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독서가 인생을 바꿀지도 몰라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책을 읽고 공부를 하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독자님들께서는 도대체 왜들 그러는 건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한편, 저는 공부하라고 말하는 그 어른들은 정작 공부하지 않고 꽉 막힌 경우도 살면서 꽤 많이 봐왔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 중에서도 경주마처럼 한 가지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역시 본 적이 있는 것 같네요.
그래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굉장한 효과를 주는 행위인지는 때때로 의문이 듭니다. 그러나, 지금 소개해드리고자 하는 이 책은 제가 생각하는 독서라는 활동의 효용과 관계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 책에 대해서 쓰기 위하여 이 글들을 적기 시작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이 책을 스무 살 때 처음 읽었습니다. 극적인 요소를 좋아하시는 독자를 위해 좀 더 추가하자면 이 책은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던 책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읽는 책에 호기심이 있었는데, 왜냐하면 책들이 집에 늘 꽂혀 있었고, 제 어린 집중력으로는 도무지 그 두꺼운 책을 다 읽어낼 수가 없었으며 내용도 도무지 눈에 안 들어와서 진도를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질 수 없어서 더 원하게 되는 그 마음이 여기에도 적용된 모양입니다. 책장에 꽂혀있던 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은 뭔가 제목이 끌렸습니다. 달과 6펜스라는데 6펜스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도 달과 같이 붙어있는 그 단어가 주는 알 수 없는 매력에 이끌려 제목을 기억해두었다. 생각해보면 그냥 지적 허영심 같은 마음이네요. 한편 집에 있던 그 책은 몇 번의 이사 과정에서 잃어버렸는지 그냥 버렸는지 한참 동안 볼 수 없었지만 대학생이 된 저는 이 책을 기억해내어 1학년 1학기 때 아마도 처음으로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습니다.
내 나이 스물, 다들 자신의 스무 살을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 나이 스무 살을 내가 가진 모든 문제들이 물 위로 본격 드러낸 시점으로 기억합니다. 그 느낌을 보다 상세하게 알려주기 위해 나의 십 대 시절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자면, 아마도 중고등학교 내내 엄마는 술에 취해있거나 울고 있거나 혹은 아주 늦게 들어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우리 집은 가난하고 분위기는 냉랭하거나 우울하고 저는 집에서는 말을 안 했습니다. 한편 학교에서는 계속 성적이 좋았고 밖에서는 그냥 인생의 어둠 같은 건 모르는 공부 잘하는 애이고 싶었던 것 같은 마음도 기억납니다. 당시 학교에서 받는 좋은 성적은 나의 자존감을 위한 돌파구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그나마 꽤 괜찮은 심리적 보상 거리였기 때문에 나에 대한 깊은 고민보다는 그냥 좋은 성적이 주는 단맛에 젖어 공부를 했을 것입니다. 무엇을 원하는 가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기보다는 열매로서의 성적을 따내던 나. 십 대를 그렇게 보내고 나는 우리나라에서 꽤 인정받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때 주변에 대학이 뭔지 대학생활이 먼지 조언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심지어 대학 나온 사람도 별로 없었고, 나도 아무 생각이 없었고 나는 그렇게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이제 스무 살, 나는 여전히 가난하고 엄마는 취해있고 학비는 갑자기 빚더미로 다가오며 이제 공부는 잘하지도 않고 공부에는 도무지 흥미가 가지 않으며 마음은 우울한 대학생이 되어버렸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대학생활은 대체로 즐거웠던 기억입니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보냈고요. 집은 여전히 엉망이었지만. 공부는 안되고 미래는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나는 욕심이 있었고, 나의 이십 대는 그 사이를 매일 오가며 혼자 괴로워하는 기억입니다.
자 여기서부터 책이 등장. 인트로가 참 길었습니다. 그 시절 언젠가 나는 어른이 되면 어른의 책을 잘 읽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책의 상징인 이 책을 찾아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내용은 전혀 몰랐지만. 읽고 보니 이 책은 고갱을 모티브로 하여 쓴 소설이었습니다. 증권 중개인이었던 찰스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화가가 되겠다고 떠나는데, 이 소설은 이 사람의 여정에 대한 글입니다 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예술을 하겠다며 자신의 가정을 내팽개치고는 자신을 거두어준 친구네 집에서 머물다가 그에게 반한 친구의 부인이 친구를 버리고 그에게 목매다가 자살을 하여도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일말의 죄책 감 없이 예술을 하러 가버리는 그런 캐릭터입니다. 내가 묘하게 이끌렸던 그 제목 달과 6펜스, 달은 예술이 상징하는 이상의 세계이고 6펜스는 돈이 상징하는 현실세계의 대조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평할 때 도덕성과 예술혼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네요.
그러나 제가 이 책에서 읽었던 것은 알 수 없는 에너지였습니다.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해 나가는 것 자체에는 힘이 있고,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저는 주인공이 미친놈처럼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고 하면서 매일같이 뭔가를 찍어내는 그 행위 자체에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서는 무언가를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더라도 괜찮고 혹은 더 좋을 수 있을 거라는 어렴풋한 희망 같은 것을 갖게 되었달까요. 오히려 이 책을 덮고 나서 본격 고민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뭐 할 때 행복한가.
이건 아마도 엄마가 들으면 싫어할만한, 나를 바람 들게 한 책일 수 있습니다. 얌전히 고등학생 때처럼 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가 원하던 대로 가방끈을 늘렸으면 어땠을까? 엄마는 내 학비를 자신의 빚더미처럼 여기고 계속 부담스러워하면서 계속 술 구덩이에 빠져있고 나는 나대로 만족스러워하지 못하면서 들인 비용이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잘하지도 못하는 커리어 지옥 같은 생을 지속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어떤 의미로는 나의 구세주. 나는 이 책을 필두로 십 년간 꽤 많은 책을 읽고 나의 결심을 지켰으니 스무 살이 된 내 결심의 초석. 그리고 나는 여전히 예술가를 꿈꾸니 내 꿈의 한 조각.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지금까지 내가 쓴 이야기들이 독서랑 무슨 관계란 건지 궁금하신 분께 말씀드리자면, 나는 책이, 이 무용해 보이는 이야기가 어쨌든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간략하게 요약했지만 이건 무려 십 년도 넘는 기간 동안 인생에 걸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나는 꾸준히 나와의 약속을 지키며 독서를 했고, 서른이 넘어서는 십 대, 이십 대 시절보다 훨씬 나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간 쌓아놓은 커리어를 던져버리고 전공과 상관없는 새로운 일을 하면서 지냅니다. 막 뭐가 드라마틱하게 변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미래는 고맙게도 하루씩 오니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하면서 지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어 책 한 권을 다 보는 것처럼.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내어 글을 완성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