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새_오정희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 대하여

by 멋쟁이머리칼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이건 광화문 교보문고에 한동안 커다랗게 매달려 있었던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파블로 네루다라는 시인의 '질문의 책'이라는 책에서 발췌된 것이라고 하는데, 한 번은 이 책이 궁금해져서 서점에서 찾아 들춰보았습니다. 질문의 책이란 제목답게 책 전체에 저런 느낌의 질문만이 가득 써있었습니다. 답 없는 문제들을 이미 너무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관계로 굳이 이런 것까지 읽고싶지 않은 마음에 저는 급하게 흥미를 잃고 질문의 책을 덮어버렸습니다.

어쨌든, 제가 오정희의 새를 읽고 하고싶은 이야기는 저 문장에서 시작합니다. 어른은 모두 어린 시절을 통과해 온 사람들이니까요. 질문의 책에 써있던 하고 많은 질문 중에서 저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는 것을 보면, 어린 시절의 몸이 점점 자라나 커다래지는 동안, 어린 시절의 정신은 시간을 통과하면서 그 존재가 희미해질 뿐인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른이 되어 아이이던 존재의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에,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가는 걸까하는 생각이 또 듭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소설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정희의 새, 저는 사실 이 소설을 KBS TV 문학관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드라마형식으로 처음 접했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슬픈 내용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주인공 여자아이의 나래이션이 꽤나 멋지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그 나래이션이 이 소설의 문장들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홉살 남동생을 둔 열두살의 여자아이입니다. 이름은 우미, 우주에서 가장 예쁜 아이라는 뜻으로 엄마아빠가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태어날 때는 안 예쁜 아이가 없고, 도화지같이 하얗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들이죠. 그러나 여기에 또 흔한 설정이 추가됩니다. 가난과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가정의 붕괴. 아빠의 사업이 망하고, 알콜의존증에 걸린 아빠는 엄마를 때리며,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이들은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빈민가에서 온갖 위험에 노출된 채로 살아가게 되는 흔한 스토리.

생각만 해도 우울한 상황설정입니다. 아침 출근길에 이 책을 잃다가 기분이 하도 우울해져서 오전 근무를 망쳐버린 날이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슬픔에서 시작해서 슬픔으로 끝나는, 밝은 내용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어둠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어두움을 표현하는 문장이 참 고운 것이 묘한 매력이라고나 할까요.

"엄마의 얼굴은 뿌옇게 흐린 껍질 속으로 안타깝게 숨어버리고 삭지 않은 피멍으로 언제나 꽃이 핀 듯 울긋불긋하던 무늬, 엄마의 얼굴에 그려지던 그림만 남았다. 문득 훅 스쳐가는 친숙한 냄새, 희미하게 떨리는 가녀린 부름을 들은 것 같아 뒤돌아보면 햇빛, 바람, 엷어진 그림자 같은 것이 있었다. 누가 엄마의 얼굴에 그림을 그렸나? 슬픔의 그림을 그렸나?" 이 책에서는 아빠에게 맞아서 멍이든 엄마의 얼굴에 꽃이 핍니다.

소설은 시종 우미의 시선을 따라 흘러갑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서웠던 것은, 언어적, 물리적인 폭력상황과 유혹에 노출된 어린아이의 시선이 너무도 차분하게 외적 상황을 내재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미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의 가치 판단이 없이 외재적 폭력을 자연스럽게 내재화하고 따라합니다.

아버지는 떠나버린 엄마의 빈 자리를 다른 여자로 채웠는데, 그 여자도 다시 때립니다. 어리고 예쁜 술집 여자를 데려다 앉혀놓고는 도망갈까 의심을 하면서 그 여자를 때립니다. 이 여자는 무섭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는 그 여자를 딱 한 번 때렸을 뿐이고 우리는 그 여자가 무서워할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 여자는 우리보다 키도 훨씬 크고 힘도 세다. 하지만 우리가 종이인형처럼 가만히 있었어도 외숙모는 매일매일 미쳤고 큰어머니는 우리 때문에 자기가 명대로 못 살고 지레 죽을 거라고 겁을 먹지 않았던가."

그런데, 사실 여자가 무서워한 건 이거였죠.

"우리는 모두 매일매일 무엇인가가 되어가는 중이지. 너는 지금의 내가 되기 전의 나야. 아니면 내가 되어가는 중인 너라고 말해야 하나? 그래서 나는 너희들을 보는 게 무서워 견딜 수 없어."

이 여자의 생각처럼 우미도 이 소설이 끝나고 난 이후의 시점에 결국에는 아버지를 따라왔던 젊은 여자처럼 술집으로 흘러가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글을 읽으며 제 인생에서 지나간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처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퇴학을 당하게 된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몇몇 남자아이들과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자퇴를 했던 할머니와 같이 살던 기억 속 친구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지금 내 눈에 안 보인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이,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수 많은 인생의 수많은 슬픔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다짐과 결심과 실패와 새로운 결심과 행동이 필요한지는 오랜 시간을 견뎌낸 어른이라면 아마 잘 알 것입니다. 어린 시절이 희미해지도록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어떤 어린아이라도 일어서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몸이 커버리는 불행을 맞이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나서 박봉의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기부금을 늘렸습니다.

나였던 아이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보면 저는 내 안에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고 대답할테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나였던 그 아이가 내 안에 남아서 순수하게 존재하기를 바랄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사라졌으면 하는 아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나마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고 다른 이의 아픔에 가 닿아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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