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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노니 Sep 25. 2024

스마트폰 교육봉사 이야기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30분. 나는 1시간 동안 선생님이 된다.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이뤄지는 1:1 스마트폰 교육 봉사 시간 때문이다.

서로 처음 보는 두 사람이 50년의 시차를 뒤로 하고 상호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대면한다.

어제는 내년이면 구순에 이르시는 어르신(할아버지)을 만나 뵈었다.

그간 80대 초반, 중반 분들을 주로 뵈어서 비슷한 연배이실 거라 생각했는데 가장 연장자셨다.

궁금한 기능은 카카오톡 메시지 보내기와 사진 보내기.

80대 분들도 스마트폰 사용 역량은 천차만별이다.

이 분처럼 기본 카톡기능을 궁금해하시는 분도 있고 챗지피티 사용법까지 익혀서 가신 분도 계신다.

(후자의 경우에는 더 이상 무얼 가르쳐드려야 할지 조금 난감하기도 했다)

카카오톡을 켜고, 채팅방에 들어가고, 커서가 깜빡이는 곳을 눌러 글을 적는다고 알려 드린다.

노란 종이비행기를 누르시면 메시지가 가는 것까지.

반복 숙달을 위해 다시 처음부터 혼자 해보시는 시간을 가진다.

여기 눌러요? 이거 누릅니까? 계속 확인하시며 하나하나 차근차근해 나가신다.

몇 분의 어른을 만나 뵈었고,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은

‘배웠는데 까먹었어’

‘집에 가면 다 잊어버려’

‘이 나이 되니까 자꾸…’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 부끄러움 같은 것이 묻어나는 말투셨다.

다 그러신다고, 반복해서 하시다 보면 혼자 하실 수 있다고 말씀은 드리지만 늘 석연치 않았다.

해결 방법이 없을까 고민도 들었고.

앱을 개발해서 자주 잊는 기능들에 대한 가이드를 제공해볼까도 싶지만 당장은 기술이 없어 패스.

그러다 문득 화면녹화 기능을 사용해서, 그날 가르쳐드린 기능만이라도 반복학습 하실 수 있게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어르신께도 녹화된 영상을 보여드리니 알기 쉽다, 집에서 100번 정도 혼자 보면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뿌듯한 말씀을 해주셨다.

여러 기능들을 알려드리다 보면 자연스레 자녀분들 이야기로 이어지곤 한다.

물론 자녀가 있으실 거라고 섣불리 짐작해 여쭤볼 순 없고, 채팅방에 연습을 하거나 하다 보면 묻지 않아도 알게 된다.

어젠 뜻하지 않은 이야기들도 듣게 되었다.

매우 유창하게 말씀하시는 영어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과거 영어 교사 시절 이야기, 배우자와 자녀 이야기 등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다 서울 한복판에서 맞이한 6.25, 공산당 탱크, 한강다리 폭파, 마을 주민 학살 등을 목격한 얘기까지 닿자 스마트폰은 뒤로 잊힌 지 오래.

게다가 어르신의 아버지께서 최초 조선어사전을 편찬하신 일원이셨던 것을 알곤 경외감이 들기도 했다.

그냥 살아온 이야기를 하실 뿐이었지만 도저히 여기서 만남을 끝내기 아쉬웠다.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연락처를 여쭸으나, 이제 삶을 가볍게 하고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고 싶진 않으시다는 말씀.

알겠습니다 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는 이제 막 생을 시작한 아기를, 복지관에서는 그 정반대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반대라기보다는, 같은 방향으로 가지만 한참 앞에 서 계신 분들이라 해야 할까.

삶의 시작과 끝에 있는 사람들을 가운데쯤 서서 바라보니 인생 전체를 조망하게 된다.

사람이란 어떻게 세상에 왔다 가는지를.

아이와 나의 30년이라는 시간적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만 어르신들과 나의 거리는 그 배에 가까운 시간이다.

시작으로부터도, 끝으로부터도 먼 오늘이구나. 시간이 빠르게 가는 듯도 하지만 한편으로 생이란 참 길구나 싶기도 하다.

그분들의 가족, 특히 자녀와의 관계를 보며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생각하고, 배우게 되는 시간이다.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 가서 오히려 배워오는 것이 더 많다고 느낄 때도 있다.

꾸준히 이어가 보려 한다.

어르신께서 직접 그림을 그리시며 영어, 가족, 전쟁 이야기를 해주셨다.


다음에는 내가 어떻게 스마트폰 교육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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