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사회생활하는 대학생 이야기
"김중사, 어딜 가서도 성공하기를 빌게요."
"xx야,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이 사회서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건 당연한거야. 성공하길 빌게."
"형, 먼저 나가 있어요. 나도 뒤따라 나갈게."
3월 31일, 군생활이 끝났다. 9년 하고도 1개월, 그리고 1주일, 그리고 하루. 긴 군생활동안 사람을 만났고, 사람이 되었고, 사랑을 했고, 사랑도 끝났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4월 2일, 아침이 밝았다. 백수가 된 지 2일째, 하릴없이 집에만 박혀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지 새로운 일정이 생겼다. 보험설계사 만나기, 그리고 도서관 가기. 사실 보험은 전역 전에 이미 계약을 마쳤다. 이제 사회에 나가니까 필요한 실비 보험과 운전자 보험, 오늘은 그 보험들에 대한 증권을 받는 날이었다.
솔직히 이런 일이라도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았다. 밖에서 하는 모든 행동에 돈이 든다고는 하지만 집에서 손가락만 빠는 백수보다는 밖을 돌아다니는 것이 좋을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보내기에는 지금 이 계절이 너무 좋기도 했고.
지난 2주는 끝없는 일정의 연속이었다. 독서 모임, 결혼식, 전역 보고, 결혼식. 남자는 타인의 결혼식을 참석하면서 위기감을 느낀다고 하던가. 솔직히 별 생각은 없었다. 못 꿀 꿈이라는 생각이 더 컸기에. 5년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지면서 결혼 같은 생각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기에.
그럼에도 축하의 자리에 함께한 것은 순수하게 그 자리와 분위기가 좋아서라고 생각한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다, 결혼하면 솔로이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 외 결혼에 관련된 이야기 다수... 여기에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서 나오는 첫 문구를 가져와보겠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사람의 앞날은 모르지만 당장 저들의 모습에서 불행의 씨앗을 찾을 수 있을까?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이들에게 어떻게 너희는 불행할 거야! 하고 악담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순수히 사랑을 하기에 결혼의 서약을 맺고 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는 비슷한 이유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려 하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박수를 쳐주며 그들의 미래에 축복을 빌어주는 일뿐이다. 이 사회가 마땅히 그들에게 그렇게 해줘야 하고.
그렇게 그들의 새로운 가정에 축복을 내리며 주머니 사정은 조금 생각한 후에 축의금을 넣어주고, 안타깝지만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이제 내 앞에 놓인 일들을 정리해야 한다. 부모님 집 구매를 위한 돈 보태기, 2주 후에 있을 독서 모임 야간타임 준비하기, 취업 준비와 더불어 각종 신청하기. 사실 할 일은 더 많다. 2년에 한 번 있는 자동차 검사도 받아야하고, 친구에게 부탁받은 술도 건네줘야 한다. 사람도 더 만나야하고, 운동도 시작해야 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솔직히 며칠 전에 보낸 이력서가 확인만 되고 그 후에 연락이 없어 두렵다. 20대가 되고 처음으로 이력서를 넣어 봤는데, 차라리 불합격이라고 연락이라도 오면 좋겠는데, 아마 연락조차 없지 않을까 싶어 두렵다.
오늘 보험설계사를 만나고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초등학생 시절 함께 살던 집 근처 언덕을 다시 올라갔다. 눈 내리는 날이면 썰매를 타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가파른 언덕 중간에 놓여있는 붉은 벽돌집, 분명 기억하던 자리는 여기였는데. 십수 년 만에 선 언덕에 더 이상 그 집은 없었다. 이제 그 자리에는 작은 주상복합단지가 자리잡았고, 집이 있었던 장소에는 세탁, 드라이클리닝 입간판만 놓여 있다.
글을 쓰기 위해 브런치를 켰는데 이런 제목의 글이 있었다.
'27세에 1억을 모으고 결혼했습니다.'
'내 이야기잖아?' 나도 1억을 모았다. 당시에는 군생활을 영원히 하리라 생각했기에 2000만원짜리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샀고, 그 덕에 외지에 있는 부대에 후배들을 태우고 다니며 기름값을 꽤나 아꼈다. 하지만 결혼은 하지 못했다. 남은 돈은 내 돈이 아니었으니까.
이번 달 중순까지 이곳저곳에 퍼져있는 돈을 모아야한다. 7000만원, 부모님께 드릴 돈이다. 1000만원으로는 결혼할 수 없겠지. 당분간은 연애도 생각 말아야한다. 사랑도 돈이 드니까. 그렇기에 사랑하고 결혼하는 이들이 부럽고, 나는 축하해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