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25.4.20 일
성북구에 있는 밀곳간이라는 빵집에서 아침을 먹고, 그 근처에 있는 길상사에 갔다. 백석 시인의 연인이었던 김영한이라는 여성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 사상에 감화되어 그
큰 부지와 건물 일대를 보시하였다 한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생각들을 했다.
해인이 너는 수풀과 바위에서 악어를 발견한다.
돌로 된 담장 무늬에서 기린을 발견한다.
개미를 보고 꽃게를 떠올린다.
미숙함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그 무엇도 쉽게 규정하거나
틀에 맞춰 바라보지 않는
참신함이라 할 수도 있으리라.
돌멩이의 엄마를 찾고
자동차의 아기를 발견하는 그 자유로운 눈길에
덩달아 즐거움을 느끼는 요즘이다
절 담장에 각진 모양의 돌들이 박혀 있다. 그곳을 가리키며 계속 ‘목기!‘ 를 외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목기‘는 네가 기린을 가리키는 말인데. 불현듯 알아챘다. “돌담 무늬가 기린 몸의 무늬와 비슷하구나!”
너는 그걸 알아채고 목기를 외쳤던 게다.
하루하루 그런 즐거움이 있다.
창의력 퀴즈 맞히기 시간 같달까. 아직은 네가 말로 쉽게 답을 내어 주지 않기에 스스로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많다. 그 고민의 시간이 즐겁고, 결국 같은 것을 보고 이해했음을 아는 순간에 이를 때의 희열이 짜릿하다. 너의 “응!”이라는 동의와 함께. 때로는 끝내 해답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미지의 영역으로 남는 너의 모든 부분도 사랑스럽다. 언젠가 널 다 아는 듯 생각할지도 모르는 나에게, 한 순간도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었음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어줄지도 모르지.
화창한 날, 행복한 시간이었다.
- 아래는 위와 비슷한 내용을 조금 다른 형식으로 적어보았다
아이들의 창의력이란 이런 데서 출발하는 것일까 싶은 순간들이 있다. 엉뚱하다고 느껴질 생각들 말이다.
최근 해인이는 ’엄마와 아기‘의 관계를 어렴풋이 파악한 듯하다. 그것이 ‘크고 작음‘과도 연관되었음을 알았는지 요즘은 온갖 것들을 엄마와 아기로 묶어준다. 악어나 기린 같은 동물은 물론이고 자동차나 돌멩이도 엄마와 아기로 나뉜다. 엄마 돌멩이와 아기 돌멩이라니. 참신한 발상이다. 원래 하나였던 돌멩이가 있었고. 그 일부가 떨어져 나왔다면 그래, 그건 엄마와 아기의 관계와 어느 정도 본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멀리 나가본다면 ’엄마 지구(mother earth)’ 같은 표현 역시 본질상 다르지 않은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건 발상 이전의 본능적인 포착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안에서 종종 삶이나 세상의 본질이 발견되기도 하는.
그 밖에도 여러 발견들이 있다. 절의 돌담 무늬에서 기린을 본다던지, 개미를 보고 꽃게를 떠올린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때론 고쳐서 바로 알려주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이내 그런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다. 자기가 아는 무언가를 실제로 본 데서 오는 흥분과 기쁨에 잠시 동참하는 것도 좋지 않나 싶어서다. 개미의 이름을 정확히 아는 것보다 개미가 어떻게 움직이고 무얼 하는지 관찰하는 것이, 그로부터 신비로움과 즐거움, 생명에 대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므로.
해인이의 엉뚱하고 기발한 관점 덕분에 하루하루 소소한 재미를 느낀다. 해인이가 왜 이걸 기린이라고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갖다 보면 퀴즈쇼라도 즐기는 기분이다. 힌트 없는 수수께끼 같달까.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곁에서 함께 바라보려는 노력을 통해 나도 조금은 더 유연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