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리즈의 마침표는 만족스러우셨을까요?
예전에 인터넷에서 어떤 말장난을 본 적이 있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팬이라고 자칭하면서 시리즈를 모으는 놈이 있다면 그놈은 무조건 친구로 가까이 둬라.
언젠가 완결 내준다는 말만 들으면서 10년을 기다리는 놈은 좀 친해지면 보증도 서주는 놈이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빙과』, 그러니까 「고전부 시리즈」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작가다. 책과 동일한 제목의 애니메이션 <빙과>가 2012년에 방영되어 국내외에서 히트를 쳤고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엘릭시르가 판권을 사 와 13년도에 출간했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요네자와 호노부는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이름이 알려진 작가도 아니었을뿐더러 이전에 한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작가였기 때문이다. 비슷한 느낌의 작품을 가져왔지만 실패해 절판된 작품, 그게 바로 이 「소시민 시리즈」다.
해외의 유명 판타지들을 가져와 국내에 출간하는 노블마인은 2007년에 이 작품을 국내에 가져왔고 안타깝지만 시리즈를 이어가지 못한 채 절판시켰다. 당시 국내에는 「해리포터 시리즈」, 「타라덩컨 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같은 하이판타지가 유행했고 노블마인에서 똑같이 출간했던 「테메레르 시리즈」에 비해 위 작품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2009년에 새 작품이 나왔음에도 국내에 가져오지 않고 절판시킨 것일 테고. 이로부터 십 년 후「고전부 시리즈」로 재미를 봤던 엘릭시르는 판권을 다시 사와 「소시민 시리즈」, 그리고 더 나아가 새롭게 시리즈를 구성하고 있는 「도서위원 시리즈」까지 출간하며 재미를 보고 있으니 기획도 시대를 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 준다(그런 와중에 일본에서 22년에 나온 도서위원 시리즈는 아직 가져오지 않았다. 빨리 가져와주면 좋겠다, 엘릭시르).
여기까지 내가 쓴 글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를 좋아한다. 예전에 쓴 서평이나 월간 북 리뷰에서도 언제나 요네자와 호노부의 책이 올라올 때면 엘릭시르가 더 열심히 일하기를 빌고 더 빨리 많은 책들을 가져오길 바란다는 글을 쓰곤 할 정도로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서평 39편 11월 북 리뷰 中 책과 열쇠의 계절 참고 https://brunch.co.kr/@curry-bear/120) 사실 그런 애정의 사유에는 이유가 하나 있다. 내가 편집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마음에 드는 책 표지를 모으게 된 계기가 위에서 적은 시리즈를 접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군에서 정비사 생활을 하던 나는 꽤나 피폐한 일상을 보냈고, 주말이면 카메라를 멘 채로 동산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거나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는 했다. 하지만 책을 사놔도 읽을 힘이 없었다. 말 그대로 책장을 꾸미는 도구,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분명 번아웃의 초기 증상이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재미있게 읽었던 시리즈가 「고전부 시리즈」였다. 책을 읽는다고 번아웃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재미있었다,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래서 책 표지를 모으기 시작했고 책과 함께 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지루한 내 옛이야기는 멈추고 「소시민 시리즈」와 마지막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여타 다른 작품들과 달리 시리어스한 사건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고전부 시리즈」의 경우 학교 내에서 발생하고 범죄 이상으로 퍼져나가지 않는 사건들을 주로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학생이라는 틀 안에서 추리 활동을 이어가고 사람 사이의 감정선, 미래와 꿈, 우정과 같은 주제를 다루게 된다. 하지만 해당 작품은 그런 지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시리즈에서 처음 자전거 도둑과 명의 도용 범죄를 마주한 이후 이어지는 사건들은 납치, 인질극, 연쇄 방화 사건, 불륜, 폭행, 그리고 뺑소니와 살인 미수까지. 명확히 범죄라고 부를 수 있는 사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고전부 시리즈」를 떠올리며 작품을 접한 사람들은 작은 당혹감을 느끼고는 한다. 분명 다른 시리즈처럼 간질간질한 청춘물과 같은 느낌에 씁쓸함을 한 스푼 넣은 작품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들이 마주하기에는 너무 큰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으니.
범죄 사건을 나열할 때 마지막에 이야기한 뺑소니와 살인 미수는 이번 작품의 메인 사건이다.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에서 작품의 메인 플롯은 거의 마무리가 된다. 주인공들의 고등학교 생활은 연쇄 방화사건을 끝맺는 시점에서 거의 마무리되었다.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에서 갈라선 두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서로가 필요함을 느끼고 다시금 결합하게 되었다. 그리고 소시민 지향이라는 대주제는 연쇄 방화사건의 해결과 함께 완전히 해소되었다. 그렇기에 작가는 마지막으로 과거의 이야기를 가져온 것이다. 어찌하여 그들이 소시민을 꿈꾸게 되었는가, 시리즈의 시작부터 주인공이 줄곧 되뇌어왔던 끔찍했던 옛 기억은 무엇인가.
"둘이 커플이 되고 사랑한다는 걸 표현했으면 이제 꽁냥꽁냥하는 뒷 이야기도 좀 풀고 완결내면 좋을 텐데. 결혼 생활 이야기도 하고, 평범하게 사는 이야기도 더 해주면 좋을 텐데."
순정만화나 러브코메디를 읽는 독자들이 많이들 하는 이야기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이번 작품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작가의 작품 특성을 아는 나로서는 가능성 없는 일이라는 점도 생각했지만. 당연하지만 이번 작품에도 알콩달콩한 사랑과 연애이야기는 없다. 상, 하로 나눠진 작품에서 상 권에는 아예 여주인공이 나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작품을 오래 마주한 팬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서로 지망하는 대학교가 달라 언젠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조금 괴로워하는 주인공에게 자신과 함께 교토의 있는 대학교에 오면 좋겠다고 하는 여주인공, 그리고 잠드는 그에게 나직이 전하는 마지막 한 마디, 잘 자 나의 차선. 이게 작가가 표현할 수 있는 여주인공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고전부 시리즈」를 떠올리고 마주하면 난해 할법한 작품. 다루는 사건들의 스케일이 큰 편이고 고등학생이 마주할 수 있은 사건들도 아닐뿐더러 주인공과 여주인공 또한 일반적인 고등학생들과 행동거지가 다르기에 청춘소설과 같은 맛을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요네자와 호노부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보다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 된다. 겉으로는 완전해 보이지만 불안한 고등학생들의 이야기 위에 추리라는 소스가 끼얹어지는 이 작품은 탄탄한 스토리와 부가적인 추리 미스터리의 맛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고, 요네자와 호노부라는 작가의 색채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독서 커뮤니티에서 이런 후기를 남긴 적이 있었다. 나는 아직도 이 평가가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 특징은 뛰어난 추리가 아니다. 그가 가져오는 추리 플롯은 어딘가에서 한 번은 본 적 있을 법한 플롯이다(당장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의 각 반마다 다른 내용의 신문을 전달한다는 플롯도 가장 가까운 시기의 작품으로 따지면 『데스노트』에서 처음 야가미 라이토의 위치를 찾을 때 썼던 방식과 유사하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은 탄탄한 스토리와 윤활유 역할을 하는 추리 플롯에 있다. 이 말은 「고전부 시리즈」에서도, 「소시민 시리즈」에서도, 「도서위원 시리즈」와 『흑뢰성』과 같은 다른 작품에서도 모두 유효하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을 읽는 팬들은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탄탄한 추리 플롯을 찾고 싶다면 다른 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이런 스토리는 그 만이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블마인이 출간했던 작품을 읽었던 이라면 07년도, 엘릭시르가 출간한 작품을 읽었던 이라면 16년도부터 시작해 온 이 시리즈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구작을 기준으로 하면 20년, 신작을 기준으로 하면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많은 팬들은 이 작품의 마지막에 만족했을까? 적어도 나는 만족했다. 겨울철 한정 봉봉 쇼콜라를 맛보기 위해 딸기 타르트를, 트로피컬 파르페를, 구리킨톤과 파리 마카롱을 다시금 맛봤고, 긴 노력 끝에 먹게 된 봉봉 쇼콜라여서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초콜릿은 삼킨 후에도 달짝지근한 카카오 향이 입 안에 맴돈다. 이제 어떤 작품으로 내 입을 씻어내야 할까. 그 선택에는 장고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마지막은 내 앨범을 자랑하면서 끝내려고 한다. 「고전부 시리즈」를 마주하고 마음에 드는 책의 표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첫 사진은 『빙과』의 책 표지, 다음은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의 책 표지와 책 띠, 그리고 마지막은 이번 작품인 『겨울철 한정 봉봉 쇼콜라 사건』의 책 표지와 안에 들어있던 스티커였다.
사실 이 시리즈를 다시 읽어야겠다 생각한 때는 이번 겨울보다도 훨씬 이전인 작년 여름이었다. 당시 3분기 애니메이션 신작으로 <고전부 시리즈>가 나왔는데 생각보다 소설을 제대로 미디어믹스화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라프텔에 이걸 보느니 소설을 다시 읽는 게 낫겠다고, 지금 소설 다시 읽으러 간다고 썼던 기억이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그 이야기대로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읽게 되었다.
이제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읽어야 할까. 일단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은 『룬의 아이들 윈터러』다. 이 작품도 읽은지 벌써 15년이 다 되어간다. 어린 시절에 읽었을 때에는 이런 내용인지도 모르고 대충 읽었던 거 같은데 지금 와서 다시 읽고 있으니 새삼 내가 어린 시절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책을 읽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올해 처음 읽었던 소설 『유림』부터 『룬의 아이들 윈터러』까지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감상을 느끼고 있다. 올해는 옛날에 읽었던 책들도 다시 찾아 읽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