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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꼽슬 Curlywavy Jang Oct 28. 2019

[아르텔레스 #2] 캇트라인 작품 구상하기

"나에게 캇트라인은 OOO이다."

1) 캇트라인 인터뷰


    아르텔레스에 있는 동안 차기작 캇트라인과 관련해서 여러 참가자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열두 명의 참여자 중 다섯 명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모두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줬다. 다큐멘터리 씨어터 장르의 특성상 인터뷰를 하게 되면 일반적인 질문에 이어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물어보는게 되는데 개인주의적 문화를 가진 서양 친구들에게 이런 것을 물어보는 게 실례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내가 가진 캇트라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 해 주었다. 

아르텔레스 내 사우나에 만들어놓은 캇트라인
1) 최근 어떤 캇트라인에 걸려서 좌절했거나 기분이 나빴던 경험이 있는가?
2) 선긋기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3) 사회에서 경험하는 캇트라인 외에 내 스스로 만들어내는 캇트라인은 어떤 것이 있는가?
4) 직업, 소득수준, 사는곳과 같은 가시적인 계층외에 당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집단 간의 경계는 어떤 것이 있을까?
5) 나에게 캇트라인은 OOO이다.


   위의 질문에 대해 인터뷰 서두에 물어보고, 그 친구의 경험과 평소 관심사에 있어서 존재하는 캇트라인에 따라 편하게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인터뷰 말미에 마지막 질문 “나에게 캇트라인은 OOO이다.”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말보다는 캔버스위에 그림이나 다른 어떤 형식으로 표현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다른 문화권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다 보니 한국에서 인터뷰 할 때와는 또 다른 시각들을 접할 수 있었다. 나도 한국사회에서 겪은 여러가지 것들을 그들에게 이야기하고 일방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받는 인터뷰라기보다 대화를 한다는 느낌으로 그들과 이야기 나눴다. 인종, 언어의 차이로 인한 소외감, 차별에 관한 이야기도 많았고, 당시 미 대선이 있던 시기여서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그리고 최근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와 이러한 현상들과 관련된 신고립주의(Neo-isolationism)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 중 어렸을 때 호주로 이민을 간 중국계 호주인 친구가 이야기해준 자신의 경험은 많은 생각을 가져다줬다. 

 “호주에 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소개할 때 중국인이라고 얘기한다. 사실 그렇게 느낀다. 나는 지금도 중국 문화를 계속 이어오고 있다. 나는 중국말을 할 줄 알고, 중국 영화, 뉴스를 보고 이해할 줄 안다. 언어를 계속해서 할 줄 안다는 건 아주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문화가 존재한다는 건 그 문화의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언어가 존재하는 한 그 문화는 이어져나갈 수 있다…(중략)

아르텔레스에 있을 동안 작품도 같이하고 인터뷰도 하며 가까워진 친구들

   하지만 외국에 나와있을 때는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나를 호주인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내가 호주에 있을 때는 나를 호주인이라고 소개한 경우는 많지 않다. 왜냐면 이런 방식으로 소개하는게 편하기 때문이다. 가끔 홍콩에 갈 때 나를 호주에 살고 있는 중국인이라고 소개하면 “넌 가짜 중국인이야…”라고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집단에 대한 높은 기준을 들이대지만, 나를 소개할 때 호주에 살고 있는 중국계 호주인이라고 얘기하면, 어떻게 아직도 중국어를 할 줄 아냐고 신기해하며 나에 대한 잣대나 평가기준이 확 낮아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나는 내 첫인상을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고민한다. ‘내가 이렇게 소개를 할 때 상대방은 나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질까?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가? 어떤 방식이 나를 설명하기 가장 쉬운 방식일까?’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고 느낀다.”


2) 파이널 프레젠테이션 “사우나하기 X 캇트라인(Sauna Experience X Cut/ine)”


   여기에 있으면서 다른 친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즐겁게 놀이하듯이 작업하는 걸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던 때가 있다. 가끔은 술자리에서 산통깨고 자기 곡의 일부 타악 연주를 시킨다거나, 자기가 만든 작업 영상을 보다보다 지쳐 술이 깰 때까지 주구장창 보여준다거나, 난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이거 엄청 재밌지 않냐며 같이 해보자는 말을 건넬 때마다 ‘이건 눈치가 없는건지, 사회성이 없는건지…’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 안에서 뭘 꼭 만들어 내겠다기보다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놀면서 그 뭔가에 반응하는 모습만큼은 존중하고 싶었다. 이 곳의 분위기에 반응하면서 그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걸 찾기 시작한 때가 아마 이 곳에서의 시간이 반쯤 흘렀을 즈음인 것 같다. 고민하고 싶은 만큼 고민하고,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자고 싶은 만큼 자면서 정말 열심히 느끼고 집중하기 시작했던 듯하다. 그러면서 이곳에서의 생활이 ‘캇트라인’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이곳의 생활 자체가 그 ‘뭔가’로 느껴졌다. 함께 작업할 배우도 없고, 마땅한 무대도 없는 상황에서 어떤 작업을 해볼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이런 고민을 상황을 탓하며 흘려보내기에는 아쉬운 마음에 이 곳에서만 할 수 있는 나만의 방식으로든 표현해보기로 했다.

캇트라인 사우나에 걸어둔 드로잉, 각자가 생각하는 선긋기에 대한 이미지

   내가 여기서 한 마지막 작품 발표는 “사우나하기 X 캇트라인(Sauna Experience X Cut/ine)”이다. 아르텔레스에는 오래된 핀란드 전통 방식의 사우나가 있다. 핀란드 사우나는 혼탕이다. 그리고 옷을 다 벗는다. 여기서 사우나는 핀란드 문화의 속살 같았다. 굉장히 내밀한 부분의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듯한 소중한 느낌을 받았다. 이 곳에 온 이후로 거의 매일같이 사우나를 했다. 이 곳에 있는 자작나무 세 그루 정도는 내 손으로 불덩이 속에 집어넣은 것 같다. 어쩌다 늦은 시간 혼자 사우나에 있을 때면 어릇한 불빛, 나무타는 소리, 사우나 특유의 냄새 안에서 생각하는게 그렇게나 좋았다. 

Sauna Experience X Cut/ine 1_2016.11

사우나에 빠져있다 보니 몸을 가리는 마지막 한 장까지 벗고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소중한 곳에 뭔가 선긋기가 시작되고 벽이 만들어지면 이들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나는 이 사회에서 언제 처음 선긋기를 했고, 그 선 앞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마지막 이틀동안 남들 몰래 사우나 안에서 열심히 선을 그었다. 첫 설치미술이자 공연이었다. 누군가는 이 불편하고 이상한 사우나를 즐겼고, 누군가는 이 곳에서 처음으로 옷을 벗는 모험을 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사우나를 매우 불안해했다. 가끔은 이런 불편함이 현실을 대면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각자가 어떤 생각을 가져갈지는 만드는 사람이 감히 재단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기에 마음껏 표현하고 나도 그 안에서의 불편함을 남들과 똑같이 경험했다. 공간과 공간이 주는 느낌, 그 공간 안의 사람들과 반응하며 작품을 즐기며 만든 이 기억 자체는 앞으로 작품을 만들어 나갈 때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할 것 같다.






Sauna Experience X Cut/ine 2_2016.11
Sauna Experience X Cut/ine 3_2016.11
Sauna Experience X Cut/ine 4_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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