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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허송세월 - 나남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한 때

by 카레맛곰돌이

김훈의 작품을 읽으면 최인호가 떠오른다. 최인호가 떠올라 그의 작품을 읽으면 김훈이 떠오른다. 그리고 김훈을 읽으면. 안타깝지만 최인호를 더 이상 떠올릴 수는 없다. 그가 타계한 지도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의 최인호는 이제 옛날 사람이다. 그가 쓴 글도 옛날 글이고 그가 남긴 작품도 옛날 작품이다. 더 이상 그 힘 있는 글을 찾을 수 없다.


그는 올해로 77(만으로는 76이다. 아직도 만 나이가 익숙지 않다.), 안타깝지만 앞을 보며 걷기보다는 회한을 곱씹는 나이다. 이전 에세이가 19년에 출간된 『연필로 쓰기』니 벌써 5년이나 되었나. 25살의 내가 30살이 되는 동안 그는 아직 정정했던 일흔 초반을 넘어 일흔의 끝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한때 그가 무사라고 생각했다. 연필을 검처럼 들고 종이 위를 누비는 한 명의 무사,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고 노년의 무사는 이제 뒷방 늙은이가 되었다. 여전히 글자 글자에는 힘이 서려 있지만 그 뭉치더미에는 죽음의 냄새가 깊게 배어 있다. 이전 에세이에서도 주위 죽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너스레 떨듯 적어놓고는 했는데 이제는 남 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밤이 오는 것만을 기다리는 늙은 이리마냥 하늘을 올려보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는 멋진 작가다. 만들어진 작가가 아닌 진짜 작가, 글로 살고 글로 죽는 사람. 글을 쪼개고 단어를 쪼개며, 이런 단어를 썼고 이런 문장을 썼기에 이 글에는 힘이 넘친다고 설명하고는 하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 이렇게 글을 쓰는 와중에도 나는 만들어진 작가라는 말을 쓴다. 그 옛날 책이 모든 지식 미디어의 얼굴이던 시절과 달리 지금 작가라는 타이틀 만으로는 멋을 느낄 수 없다. 청취를 느낄 수 없다. 마치 유튜버를 만나는 것과 같다. 유튜브를 운영한다는 말만으로는 대단하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김훈은 진짜 글을 쓴다. 정치, 철학적인 이야기로 흐트러질 수 있는 글에서도 길을 잡고 걸어 나가는 그는 원고지 위의 길잡이와 같다. 그가 밟고 만드는 길은 올곧고 직선적이라 불결한 언어로 더럽힐 수 없고 의미를 퇴색시킬 수 없다. 고래가 물보라로 그려낸 무지개와 같다.


그렇기에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김훈의 작품을 읽으면 최인호가 떠오르고, 최인호의 작품을 읽으면 김훈이 떠오른다. 하지만 난 이제 김훈의 작품을 읽고 최인호를 떠올릴 수 없다. 그는 과거의 인물이 되었으니까. 분명 언젠가 최인호의 작품을 읽고 김훈을 떠올리지 못하는 날이 오리라. 그도 과거의 인물이 되고 한때 원고지 위에서 춤췄던 명인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는 날이 오리라. 나는 그 미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 받아들여야 한다. 김훈이 없을 세상도, 김훈의 새 글이 나오지 않을 세상도 받아들여야 한다.


허송세월, 그는 오후 2시 호수공원에서 햇살의 냄새를 맡는다. 시간의 흐름을 잡으려 펜을 움직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는다. 그의 글에는 죽음의 냄새가 배어 있지만 산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젊은 커플들과 새파랗게 어린아이들, 그들을 사랑하는 부모들과 앞으로 나라의 받침이 될 사람들의 이야기. 29살에 군을 떠나고 30살, 나는 아직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오후 2시 햇살의 냄새를 맡으며 거리를 거닐고 밤이면 검을 휘두르며 젊음과 부딪힌다. 16살, 나와 검을 맞대는 학생들의 청춘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결국 이렇게 글을 쓴다. 이 글이 끝나고 밤이면 술 한잔에 술밥을 얻어먹겠지. 그들의 젊음을 부러워하고 노래하며. 올해는 세상에 나가고 싶구나. 기왕이면 이 겨울이 끝나기 전에, 그마저도 욕심이라면 봄이, 여름이, 가을이 끝나기 전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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