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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꼽슬 Curlywavy Jang Oct 28. 2019

[그로토프스키 #2]이 곳에서 노래를 중요시하는 이유

그로토프스키 워크센터의 워크샵의 핵심, 노래부르기(Singing)!

[그로토프스키 #1]

   예지 그로토프스키(Jerzy Grotowski)는 연기 예술이 무엇인지 죽기 전까지 탐구했던 연극사에서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연극인 중의 한명이다. 그는 작업 초기에는 가난한 연극을 주창하며 배우는 장치적 도움 외에 육체, 리듬, 목소리만으로 진실한 연기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 극한의 상태까지 다가가 자신의 성격, 욕망, 무의식까지 탐구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6년에 이탈리아 폰테데라 지방에 그로토프스키 워크센터(The Workcenter of Jerzy Grotowski)를 설립하여 이곳에서 자신의 후기 이론인 운반으로서의 예술(Art as vehicle)과 행동하는 예술가(les artistes qui agissent)에 대해 탐구했다고 한다. 1999년 그로토프스키가 타계한 후 그의 연극적 후계자인 토마스 리처드(Thomas Richards)가 그의 뒤를 이어 오고 있으며 현재는 18명의 단원들과 함께 연극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 곳에서는 매년 여름과 겨울 두 번에 걸쳐 다른 성격의 워크샵을 진행한다. 그 중 올해로 5회째를 맞은 그로토프스키 워크센터의 하계 인텐시브 프로그램은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극 연출가와 배우들이 모여 2주 동안 전통적인 드라마, 제의, 연출론, 몽타주 테크닉, 드라마터그 기술, 신체훈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연기에 관한 그 무언가를 찾아보고자 진행되는 워크샵이다.

토마스 리처드(좌)와 예지 그로토프스키(우)

   나는 <다음방으로(Next Room)>, <베를린 알리바이(Berlin Alibi)>, <씹을거리를 가져오세요(Bring Your Own SIP)>등의 작품을 만들어오며, 연출이 배우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 왔고,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몇 가지 질문에 대해 여전히 고민 중이다. 특히 2014년 <씹을거리를 가져오세요>라는 다큐멘터리 연극 형식의 공연을 올리며 배우가 아닌 일반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연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 순간이 있었다. 당시에 공연을 거듭할수록 일반인 출연자들이 무대 위에서 관객과 나누는 과정에서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에 인위적인 연기를 더해가고, 각자의 이야기를 더 잘 들려주기 위해 출연자 나름의 연출을 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럴수록 연습 과정에서 공유했던 진정성이 사라지고, 전체적인 공연의 흐름도 느슨해져만 갔다. 공연 시작 전마다 배우들과 이러한 점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위적 연기가 아닌 진짜 모습을 찾아보고자 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마지막 공연까지도 이러한 점은 잘 해결되지 않았고 내 자신이 연출가로서 앞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하나의 숙제로 남겨졌다.

   이런 순간을 다시 마주했을 때 연출로서 어떤 방법으로 관객과 배우가 만나는 진실된 순간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중 그로토프스키의 객관연극(Objective Drama)과 부정법(Via Negativa)에 대해 접하게 되었다. “무엇을 하고 싶다.”라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특정한 연기를 제거하고 없애는 부정의 접근법, 머리로 이해하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과 마음을 비웠을 때 생겨나는 생각과 충동을 신체를 통해 반응하게 해야 한다는 그의 연극 이론에 많은 관심이 갖게 되었다. 여러 책자와 논문을 통해 개인적으로 공부를 해왔지만 실제로 몸을 통해 체득하고 싶은 갈급이 있었다. 그로토프스키의 생전에 함께 작업한 그의 동료들과 워크샵을 진행하며, 앞으로 내가 연극 작업을 해나가며 작품과 배우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나만의 방법론을 만들어 내고자 이번 워크샵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폰테데라의 그로토프스키 워크센터(Grotowski Workcenter)


워크샵 중 - 노래부르기(Singing)에 대하여


- 스코어 만들기: 원리, 실행, 목적, 의미와 내용
(Creation of the score: its logic, actions, intentions, meaning and content)
- 노래부르기(Singing)
- 소리의 바이브레이션(Vibration of the voice)
- 공간 지각, 공간을 채우는 요소들에 반응하기
(Awareness of space and reacting to its constituent elements)
- 즉흥: 충동/ 반응에 민감한 정신상태(Improvisation: the impulses / the vigilant mind)
- 구조 내에서의 즉흥극(Improvisation within a structure)
- 만들어진 동작과 리듬(Composed movement and rhythm)


   위의 내용은 워크샵 참가 전 진행 내용에 대해 소개를 받은 내용이다. 일반적인 연극 워크샵의 진행처럼 보이는 위의 흐름 안에서 이들은 자신들만의 연극적 스타일을 명확히 가지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특색있는 부분은 노래부르기였다. 연습 첫날부터 워크샵 참가자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현재의 그로토프스키 워크센터는 토마스 리차드(Thomas Richards)가 이끄는 집중 연구팀(Focused Research Team in Art as Vehicle)과 마리오 비아지니(Mario Biagini)가 이끄는 오픈 프로그램(Open Program)으로 운영되는데 두 팀으로 나뉘어 그로토프스키 워크센터의 1층과 2층을 나누어 독립된 형태로 훈련과 연습이 진행되었다. 본인은 토마스 리차드(Thomas Richards)가 이끄는 집중 연구팀에 속해서 워크샵을 참가했다.

그로토프스키 워크센터 2층 내부


   연습 첫날 그로토프스키 센터 멤버들의 노래 시범으로 연습이 시작되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가진 가장 깨끗하고 세련된 옷을 입고 노래 연습에 참여하도록 안내받았다. 10명 정도의 워크센터 멤버들이 공간을 자유롭게 쓰며 한데 어우러져 민속적인 색깔의 음악을 선보였다. 단순히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통해 무언가를 강렬하게 표현하는 형태였다. 대부분 내용을 알 수 없는 가사의 노래를 불렀고 참여자들 또한 그 안에서 어우러져 음악을 따라가며 참여하기 시작했다. 워크센터 멤버들 중 일부는 노래를 하며 태초에 아기가 된 것 같은 모습을 표현하기도 했고, 두 사람이 함께 노래를 주고 받으며 뭔가를 함께 축복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부연 설명없이 진행되는 낯선 노래와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곳의 고유한 훈련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느껴지는 데로, 그리고 몸이 움직여지는 데로 반응해봤다. 다소 어리둥절하며 참여했던 첫 번째 노래 연습이 끝난 뒤 토마스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와 함께 방금 전 진행했던 연습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의 진행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노래는 인생의 순환과도 같아서 함께 노래를 할 때는 서로 가까이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을 열어줘야만 노래가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다. 또한 노래는 부르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관계의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몸이 단단하게 경직된 상태에서는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내가 노래를 부를 때는 자신의 노래를 다른 사람에게 내 보내고 다른 사람이 부를 때는 그 노래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몸을 이완시키고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야 한다.”

   이 노래 연습은 휴식 기간을 제외하고는 2주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진행되었으며 이 워크샵에서 가장 많은 고민과 생각을 안겨준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토마스와의 노래 연습이 끝난 뒤 워크센터의 다른 멤버들과 함께 노래를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노래의 가사나 악보는 주지 않았으며 오로지 멤버들의 개인 수업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1) 돔발라 쎄라꿀리 라이아, 돔발라 쎄라꿀리 라바리쎄루
2) 에보미 쎄오, 에보미 쎄오, 곤도 차빌레 아베리


   대략적으로 위의 가사였는데 워크센터 멤버 중 브래드(Bradley)는 이 곡들은 고대로부터 구전되어 전해온 곡들이기 때문에 지금의 언어로 옮기는 데는 어려움이 있고 그렇게 한들 원형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이 내용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인연습을 삼가고 워크센터 멤버들과 있을 때에만 함께 연습하는 것이 좋다고 안내했다.

   노래부르기의 두 번째 날은 첫번째 날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때는 워크샵 참가자들을 관찰자가 아닌 함께 노래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참여시키려 했다. 넓은 공간에서 노래가 진행될 때 각 퍼포머들은 각자가 원하는 공간으로 이동하며 전체를 넓게 사용했다. 노래가 진행되는 동안에 가장자리에 나란히 서서 노래를 지켜보는 참가자들이 있었는데 이는 노래가 공간을 흘러가는데 벽으로 작용하며 흐름을 막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어떤 반응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서로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서로를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노래부르기의 세 번째 날에는 그로토프스키 센터 오픈 프로그램의 수장인 마리오 비아지니와 첫 음악 연습을 진행했다. 토마스 리차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의 연습이었다. 토마스는 언어를 알 수 없는 민속 음악 위주로 진행했었으나, 마리오는 아래와 같은 대부분 종교적 성격의 음악을 영어로 부르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1) (O Ma U Ma Darling, O Emma O...(오마유마 달링 오 에마 오 유 돈 노...) 

 2) Dear Lord, Dear Lord...(디어 로드 디어 로드...)

 3) Lead'em John, Lead'em John...(리드뎀 존 리드뎀 존 리드뎀 존 위윌해브투고)

 4) Somebody is knocking on the door, knock, knock...(썸바디 이즈 나킹 온더 도어 낙낙 와이돈츄 앤써 썸바디 이즈 나킹온더 도어)

마리오는 단순히 서서 음악을 듣고 따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들으며 몸으로 반응하고 그에 따라 노래를 하는 방식으로 연습에 참여하라고 설명했다. 마리오는 이 연습을 진행할 때 아래 내용에 대해 연습이 끝나는 날까지 강조했다.

“교감을 하려면 둘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이 공간 안에서 얼마만큼의 거리가 적당한지 자연스럽게 찾아내야만 교감이 가능하다. 또한 이 공간 안에서 음악을 듣고 따라 부르며 특정한 장소로 이동을 할 때 한걸음, 한걸음, 이동하는 순간마다 그 때, 그 장소의 상황은 앞과 달라진다. 순간에 맞게 반응하고, 또 반응하며 노래와 행동을 이어나가야 한다. 어딘가로 움직이려고 할 때 의도를 가지고 움직여라. 움직이는 순간순간마다 상황은 바뀐다. 그 상황에 맞게 다시 반응하라. 어디에선가 노래를 할 때 항상 다른 사람과 함께 하라. 전체가 함께 하는 노래 안에서 혼자 존재할 수는 없다. 그리고 혼자 상상을 만들어내서 그 안에서 노래하지 말라. 이 순간은 너 혼자를 위한 순간이 아니다. 모두를 위해 함께 반응하고 노래하라.” 

   그리고 이후에도 마리오와 음악연습을 여러 차례 진행했는데 연습이 진행될수록 첫 연습 때보다 더 정확한 음정, 그리고 부드러운 소리를 만들어내기를 요구했다. 앞서 연습했던 여러가지 노래를 더욱 집중해서 부르고 서로가 서로에게 반응하라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이후에도 토마스와 마리오의 음악 연습을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 연습이 진행될수록 참가자들이 더욱 깊이 들어오게끔 하였고 다양한 곳에서 그로토프스키 워크센터 멤버들이 노래를 이어가며 이전보다 더 다양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토마스가 다양한 참가자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노래 안으로 이끌었다. 하루는 지금까지 배워 온 노래를 각자 부르다가 일부 참여자들이 연습을 리드할 수 있도록 이끌었고 그 중 일부 여자 참가자 흐느끼고, 소리 지르고 노래하며 극도로 감정적인 상태까지 이어졌다. 다른 참가자들과 센터 멤버들은 이 상황을 아주 세심하게 지켜보고 반응했으며 토마스는 그 감정이 끊어지지 않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 노래 연습은 매우 강렬했으며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느껴라. 솔직하게. 반응하라. 대담하게.”라고 얘기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연습이 끝나고 상당한 피로감을 느꼈다. 이 연습이 진행될수록 “배우는 상황 안에서 대사와 노래로 감정의 끝까지 표현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되, 그 힘을 아주 미묘하게 조절해낼 수 있어야만 한다.” 라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전달받았다. 배우, 연기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책과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몸으로 느꼈던 순간이다. 연기에 대한 워크샵이 노래를 부르는 연습을 하며 통해 연기에 대해 그리고 배우에 대해 아주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첫날 음악 연습을 할 때 깨끗하고 세련된 옷을 입고 오라고 안내를 했는데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이 음악 연습을 각자가 서로에게 반응하며 연기하는 신성한 자리라고 여기는 듯했고 실제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음악 공연을 함께 했던 테아트로 에라(Teatro Era)

   2주간의 음악 연습은 워크센터 주변에 있는 테아트로 에라(Teatro Era)의 로비에서 워크센터 멤버들과 참가자 전원이 함께하는 음악 공연으로 끝을 맺었다. 공연에는 특별한 장치나 소품이 동원되지는 않았으며 마리오와 함께 연습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공연장에 모여있는 일반 대중들과 함께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 공연은 2시간여 진행되었으며 그 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노래를 즐기며 따라 부르고 서로에게 반응하며 살아있는 하나의 공연을 만들어냈다. 약속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그 순간 존재하는 사람들과 각자의 생각과 움직임을 존중하며 반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2주간 끊임없이 들어왔던 “반응하라.”라는 말이 “상대 배우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살아있는 상태로 반응하라.”라는 말로 해석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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