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군대는 넓지만 좁은 곳이었다. 군은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이는 장소라고들 하지만, 직장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내가 복무하던 공군은 녹슨 쇠 냄새와 기름 냄새가 풍기는 사내들 뿐이었고 나는 그중에서 기름 냄새가 조금 덜 나는 이레귤러였다.
전역한 후에는 뭘 하게 될까. 그땐 편집자를 꿈꿔볼까? 근데 그 때면 이미 나이가 50이 넘었는데 글은 읽을 수 있나? 아니, 애초에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앞으로 20년은 더 하며 살 수 있을까. 다른 선배들처럼, 가족만 바라보면서.
결과적으로 나는 남들보다 일찍 군을 나왔고, 예전부터 꿈꿔왔던 편집자가 되기 위해 출판편집스쿨을 지원했다. 군대 안 이과 남자들과는 조금 다른 이과 절반 문과 절반의 이레귤러는 어떻게 살게 될까. 이 후기는 그 스타팅 지점에 대한 짤막한 감상이다.
90기 교육이 끝난 지 벌써 2주의 시간이 흘렀다. 7주간 책을 만든다는 미명아래 시작된 교육은 책 만드는 과정, 그리고 편집자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고, 처음 2주만 바쁠 거라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무색하게 7주 내내 타이트한 수업 과정이 이어졌다.
솔직히 다들 지치는 시간의 연속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나 직장인 신분이었던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7주는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게 이 7주는 부족함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그들이 보여주는 열의, 지식수준, 태도, 나 또한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에 감화되었고 어찌 보자면 불이 붙었다고 표현해도 되리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는 맞춤법을 모른다. 정확히는 맞춤법에 맞게 글을 쓰는 방법은 알아도 이게 어떤 법칙에 의해 맞춤법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모른다. 아마 일부 배우지 않고 글을 쓴 사람들이 가진 고질병이라 생각한다. 어째서 단어와 단어 사이를 띄어쓰기를 했는가. 한번도 그 이유에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고 하면 누군가는 웃을지도 모르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냥 그런 거니까. 그렇게 글을 써왔으니까.
그렇지만 이 7주의 수업은 내게 다른 메세지를 줬다. 그렇게 생각하고 넘겨서는 안된다고, 저자가 글을 쓸 때 레포트를 쓰는 학생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을 테니. 무언가 시대적인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는 작가가 되고 싶어서, 혹은 거창하지 않아도 내 이야기를 남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그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원고를 쓰고 첫 독자인 편집자에게 건네줬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젠 어쭙잖게 알고 젠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똑같이 프로 의식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7주의 수업이 내게 준 가장 큰 결론은 이거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이러니 저러니 떠들어도 즐거웠다. 처음에는 앞으로 가질 직장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가득 찼지만 끝에서는 조금 그런 마음을 덜어놓은 느낌이었고, 뚜렷하게는 아니어도 내가 가려는 방향이 틀린 게 아니라는 사실만은 알았으니 말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제 겨우 스타팅 라인에 섰고, 어떻게 앞으로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까지 말하기에 7주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동경은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라고 하던가. 이 시간은 동경하던 편집자라는 직업에서 편집자라는 직업 자체를 이해하기 부족함 없는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종강 때와 종강 회식 때 독서모임을 만들고 싶으니 함께해 달라고 여러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에 많은 학우들이 또 함께하기로 했고 며칠 후면 첫 독서모임이 시작된다. 다들 바쁜 시간 중에도 모임을 함께해 줘서 고맙고 또 그 기록들을 여기에 남기고 싶다. 이 인연이 오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