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변곡점마다 비가 내렸다. 20살 군 입대, 같은 해 대구 전입. 22살 하사 계급장을 단 첫날, 27살 중사 계급장을 단 첫날. 같은 해 서산 전속, 그리고 29살 군생활 마지막 날까지. 우울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들은 비 오는 날을 좋아했고, 나도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비가 오면 전투기를 띄우지 않으니까. 그 날 만큼은 마음 편하게 많은 이들에게 인사를 할 수 있었으니까.
29살, 마지막으로 전역 신고를 하고 돌아오는 차에서 잠시 단상에 빠졌다.
'내가 전역하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를 기억해 줄까. 가족보다 더 오래 함께한 전우라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나 또한 다른 이들처럼 한때 함께했던, 가끔 이야기가 나오면 "아, 그런 녀석도 있었지."라고 할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슬퍼졌다. 대구에서 함께했던 동기생 모두가 전역하고, 이젠 나마저 떠나 우리의 이야기가 사라진다니. 그래서 이야기를 남겨보려고 한다. 20살에 미숙했던 나부터 29살, 군생활을 끝마치는 나의 이야기까지. 20살의 나는 어리숙했다. 가고 싶지 않은 군대였고 하고 싶지 않은 정비사였다. 거기에 소심함도 더했으니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내 선배들도 어지간히 답답했으리라 생각한다.
그 시절 힘든 부분도 많이 있었다. 병사 시절에는 지금과 달리 핸드폰도 없었고, 폭행은 없었지만 폭언은 공공연하게 있었다. 노골적인 괴롭힘에도 말할 수 없는 분위기였고, 집합이라는 이름 아래에 악폐습이 이뤄지고는 했다. 그래도 그런 힘든 시절을 지나며 많은 것들을 배웠다. 소통하는 방법,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방법, 선배를 따르는 방법, 후배를 이끄는 방법...
야만의 시대를 요즘에는 한 글자만 바꿔 이렇게 포장한다. 낭만의 시대. 군대는 야만적으로 굴러가는 곳이었지만 낭만을 만드는 곳이기도 했다. 이건 내 20살부터 29살까지의 낭만에 대한 이야기다. 소심했던 나의 운동 이야기, 신앙생활 이야기, 취미 이야기, 일 이야기, 그리고 선후배, 동기 이야기.
나는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군대에 남아있는 후배들을 떠올리고는 한다. 오늘은 비행기를 띄우지 않겠거니, 오늘은 다른 일들을 하겠거니, 하고 말이다. 나는 지금도 비가 싫지 않다. 비가 온다고 일을 그만두지도 않고, 비가 온다고 누군가 일 대신 운동을 하라고 시간을 주지도 않지만 여전히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이제는 그보다 비에서 추억의 향을 맡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