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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꼽슬 Curlywavy Jang Oct 28. 2019

[아르텔레스 #1] 북유럽에서 침묵을 만나다

아르텔레스 크리에이티브 센터 "침묵 인식 존재" 워크샵 참여 

  2016년 11월 한달동안 핀란드 하민키로(Hämeenkyrö)라는 곳에 있는 아르텔레스 센터(Arteles Creative Center, http://www.arteles.org)에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침묵, 인식, 존재(Silence, Awareness, Existence)”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 준비 중인 작품들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여러 생각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오게 된 곳이다. 더불어 핀란드 대자연의 겨울 속에서 내가 지금까지 인식하지조차 못했던 뭔가를 느끼게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와 환상도 상당 부분 작용했던 것 같다.

아르텔레스 크리에이티브 센터 외부 모습

   아르텔레스는 원래 학교였다고 한다. 1901년에 세워져서 2009년까지 운영되다가 학생들이 주변에 있는 큰 학교로 옮기게 되면서 이 학교는 폐쇄하게 되었다. 이후 이 건물의 소유주인 하민키로 시가 이 공간을 팔려고 내놓았을 때 지금 이 곳을 운영하고 있는 예술감독 티무 라사넨(Teemu Räsänen)이 인수하여 그 때부터 아르텔레스 크리에이티브 센터(Arteles Creative Center)를 설립, 운영해오고 있다. 아르텔레스 센터 곳곳을 돌아보면 아직도 학교의 느낌이 많이 남아있다. 건물 한 켠에 예전 교장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 얼굴이 붙어있고, 아이들이 뛰어놀았을 넓은 공터도 있고, 어떤 방은 딱 봐도 교감선생님 집무실같이 생겼다. 

아르텔레스 크리에이티브 센터 2층 모습

이곳이 재미있는 이유는 이런 공간에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간 아티스트들의 손때가 묻어 하나의 예술 공간으로 변화되었고 그 에너지가 곳곳에 남아있다는 거다. 건물에 처음 들어섰을 때 마주하는 기하학적인 드로잉, 내가 묵었던 방 앞 작은 공간에 그려진 거미줄 같은 그림들, 공터에 있는 설치물들이 지금 이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어떤 기운을 전해준다.







1. 사일런트 데이(Silent Day)


   이 곳에 온지 일주일 되었을 때, 첫 사일런트 데이(Silent Day)를 가졌다. 말 그대로 서로 말을 안하고 하루를 지내는 날이다. 사일런트 데이는 티무와 함께 이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코디네이터 리타(Reetta Pekkanen)가 미팅 때 참가자 모두의 의견을 물어 결정하곤 했다.(월말 쯤에는 침묵보다는 소통이 작업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아서 정했던 사일런트 데이를 없애기도 했다.) 사일런트 데이를 보내는 방식도 가지가지였다. 한 친구는 사일런트 데이의 침묵을 소리로 담아보겠다며 각자가 말을 안하고 자기 일상을 보내고 있는 거실, 주방, 방, 건물 밖 공터, 도로에서 침묵을 녹음하더라. 나로서는 이런 침묵을 정말 오랜만에 혹은 처음 겪는 것 같았다. 생경한 느낌 속에서 익숙하게 지냈던 일상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작은 것들이 많았다. 그날 내 방에서는 외장하드 소리가 가장 큰 소리라는 걸 처음 알았다. 컴퓨터의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도 큰 부분을 차지했고, 게다가 몰랐던 건 내 몸에서 그렇게 소리가 많이 나더라. 간헐적으로 배에서 들려오는 꾸룩꾸룩 소리,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떨며 내는 바스락 소리, 반쯤 막힌 코에서 나는 쉰소리. 그래도 이 방에서 살아있는 건 나 하나뿐이라고 소리로라도 대단한 존재감을 나타내는 듯 했다. 

사일런트 데이 아침

   사일런트 데이가 끝난 다음 날, 각자의 느낌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보니 사일런트 데이를 보내는 와중에 모두가 만날 수 밖에 없는 공간인 주방에서는 다들 불편해하는 지점이 조금씩 있었던 것도 같았다. 그 불편함의 지점이 무엇인지는 각자 달랐겠으나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소간의 편안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아마도 그러는 와중에 상대방에 대해 말로 반응하는게 아니라 몸과 느낌으로 반응한다는 게 뭘지에 대해 생각해 본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대화를 하지 않아도 한 공간에 누군가가 있다라는 존재감 자체가 가지는 무게라는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클지도 모르겠다.       

   이 곳에 올 때 지금 준비 중인 작품 “캇트라인”과 내년에 무대에 올리려 하는 “상하이 알리바이”에 대한 잘 만들고 싶은 욕심을 이만큼 싸들고 왔다. 사일런트 데이를 가지며 욕심이 많을수록 생각과 움직임에 불필요한 지점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여러번의 사일런트 데이 동안 ‘나는 왜 이토록 이 얘기를 하고 싶은지…’, ‘이 얘기를 진짜 하고 싶긴 한건지…’, '난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몸과 느낌으로 반응해보려 노력했다. 가끔씩 나라가 이렇게 시끄럽고, 세계가 술렁이는 판국에 생전 처음 와보는 시골 구석 어느 자락에서 사일런트 데이를 가지고 있는게 모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적도 많다. 하지만 그 침묵 끝에서 뭔가 나와 그리고 내가 속해있는 사회에 의미있는 이야기들을 뱉어놓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2. 이 곳에서 만난 아티스트들


   이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글쓰는 사람도 있고, 그림 그리는 사람도 있고, 사운드 작업하는 사람도 있고, 영상하는 사람도 있고, 또 뭐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 갔던 워크샵은 공연에 관련한 워크샵이고 정해진 시간동안 진행되는 내용이 아주 명확하게 짜여 있었는데, 이 곳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아주 넓은 공동체 안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가는 과정이다. 이런 다소 넓은 생각의 폭이 이 곳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다들 자발적으로 이곳에 온 것이겠다만 가끔은 이 사람들이 그냥 여기에 그냥 툭 던져져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뭔가를 시키는 사람도 없고, 강요하는 느낌도 없고, 따라서 초조해하는 느낌도 없고, 각자 이 상황과 분위기에 반응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나도 ‘뭐가 어찌됐건 간에 나는 지금 여기 있고, 여기서 느껴지는 데로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적응을 하려 노력했다.

   이 곳에서의 프로그램은 자유롭게 운영된다. 침묵, 인식, 존재(Silence, Awareness, Existence)라는 테마도 이들을 이 곳에 오게 만든 하나의 큰 동력일 뿐이지 이들의 생각의 폭을 제한하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스탭들도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작업을 하는데 도움을 주려할 뿐 뭔가를 제한하거나 특정 과제를 강요하지 않는다. 각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작업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자극을 얻을 수 있게끔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필요하다면 잠시 동안 레지던스를 떠나있어도 되고 새로운 영감을 위해 짧은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월요일 낮에는 전체가 모여서 각자 하고 있는 작업의 진행 상황이나 모두에게 건의하고 싶은 내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의 현재 작업과 과거 작업에 대한 소개

   며칠에 한 번씩 저녁에 모여 각자 기존의 작업과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진다. 뭔가 이곳의 고요함과 정지되어 있음이 가끔은 답답하게 느껴질 때 흥미로운 생각들을 자극을 받았던 시간이라 내가 참 즐겁게 참여했던 시간 중 하나이다. 내 차례에 나는 2월에 무대에 올리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공연인 “캇트라인(Cut/ine)”에 대해 소개했다. “사회 안에서 경계와 선긋기는 어떻게 생겨나는지?”, “선 안에 속해있을 때와 밖으로 밀려났을 때 내가 가지는 이중성”등 이러한 내용에 대해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이 작업에 대한 소개와 함께 2014년에 무대에 올렸던 “씹을거리를 가져오세요(Bring Your Own SSIP)”에 대해 소개를 했다. 나는 왜 연극 작업을 하고 있는지, 각각의 공연이 던지는 질문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여기있는 작가들 대부분이 미술, 영상, 음악, 시 등의 개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일반인들에게 생각을 듣고 그 이야기를 가지고 직접 담화를 만들어가는 공동창작 형식의 다큐멘터리 씨어터의 작업 방식에 대해 흥미로워 했다. 

   발표를 들을 때마다 여기있는 참가자들이 가진 흥미로운 생각들, 예술적 감성에 놀랄 때가 많았다. 이 중 나다니엘 오버(Nathaniel Ober)라는 친구는 캘리포니아 쪽에 거주하며 딱히 정해진 곳 없이 밴에서 살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이 친구는 실험 음악, 설치 예술, 그래픽, 영상 등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했는데 이걸 다 혼자 어떻게 하지라는 싶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를 소화했다. 그 중 최근의 작업은 Orbits(http://nathanielober.com)이라는 작업이었는데 태양계 내의 행성들이 공전주기를 비율로 계산해서 여러 악기들이 각자 소리를 내게 만들고, 그 소리가 조화를 이뤄 하나의 음악이 되고, 그 공간 자체가 설치 작품이 되는 형식이었다. 이 친구는 어떤 한 분야에 정통성을 가지고 그 분야에 대한 작업을 하기 보다는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며 관심있는 분야가 생길 때마다 그 분야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그리고 그것에 자신에게 느껴지는 데로 반응하고 그걸 작업으로 표현한다고 했다. 그리고 브랜든 달머(Brandon Dalmer)라는 친구가 자신이 했던 작업 중 Wreck City(https://vimeo.com/66699975)를 소개했다. 캐나다 캘거리에 있는 재개발 지역에 있는 9개의 집을 8명의 아티스트들이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그 공간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꾸미고 그곳에 사람들을 초대해 전시를 관람하게 하고 다함께 파티도 했다고 한다. 이들이 만든 짧은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그 중 한 작가가 이야기하기를 “잘 꾸며진 갤러리에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살아있는 예술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디타(Ditte Rasmussen)라는 친구는 자수(embroidery)를 위주로 작업을 했는데 대부분의 작품이 A4용지 사이즈보다 작은 크기였다. 작고 섬세한 작업한 작업이다보니 묘하게 집중해서 들여다보게 되는 매력이 있는 작업들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예. 성평등에 관한 이야기, 덴마크 정부에 대해 할 말 등) 자수를 놓아 길거리 표지판 구석에 붙여놓는다거나 담벼락에 붙여놓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전달했다.

아르텔레스를 다녀간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흔적

   이 친구들의 여러 작업을 보며 분야도 다르고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도 다 달랐지만 이들이 하고 있는 작업에서 각자의 예술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것을 봤다. 그 무엇인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느끼는 바는 각자 다르겠지만 중요한 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자극들 속에서 공연 이상의 뭔가의 예술이 보이고 그 뭔가에 대한 상상력이 사부작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은 공연이라는 틀 안에서 이러이러 해야만 되…”라는 무형의 경계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련의 경험들이 예술의 경계에 대한 확장된 시야를 제시해주는 듯 하다. 이런 생각들의 끝에서 “과연 예술을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끊임없이 제시받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내 예술을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치환되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내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말로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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