는 학과였다. 나의 부모님 세대만 해도 의대는 공대보다 밑이어서 상대적으로 가기 쉬웠다는 말이 있다.


조금 더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면 내가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던 때는 의대에 대한 열풍이 가장 최고조에 달했을 시기였다. 여기에는 의사라는 직업이 가진 상대적 고소득, 안정적인 삶, 전문직으로서 누리는 사회적 지위와 혜택, 현대 의학의 놀라운 발전으로 인한 가능성 등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00년 이전에 비해 2000년 이후에 의대 열풍이 갑자기 강해진 데에는 무엇보다 IMF 외환위기의 영향이 크다.


선호하는 직업군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뀐다. 전쟁을 겪은 직후인 50년대에는 사관학교에 합격하면 경사라고 했고,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타이피스트가 유망 직종이었다고 한다. 60년대에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섬유엔지니어와 가발기술자 등의 직업이 떠올랐고, 70년대에는 수출지향적인 정책에 따라 무역업에 종사하는 직업이 가장 인기였다. 3S 정책이 떠오르는 80년대에는 엔터테인먼트 관련 업종이 인기를 끌었다. 운동선수, 탤런트와 연예 관련 직업을 가진 이들이 인기가 높아졌다. 90년대에는 다양한 인기 직업이 있었고, 특히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벤처기업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97년 IMF 외환위기가 오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잘 나가던 회사가 갑자기 망하고, 사람들은 회사에서 잘리고, 청년들은 취업하기가 힘들어졌다. 사회 구조가 크게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직업 선택의 첫 번째 기준이 '안정적인 직업'이 되어버렸다. 내가 꿈꿨던 의사라는 직업도 이런 사회 변동 속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그래도 영향을 덜 받고 안정적으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업으로 바로 의사가 떠오른 것이다. 물론 나는 의사라는 직업을 대표적으로 말했지만, 의사를 포함한 '사'자 들어간 전문직들이 포괄적으로 해당한다. 큰 돈은 못 벌어도 잘릴 위험이 없는 공무원, 정년퇴직 때까지 보장받고 1년에 두 번 방학이 주어지는 선생님이라는 직업 등도 전보다 더 선망받는 직업이 되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에 또래들이 겪는 인생 고민을 들어보면 유사한 레파토리가 반복될 때가 많다. 어릴 때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거나 실직을 하게 된다. 그런 부모님은 나에게 의사, 변호사, 공무원 등이 되어서 집안을 다시 일으키길 바란다. 하지만 실제로 의사,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수는 한정되어 있고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은 수백 대 1을 뚫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말랑말랑한 '꿈'보다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려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직 꿈을 간직한 친구들은 몽상가로 취급받거나 현실의 냉혹함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 되기 쉽다.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손해보지 않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현명한 것 같아 보인다.






물론 사회 변화와 함께 유망 직종과 학과가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크게 보면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새로운 직종이 생기면 훌륭한 인재가 필요한 법이다.


문제는 꿈보다는 안정성과 고소득 등을 1차 목표로 한 인생이 어딘가 모르게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가끔씩 찾아온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돈이 전부인가? 돈이 행복을 결정한다고 하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말하든, 이 질문 자체가 너무 순진하다. 돈은 전부도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다만 지금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거시적인 사회의 변화에 따라 의사를 비롯한 전문직이 선망받는 직업이 될 수는 있다. 많은 청소년들이 전문직을 꿈꾸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은 보기 좋기까지 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마치 의사, 변호사, 판사, 회계사, 교사, 공무원을 '정답'인 것처럼 정해 버렸다. 그리고 그에 못 미치는 삶은 '루저'의 인생인 것처럼 치부해 버리는 지경에 왔다. 선망받는 직업, 상위권 대학 합격이라는 목표를 위해 다른 모든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식이다. 우리는 몇 년 전 유행했던 <스카이 캐슬>에서 자식을 의대에 보내기 위해 무슨 일까지 벌일 수 있는지 보았다.


이것은 분명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선의의 경쟁이라는 선을 넘어섰다. 극단적인 전문직 선호가 모두에게 '폭력'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IMF 외환위기의 여파가 부메랑이 되어 이렇게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거기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어쩌면 말이다. 어쩌면 의대 선호 사상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이지 않았더라면 나는 10대 시절에 의사가 아닌 다른 것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다른 멋진 길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어른이 되기를 기대하며 청소년기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좀더 호기심 많은 아이로 자라 조금은 더 세상을 바꿀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의사라는 직업이 그렇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의사는 훌륭한 직업이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성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문제이다.


어쩌면 나는, 어쩌면 당신은, 어쩌면 우리는 애초에 다른 것을 꿈꿀 기회조차 박탈된 것이 아닌가.






나도 만약 내 인생에 급브레이크를 걸 만큼 커다란 사건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별다른 생각 없이 그 길을 계속해서 걸어갔을 것이다. 내 인생을 멈춘 급브레이크란, 물론 앞의 글에서 말한 희귀병이었다. 불행이자 축복이었던 질병으로 인해 잠시 정상 트랙에서 벗어나 보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좀더 명확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쩌면 의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의대를 왜 자퇴할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조금 더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다음 글에서는 내가 겪은 한국 교육의 모순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