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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12월 독서 리뷰/프리뷰

연결하는 건축 외 11권

by 카레맛곰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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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는 갑자기 라이트노벨 시리즈를 읽기 시작해서 갑자기 권 수가 늘었다. 원래 좋아하던 작가였기도 한데 리디에서 12월 마크다운이라고 할인하는 것을 보고 그만 충동구매를 참지 못하고...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라이트노벨과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었는데 요즘에는 애정이 식었다고 해야 하나, 예전만큼 열심히 그런 것들을 찾아보지는 않는 거 같다. 해봤자 좋아했던 작품 몇 개 정도만 기억하고 있는 정도.


사랑이 식었다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작품들이 더 이상 많이 나오지 않는다. 더 이상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예전에 <<공의 경계>> 애니메이션 정주행을 하고 글을 썼던 당시에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어반판타지 장르를 좋아하고 그와 같이 따라오던 당시 일본 작품들의 분위기를 좋아했다. 때로는 어렵고 때로는 진중한 이야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작품은 나오지 않는다. 인기가 없으니까. 죽고 죽이고, 사회가 잔인해지는 만큼 사람들도 잔인해지고 그 스트레스를 풀 작품들이 대두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이런 작품 트렌드 분석에 의미를 부여하지 마라, 그냥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는 것뿐이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문예사조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유행 장르의 변화에는 그에 따른 합당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도 자극적이고 유해하다고도 할 수 있는 작품들이 나왔지만 지금의 자극적이라는 말과는 다른 방향성을 띄고 있다. 로망스가 담긴 이야기냐 폭력적이고 직관적인 이야기냐, 이게 90년대 작품과 00년대 작품을 논하던 사람의 논조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쨌든 한 번 새해가 왔으니 작년의 마지막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1. 연결하는 건축 - 안그라픽스


『연결하는 건축』에 대해서는 서평으로도, 독서모임 후기로도 굉장히 많이 다뤘으니 이번에는 전혀 다른 현실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2028년에 대전에 트램을 설치한다는 이야기가 신년을 기점으로 다시 많이 올라오고 있다. 12월에 착공을 시작했고 앞으로 3년 후면 한국에서 최초의 트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트램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는 뉴스에 많이 나온다. 트램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국내 최초의 트램이기에 관광도시 형태를 띨 수 있게 되고, 신교통수단이 시민의 발이 될 거라는 긍정적이고 다소 추상적인 이야기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없을까.


트램은 사실상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버스 전용 차선을 하나 추가하는 것과 같다. 노선을 따라 움직이기에 지하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효율적이지 못한 차선을 먹는 지하철, 즉 자동차로 이동하는 시민들에게는 피로감을 주는 물건이다. 이런 인식은 국가의 의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수송능력이 떨어지는 자동차를 타는 시민들을 줄이고 트램으로 발을 돌리게 만드는 것.


차선을 통제하고 트램을 설치하는 정책은 한정된 토지에 수송능력을 늘리는 좋은 방안인 것이 사실이다. 트램은 버스에 비해 피로도가 적고(철로로 움직이는 이동수단이라 진동 감쇄 효과가 있다), 버스에 비해 더 많은 인원을 수송할 수 있다. 그렇기에 좁은 국토를 억지로 10차선, 12차선 화 시키는 것보다 차라리 트램을 설치하는 게 다른 지상 위 시설들과 연결성도 좋고 지하철과의 연계도 더 좋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돈이다. 트램을 설치하면서 발생하는 비용과 이런 정책에 합리성을 만들기 위해 포기되는 부분, 그래서 새롭게 도입되는 물건들은 언제나 반쪽짜리라고 욕먹는 한국 사회 특유의 도입 방식. 그래서 이번 트램 정책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28년, 대전의 트램은 어떤 형상이 될까. 그날이 왔을 때 기회가 된다면 내려가서 트램을 타고 한 바퀴 돌아보고 싶다.




2. 한 움큼의 외로운 영혼들 - 을유문화사


서평에서 많은 이야기를 다룬 문화비평서다. 이 책을 읽은 후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봤다. 할리우드에 서부영화 시대가 끝나고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 하는 이탈리아식 서부물이 박동하던 시절, 할리우드를 사는 배우들의 이야기로 시작해 히피 문화와 맨슨 패밀리, 테이트 - 라비앙카 살인사건으로 끝나는 영화는 이 비평서를 읽은 후에 보기 적당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영화를 보기 직전에 나중에 소설로도 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으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사놨는데 소설은 아마 좀 나중에 읽지 않을까. 영화가 재미없지는 않았지만 반대로 소설로 읽을 만큼 재미있지도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쿠엔틴 타란티노가 만든 영화답다고 해야 할지 영상미와 당시의 시대상, 미장센은 뛰어났지만 소설로 보면 타란티노의 각본처럼 주저리주저리 풀어놓는 이야기에 지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영화와 별개로 그의 다음 글을 기대하고 있다. 그의 글을 읽으면 몰랐던 것들은 채워나가고 알던 것들은 엮을 기회가 생긴다. 영화에 미친 사람이라고 하면 실례인가, 하지만 그는 진짜 영화광에 가까운 인물이다. 영화이야기를 한다면 분명 올해 유행했던 블록버스터보다 십수 년 전 작품을 떠올리며 이야기할만한 특이한 사람, 서평을 쓰고 다른 이가 썼던 서평을 찾아 읽었을 때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떠드는 마니아의 부산스러운 대화와 같다는 글을 읽었다. 사실 문화비평서는 그런 매력이 아닌가? 그 정도로 관심이 있어야 힘 있는 비평을 하는 거니까. 다른 의미에서 칭찬이 아닌가 웃고 말았다.




3. 책 도둑의 최후는 교수형뿐이라네 - 알마


서평에서 다룬 애서가들을 위한 장서표에 대한 이야기다. 100개의 장서표를 나열하면서 이에 대한 저자의 기억과 작품 설명이 담긴 책인데 서평에서 할만한 이야기는 얼추 다 했다고 생각한다. 100개의 장서표를 나열했다는 말은 100개의 시리즈를 묶었다는 말과 같다. 즉 이야기 간에 연관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의미다. 이런 부분을 고려해서 연관성을 만들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런 요청은 국내에서 기획 후 연재해 단행본을 만들지 않고서야 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리고 애서가들을 위한 책은 말 그대로 취미인들을 위한 책과 같아 많은 판매고를 기대할 수도 없어서 기획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만약 기획자로서 고민과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면, 독자기에 말할 수 있는 고민과 걱정을 타파할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방법이 하나 있다. 간단하다. 저자가 글을 봄날의 꽃바람처럼 눈을 뗄 수 없게 써 매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새로운 재미를 찾고 결국 헤어 나올 수 없게끔 만들면 된다. 그래서 이런 저자는 어디서 찾는데. 그게 이 방안을 말할 때 쉬우면서도 어렵다고 수식한 이유다.




4. 슬픈 수족관 - 목수책방


동물원의 동물들이 제대로 된 환경에서 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정형행동이라던지 내재된 폭력성을 표출해 무리에 피해를 입힌다던지 하는 이야기들. 이 이야기도 동물원의 아쿠아 쇼를 하는 동물과 사육사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안에 갇혀 사는 고래, 이들과 교감하는 사육사, 그리고 사육사들과는 사뭇 다른 시선으로 동물들을 사용하는데 몰두하는 CEO까지 어찌 보면 이 책은 과거 동물원의 사업 방식을 경험담으로 풀어놓은 것과 같다.


이런 책을 읽은 독자들 중 일부는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극약적인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하지만 동물원 폐지는 사실 잘못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첫 째, 과거 동물들이 살던 생태지구가 더 이상 동물들이 살기 적합하지 않을 만큼 많이 파괴되어 오히려 동물원 내부가 안전한 경우도 생겼다. 둘 째, 동물원은 성장기의 아이들이 책이 아닌 눈으로 동물을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와 같다. 아니, 성장기의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동물들을 마주할 수 있는 장소에 갈 수 있는 인물은 극히 드물다. 마지막으로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을 방사한다고 해서 자연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게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동물원에서 태어나 살던 동물들은 야생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졌고,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야생에 방사했을 때 실패한 사례들은 차고 넘친다. 그래서 마냥 동물원의 폐지가 좋은 방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동물원의 존재를 부정하기보다는 동물원은 환경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동물들에게도,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예전에 동물원이 동물들에게 좋지 않다면 없애는 것이 맞지 않냐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방사된 돌고래들이 결국 사체로 발견되었던 옛 사례들을 보면서 동물원은 동물을 전시하는 장소를 넘어 보호하는 장소로 발전하는 게 가장 올바른 방향이 아닐까 시선이 바뀐 것뿐이다. 많은 것들을 미래의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넘겨줄 권리 중에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동물들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권리도 있다는 이야기다.




5. 폭염 살인 - 웅진 지식하우스


1월 1일, <<하얼빈>>을 형제들과 보고 노래방에 갔다. 형은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언제나처럼 불렀고 나는 노래 아웃트로에서 이런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던졌다.


"요즘 연어들이 가을 못 거슬러 올라간다더라. 물이 너무 뜨거워서 올라가다가 산소가 모자라 못 올라간다는데."


이후에 형한테 지금 강산애 형님 디스했냐? 이런 참신한 디스는 또 처음이네. 너 뭐 자신 있냐?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겨울에 읽는 폭염과 열사병에 대한 이야기, 지금 찬바람이 불고 있어서 생각해 내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지난여름과 지지난 여름을 떠올려보자. 매년 더위는 심해지고 있고 날씨는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다. 한국땅에서도 이런 더위가 체감되는데 더욱 더운 곳들은 얼마나 심할까. 매년 호주에서는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당장 지난주에도 블랙 서머 당시만큼은 아니어도 거대한 산불이 발생했고 작년 이맘때쯤에도 산불이 있었다. 이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는 앞으로 매년 이런 일들이 반복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폭염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 당장 우리는 에어컨이 보급되고 일반 가정에서도 틀만큼 경제적 상황이 좋으니 괜찮지만 멀리 보면 에어컨이 보급되지 않은 개발도상국, 가까이 보면 에어컨을 틀 형편이 되지 않는 쪽방촌의 사람들은 매년 열사병으로 죽거나 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다. 거기에 외부 활동을 하며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이들도 늘고 있고, 동식물들이 점점 북으로, 서로 이동하고, 북극의 빙하가 녹고 북극곰들이 멸종되어 가고...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많은 것들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 그리고 기후 또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위와는 조금 다르다. 기후 문제는 후손들에게 안전하게 물려줘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당장 우리가 직면한 문제다. 이런 방안에 대해 해결하지 못한다면 먼 미래를 상상하기도 어려운 시대가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문제는 이번에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의 기조를 보면 알겠지만 다들 자국민 우선 주의로 시선을 돌리고 기후에 대해서는 뒷전으로 한듯한 모습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을까. 기회가 된다면 서평으로 다루겠다.




6. 비탄의 망령은 은퇴하고 싶다 1~7 - 소미미디어


예전에 우연히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 너무 재밌어서 국내에 나오면 사야지, 작품이 많이 나오면 사야지, 내버려두고 있었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좋아하던 작품의 연재가 거의 멈췄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 책 때문. 원래 연재하던 작품 말고 추가로 이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너무 대박이 나서 졸지에 원래 연재하던 작품이 연재 중단 수준으로 천천히 연재되고 그 텀을 이 작품이 채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착각물이라는 장르로 정의되는 주인공에 대한 외부인과 주변인의 착각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풀려가는 판타지 소설이다. 착각물의 가장 큰 특징은 추리 서스펜스만큼은 아니어도 치밀한 타임라인 정리와 인물의 내면 묘사, 그리고 납득이 가능한 선의 개연성이라는 점이 필요한 장르라는 것이다. 왜 주변인들은 주인공이 강한 인물이라고 착각하는가. 왜 주변인들은 발생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주인공에 의해 만들어진 판이라고 착각하는가. 그 타임라인 속에서 주인공은 어떤 활동을 해서 개연성을 만들어가는가. 이런 부분을 추리하며 쫓아가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지금 12권까지 나온 이 작품(한국은 11권)은 사실상 6권까지가 1부, 그 이후가 2부로 분류된다. 6권까지를 요약하면 주인공 파티의 캐릭터들이 사건마다 얼굴을 비춰 그 캐릭터성을 부각시키고, 주인공이 어떻게 도시 최고의 클랜 마스터라는 입지까지 오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빌드업을 통해 작가는 독자를 주변인들과 비슷한 시선을 가지게 만들고, 또 동시에 무능력한 주인공이 만든 우연에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2부는 그 후에 나오는 암약하는 적들과의 대결, 그런 구도로 보이는데 일단 7권까지밖에 읽지 않았으니 다음 이야기는 나머지 책을 모두 읽었을 때 풀어내는 거로.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최인호 작가의 『유림』이다. 천천히 스며드는 것처럼 그의 소설은 내 가슴속에 묵직하게 내려앉고 나는 다시금 소설을 읽는 것은 죽은 작가를 그리워하는 과정이구나 깨닫게 된다. 그는 딱 강산이 변하는 시간, 12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의 글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에 가깝다. 내 이후의 세대는 그런 작가가 있었는지 고등학교에서 배우지 않고서야 모르고 살겠지. 나처럼 생각하고 나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과거에도 충분히 많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제 앞자리가 바뀌는 나이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되나.


읽을 책들이 점점 쌓이고 있다. 다음 독서모임도 코앞이어서 이젠 독서모임에서 다룰 책 『휘말린 날들』을 읽어야 하고, 그 후에는 한강 작가님의 『흰』을, 시간이 된다면 과거 썼던 서평을 다시 쓰는 시간도 가지고 다른 글도 더 쓰면서 1월을 보내려고 한다. 원래 12월 말일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던 디자인 수업이 1월 20일로 밀려서 그런지 마음이 급하고 속이 타들어간다. 새로운 일을 하면서 이 모든 것들을 함께하면 좋을텐데 결국 1월까지도 새 일을 찾지 못했구나. 천천히 빨리, 군대에서 늘 들었던 말처럼 천천히 빨리 하나하나 처리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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