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내향형 7년 차 사회복지사, 10년 차 경단녀의 다시하는 사회생활
10년 전까지 나는 사회복지사였다. 사회복지사업 중에서도 가장 업무강도가 높은 사례관리와 지역사회보호사업의 일을 2곳의 직장에서 약 7년 동안 있었다. 동료들과도 또 업무적으로도 능력과 성과를 꽤 인정받으며 다녔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사회복지사라는 옷이 버겁고 무겁고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잘한다고 칭찬받고 인정받을수록 겁이 났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게 늘 힘들었다. 툭툭치고 들어오는 대상자들의 자살 위협, 독거장애인의 사망, 치매노인의 실종, 아이의 가출 등등의 예상치 못한 긴급한 일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 것을 내어주고 내어받는 게 익숙하지 못했다. 부탁은 잘 받으면서 부탁을 하는 건 힘들었다. 그렇다 보니 나는 차라리 관계중심이 아닌 업무중심으로 일하는 게 편했다. 긴 가정방문과 상담 후 남겨야 하는 각종 기록업무들을 할 때 왜 그렇게 졸렸는지. 이제는 그런 내가 왜 그랬던 건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남들보다 사람들을 만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극 내향형의 인간이라 그랬다는 걸. 어릴 때 워낙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며 조금은 무뎌졌다고는 하지만 이 타고난 기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극 내향형 엄마는 비교적 정적인 내 아이와도 간간히 떨어지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반면에 이런 내향형 인간은 사람과의 만남의 여운과 감동을 비교적 오래 남겨둔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과의 만남을 하지 않아도 외롭거나 힘들지 않다. 그래서 10년이 넘은 지금도 내가 만났던 이용자들, 후원자들, 사례관리가정의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 그분들과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과는 쓴소리도 농담으로 받아칠 줄 아는 평생 친구들이 되었다. 그 친구들은 이제는 잘 묻지 않지만 나에게 몇 년 전까지 늘 묻는 말들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게 인사였는지도 모르겠다.
"일 다시 안 할 거야? 경력이 아깝잖아요. 다시 일해봐요."
나의 공식적인 이력은 2015년에 멈춰 있었다. 이 기간이 이렇게 오래된 일이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나이가 되면 다시 일을 하리라는 건 나도 믿어 의심치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육아와 병행하며 경력을 살린 일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고, 3년을 끼고 있던 아이를 놓고 8시간 이상을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것도 선뜻 내키지 않았다. (이 힘든 고민들을 다 내려놓고 전장에 나가는 엄마들을 나는 리스펙 한다.)
그로부터 2025년 현재 나의 포지션은 전업주부도 아닌 워킹맘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부유하고 있다. 성공한 블로거도, 글발 날리는 작가도, 잘 버는 이커머스 사업가도, 유능한 환경모임 리더도, 헌신적인 동화책봉사자는 못 되었지만 분명 나는 이 모든 일들을 육아와 살림과 함께 그럭저럭 꽤 해내고 있다. 그렇게 매달 따박따박 티 나는 월급은 없으나 소소하게 스며드는 수입들을 모아 두기도 했다. 고로 난 전업주부이기도 했고, 워킹맘이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워킹맘도 아니고 전업주부도 아니었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일하는'은 '소속과 소득이 일정한 일을 하는'의 축약이라는 걸 워킹맘도 아닌 전업주부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10년간 굴러먹으며 온몸으로 체감했다. 남들은 출근하지 않는 나를 일하는 엄마로 여기지 않았다. 요즘 말로 슈퍼맘이었던 친정엄마조차도 내가 바쁘다고 하면 이해를 못 했다. 그렇다고 헌신적인 전업주부도 아니고 잘 나가는 워킹맘도 아니었기에 그런 핀잔을 들으면 화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혹자는 이 경계를 넘나드는 엄마들을 낫워킹맘*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주부면 주부지 앞에 전업을 붙이는 건 가히 폭력적이라고도 했다. 고로 전업주부의 반대말은 워킹맘이 될 수 없으며 워킹맘도 아닌 전업주부도 아닌 경우를 차라리 낫워킹맘이라고 부르기로 했단다. 고마웠다. 전업주부와 워킹맘의 그 사이에서 저울질하던 사람에겐 기댈 중심이 생긴 거 같았다. 또 누군가는 일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경단녀가 아니라 경력보유녀라고 정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와 같은 말들에 반갑게 맞장구를 쳤지만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지는 않았다. 마음 깊은 곳에 오랜 기간 얹힌듯한 체기는 그대로였다. 아무리 열심히 내게 주어진 상황을 인내하며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바쁘게 지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스스로 나를 다독이는 방편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또 그 경계를 오가며 지내는 일이 나와 꽤 맞는다는 게 더 문제였다. 어쩌면 성격과 적성상 이게 나의 길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또 영영 이 상태로 굳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이 불편함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 걸까? 무엇이 나를 이렇게 덜 떳떳하게 하는 걸까.
그렇다면 다시 그 경계를 넘어가 보기로 했다. 아예 전업주부가 되기로 했냐고? 아니다. 기왕이면 월급도 따박따박 들어오고 뚜렷한 JOB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로 1년간 돌아가보기로 했다. 그동안 나의 이 모호한 정체성을 타파하기 위해 정면돌파하기로 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였는지. 그리고 나는 나를 관찰할 것이다. 극 내향형인 낫워킹맘이 여전히 사람 만나는 게 고되고 버겁고 힘이 들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빨린 기를 10년 경력의 살림력, 육아력, N잡력으로 자가 충전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가 될지 나도 궁금하다.
그런데 나는 그들 안에서도 또 경계에 서게 될 것 같다. 하루 4시간만 일하는 단기 계약직 사회복지사니까.
*낫워킹맘이라는 단어는 도서 '#낫워킹맘, 워킹맘도 전업주부도 아닌 우리들' (고하연 외 3, 나비클럽, 2023)에서 따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