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쓸모』외 6권
이번 달은 7권을 읽었다. 이로서 7월까지 총 90권, 올해는 1년에 100권 읽기 고지가 멀지 않았다.
최근에는 책을 조금 덜 읽고 다른 것들을 하고 있다. 밀린 게임도 하고, 취업 준비를 위해 글도 쓰고, 알바도 하고, 다양한 행사에도 가보고. 여름이 끝나면 그때쯤에 알바도 마무리될텐데 알바가 끝난 후에는 더워서 가지 못했던 뮤지엄 산에 가볼까. 아니, 사실은 그 전에 취업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차라리 뮤지엄 산에 가지 못했으면 좋겠다. 그 시간에 취업하고 아... 어디 놀러가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일하고 싶다.
오늘의 북리뷰는 짧지 않을까 싶다. 여기 있는 책들중 절반이 서평으로 올라온 책이다. 이건 서평으로 대체, 저건 서평으로 대체, 이렇게 적다보면 분량이 분명 짧아지겠지만 뭐 그런 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1. 문학의 쓸모 - 뮤진트리
문학이 현대 사회에 과연 쓸모가 있는가, 문학적 소양이라는 보이지 않는 허상을 쫓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한 질답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사실 1차원적인 자본의 생산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문학은 돈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생산자의 입장을 먼저 다뤄보면, 당장 국내 단행본 작가들의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면 된다.(단행본이라고 정의한 이유는 웹소설 작가는 다른 풀에 존재하는 직업이고, 소설의 역할과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문학적 소양과는 거리가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벌어들이는 금액도 다르고.) 국내 작가의 99%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전업작가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굴비를 하늘에 걸어놓고 밥만 먹어도 살 수 없다. 어림도 없는 금액이다.
그러면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는가? 안타깝지만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는다고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전업 독자라는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서평가라는 타이틀도 꾸준히 활동하는 이들의 자칭이지 돈이 되는 타이틀이 아니다. 그렇다면 출판사는? 출판사가 매년 불황이고 매년 규모가 줄어든다는 뉴스만 읽어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화두로 던지며 시작한다. 이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생산자, 소비자, 제공자까지 모두가 다 돈이 되지 않는 시장.
저자는 이런 1차원적인 이야기를 밑바탕에 둔 후 문학적 심미안을 가진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간 이들, 언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작가를 시작으로 문학적이지는 않지만 언어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 학자들, 정치, 경제, 사회의 저명한 인사들, 그리고 글로 쓰이는 언어가 아닌 입으로 구화되는 언어와 관련이 있는 미용사,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작가는 그들의 심미안에 중점을 둔다. 예컨대 사회의 어딘가에 속하는데 심미안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자신 업계의 능력과 더불어 언어적 소양이 필수불가결적으로 필요하다. 다른 사람과 소통해야하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예시를 들어보자면 직장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사람은 업적을 쌓을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업적을 쌓아서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보통 최고의 직원으로 손꼽힌다. 이건 사내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프레젠테이션 스킬, 원활한 의사소통 능력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선배들을 만나본 적은 없는가? 일은 잘한다고 소문이 났는데 막상 소통이 잘 안되는 사람, 막상 자신이 할 줄 아는 걸 후배에게 가르치지 못하는 사람. 작가가 생각하는 최고라는 허들에는 당연히 모자라겠지만 우리 주변에만 빗대어봐도 이런 사람이 최고라고 불리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21세기가 되고 문학만 전공해 사회로 나오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대학에서 인문학 과정의 규모가 줄어들고 지식의 상아탑에서 취업 전선의 최전선으로 변한 이후로 더욱이 말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문학, 인문학이 쓸모없음을 반증하는가. 여기에 대해 저자는 그럼에도 문학 교육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단, 학생들만을 위한 공부가 아닌 사회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소양이라는 개념으로 말이다. 문학적 소양은 쉽게 이야기하면 언어적 소양이다. 언어를 활용할 수 있고 언어를 통해 타인과 관계를 쌓을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좋은 위치로 올라갈 수 있다는 건 저명한 사실이다. 이런 소통의 언어는 어디에서 나오는가에 대해 저자는 문학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무엇이 맞다 무엇이 틀리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아예 틀렸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소통의 결여에 대한 언급은 꾸준히 뉴스에서 화두로 다뤄지고 있고 디자인적 스킬, 기술적 스킬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에고가 너무 비대하거나 혹은 타인과 소통능력이 떨어져서 자신의 능력조차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으니까. 물론 우리가 어떻게 언어적 소양을 가질 수 있게 교육 환경을 꾸릴까, 이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당장의 상황에서는 답을 찾기 어렵다는 것, 만약 이런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언어적 소양을 가질 수 있는 교육 환경을 꾸려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확장시킬 수 있는 책이지 않나 싶다.
2. 익숙한 건축의 이유 - 블랙피쉬
https://brunch.co.kr/@curry-bear/170
서평으로 대체하겠다.
3. 악의 - 현대문학
https://brunch.co.kr/@curry-bear/169
이것도 서평으로 대체
4. 오늘같은 날 헤이리 - 쑬딴스북
https://brunch.co.kr/@curry-bear/165
사실 이거는 주간 독서노트에서 다룬 이야기가 거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다. 각자 어떤 삶을 살다가 여기에 흘러 들어왔는지, 어떤 꿈을 품고 왔는지, 앞으로 어떤 꿈을 품고 살고 싶은지 모두의 희망과 미래가 이 책에 담겨있다.
나는 이것도 멋진 기획이고 멋진 책이라고 생각한다. 경기도 신문에 실려야 하는 칼럼의 크기를 늘리거나 묶는다면 이런 책이 완성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고. 특히나 요즘 책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의 삶, 성공과 비전에 대한 갈망, 혹은 이런 것들을 원하지 않았지만 성공한 재능있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헤이리를 한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면 성공한 예술인 마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파주가 접근성이 떨어진다. 경기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위로 올라가야 하니까. 다른 곳과 연계될 가능성도 없고 파주, 출판도시, 헤이리, 프로방스 마을, 파주 지역 내에서 볼거리를 찾아야 한다. 물론 거기에 코리아 보드게임즈도 있으니까 보드게임 행사도 종종 열리고 출판행사나 아울렛에서 열리는 행사도 있으니 볼거리가 없냐고 하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헤이리는 지금까지 잘 운영되고 있다. 아마 내일도, 내년도, 10년후에도 헤이리는 헤이리로 존재할 것이다. 젊은 예술가들이 그곳에 찾아가 자리잡을까, 그게 유일한 걱정이긴 하지만 아마 늘 그래왔던 것처럼 새로운 예술가들이 헤이리를 찾아오고 헤이리를 처음 만들었던 이들이 대를 이어주면서 계속해서 장소를 이어주지 않을까. 나는 파주라는 도시를 좋아한다. 내가 십 년 넘게 지방에 내려가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도 시끄러운 도시보다는 조용한 시골 도시를 가슴 한 켠에서 그리워하고 있다. 그렇기에 성공, 실패, 확장성이라는 단어로 헤이리를 재단했지만 사실 그런 것보다도 헤이리가 계속 잘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도 파주에서 일하고, 언젠가는 파주에서 살면서 헤이리를 바라보고 싶다.
5. Re.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6 - 노블엔진
6권까지가 사실상 이 책의 프롤로그라고 생각하면 된다. 주인공이 이세계에 떨어지게 되고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어렴풋하게 인식만 한 상태에서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여기저기 부딪혀본다. 하지만 그는 지난 사태들과는 달리 이번 일을 해결할만한 역량을 가지지 못했고, 결국 마음이 꺾여 히로인에게 여기를 떠나 도망치자고 말한다. 그때 그를 심적으로 구원하는 히로인, 그렇기에 그는 다시금 영웅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
이렇게 정리하면 굉장히 단순하고 일직선적인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작가는 이 모든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본편 6권, 단편집 1권을 집필했다. 즉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가 모두 현대에서 이세계로 넘어온 무능력한 주인공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살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줬고, 이번 기회를 통해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보여준 것이다. 이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로 많은 이들이 6권까지가 가장 어렵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실제로 나도 6권까지의 내용이 가장 어려웠다. 편한 마음으로 읽고 싶었는데 도저히 편하게 읽히지 않는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쫓아온 시점에서는 그래도 참 잘 읽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따라가길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장르소설의 문법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이런 인간찬가적 서사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나는 인간찬가라는 서사를 좋아하기에 더 가슴에 울리는 게 컸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 책이 끝난 후로 또 다른 단편 ex 1권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왜 본편 7권이 아니고 ex 1권이지? 지금은 또 흥미가 식어서 잠깐 쉬고 있지만 이번 달에는 읽지 않을까.
6. 녹색 계급의 출현 - 이음
https://brunch.co.kr/@curry-bear/172
서평으로 대체하겠다.
7. 사라지는 섬 - 북랩
환경전문기자인 저자가 북극, 남극 탐사대에 참가하며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한 르포성 에세이다. 이런 책들의 장점은 현재 진행형인 문제에 대해 과거에는 어떤 상태였는지, 과거에 비해 현재 얼마나 더 상황이 나빠졌는지, 좋아졌는지에 대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구온난화와 남북극의 이상기온현상, 그리고 발생하는 문제는 현재진행형으로 점점 나빠지고 있다. 영구동토층이 해빙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계속해서 다뤄지는 주제고 툰드라 지대의 해빙속도가 빨라지면서 모기의 창궐이 심해져 해당 기후에서 목축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들이 고통받는다는 이야기도 하루이틀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에 대해 우리의 대처는 어땠는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나빠졌을 뿐이지.
책소개에서는 15년 파리 기후 협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파리 협정의 주효 의제는 온실가스 감축이었다. 그래서 15년 이후로 많은 국가들이 친환경 에너지 개발에 총력을 다하기 시작했고 이후를 기점으로 전기차 시장이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의 이상기후, 유럽의 전통적인 자동차업계가 전기차 기술 개발에 좀처럼 진척을 내지 못한 점, 전기차 실수요자 감소까지 다양한 악재가 겹치면서 시장이 주춤하는 사이 25년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파리 기후 협약에서 탈퇴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세계 환경 문제에 대해 모든 국가들이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다가 끝내 과거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전세계는 지금 기후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국은 에어컨 없이는 여름을 보내지 못할 정도로 날씨가 더워졌고, 유럽도 에어컨 없이 생활이 가능한 기후에서 이젠 에어컨이 필요한 기후로 변했지만 에어컨을 설치할 수가 없는 집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고통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허리케인으로 인해 주택보험료가 미친듯이 폭등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고, 동남아의 일부 섬들은 이미 물에 잠겼다. 우리는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이걸로 지난 달의 북리뷰도 끝. 짧아지지 않을까 이야기했지만 『문학의 쓸모』에서 필요이상으로 이야기를 길게 끌어 내용이 꽤 길어졌다. 이번 달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니 책을 중간중간 틈틈히 읽으면서 그간 못읽었던 책 진도를 빼보려고 한다. 더운 여름에 나가지도 못하니 책이라도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