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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Jun 05. 2024

군대에서 만든 취미 이야기

 취미는 보통 어린 시절 활동을 기반으로 정립된다. 그렇기에 초등학생 때 손등을 맞으며 배웠던 피아노가 나중에는 취미가 되기도 하고, 설명서 없이 마구잡이로 쌓아 올린 레고 탑에 대한 기억이 추후 레고 진열장으로 이어졌다가 이사 시즌마다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반대로 이 말은 어른이 된 후에는 마땅한 취미를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기에는 돈도 시간도 부족한 것이 한국의 어른이니까.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 꽤 많은 것들을 취미로 가졌던 기억이 있다. 독서, 소설창작, 베이스 연주, 트럼펫 연주, 농구, 게임... 그 외에 잡다한 것들도 더 있으니 생각해 보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신나게 놀기만 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새로운 취미에 대한 갈망과 욕구는 끊이지 않고, 이에 따라 수많은 기억과 족적을 남겼으니. 오늘의 이야기는 군대에서 만든 취미 이야기다.


 참고로 나는 15년도에 병사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그 시기에는 핸드폰도 없고 요즘 병사들이라면 쓰지도 않는 사이버 지식 정보방이 전부였다는 점을 이해해 주면 좋겠다.


15년도의 군대는 지금 병사들이 지내는 군대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이미 병영생활 2.0이 시행되고 있었기에 육체적 폭력은 없었지만 언어, 정신적 폭력은 여전히 존재했고 그런 악폐습은 암암리에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시행되고는 했었다. 특히 신병들에게 3층 32호실, 33호실은 앞을 지나다니지도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곧 전역하는 병장들이 신병이 지나가면 심심해서 부른 다음 애들을 몇 번 찔러보면서 내리갈굼을 유도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 기억하는 군대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한창 팔팔한 20대 청춘들을 핸드폰부터 시작해 아무것도 없이 가둬놓은 군대의 결과물이기도 했는데, 핸드폰반입이 허용후에 군에서 계획적으로 병영문화를 개선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이런 악폐습이 사라졌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웃음만 나오는 일이다.


 어쨌든 우리는 핸드폰 없이 살았다. 그렇기에 심심한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남는 시간을 보냈고, 운동을 좋아하면 풋살, 좋은 대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면 군수(재수, 반수처럼 우리는 군에서 수능을 준비한다고 해서 군수라는 표현을 썼다), 아무 취미도 없으면 사이버 지식 정보방(이하 사지방)에서 시간을 때우고는 했는데 그런 와중에 무언가 취미를 가진 사람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그 시절을 회상하면 가히 취미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고 명해도 될 정도였다.


 200명 가까이 되는 대대원 중 통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이 10% 가까이 되어 저녁마다 3층 음악실에 모이는 통기타 동아리, 풋살이 아닌 다른 스포츠에 눈을 돌리며 시작된 배드민턴, 탁구 동아리, 그리고 밖에서 밴드 세션으로 활동하던 이들을 중심으로 모인 밴드 동아리까지 계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능력만 있다면 함께할 수 있는 모임이 열렸다. 물론 이런 모임은 때론 일탈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이 시절에는 그런 과보다는 공이 훨씬 크게 작용했기에 많은 이들이(심지어 주임원사까지도) 이런 자발적인 행보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탁구 동아리를 함께 했는데, 시작은 탁구의 탁자도 모르는 초심자가 이 모임에서 함께하게 된 것은 상대의 공을 받는 방법부터 회전의 시스템에 대해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준 동기 덕분이었다. 계급의 고하를 막론한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그 시절 선임은 하늘과 같았고, 2년간의 군생활을 편안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아야 했다. 그렇기에 그에게도 트러블 없이 편안하게 탁구를 즐길 수 있는 동기생이 필요했다는 명목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를 가르쳐줬으니 나는 그 시절 감사한 마음으로 그와 비슷한 수준까지 맞춰주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내 취미가 탁구에서 끝나지는 않았다. 그 시절 병사들이 으레 그렇듯 밥 먹고 하루 3시간 탁구만 쳐도 남는 것이 시간이었기에 다른 취미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다음으로 눈을 돌린 곳이 밴드, 바이올린과 같은 음악 동아리였다. 그중에서도 특이한 것이 바이올린 동아리였는데 정확히는 바이올린을 킬 줄 모르는 이들의 모임이었다. 다들 어디선가 바이올린을 구해와서는 끼릭끼릭 키기 시작하는데 오로지 바이올린 입문서에만 의지한 채 팀적인 조율 없이 연주하는 이들의 모습은 흡사 농민봉기 시절을 연상케 했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첫 오케스트라 연주 전 합주 당시 봤던 세컨드 바이올린 팀과 흡사했다. 여기에서 나는 구경하는 사람처럼 이야기했지만 나 또한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 사실 괴로운 사람은 듣는 이들이 아닌 연주를 하는 우리 모두였다. 결국 이 모임은 유야무야 개인 연주로 갈라서게 되었고, 나도 병사 전역 전까지 연주를 하다 후임병에게 저렴한 가격에 넘겨줬다. 애초에 나도 선임병에게 10만 원이 월급이던 시절에 저렴하게 넘겨받았으니, 3대째 주인이 바뀐 바이올린은 부대의 명물이라 칭해도 되지 않을까, 이제와서는 그렇게 회상해 본다.


 그렇게 나는 병사시절을 탁구, 밴드, 바이올린, 글쓰기와 같은 취미로 가득 채워 풍성하게 군생활을 마무리했고, 내가 당직사관으로 들어갈 때쯤 이런 동아리 활동은 모두 과거의 흔적으로 사라진 후였다. 내가 당직사관이 되기까지 수년 사이에 핸드폰반입이 허용되었고, 태블릿 반입이 일부지만 허용되었고, 월급이 150만 원까지 올랐다. 그들에게 이제 단체 활동은 핸드폰 게임이 되었고, 풋살, 통기타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임은 거의 절멸했다 싶을 정도로 모이는 이가 줄어들었다. 미디어의 발달로 기타를 배울 수 있는 여건은 과거보다 좋아졌지만 기타를 연주하는 이는 줄었다는 한 업계인의 푸념처럼 강력한 핸드폰의 힘 앞에서 자연스레 다른 취미들이 도태된 거다.


 간부 시절에는 혼자서 이런저런 취미를 가졌다. 카메라를 메고 다니면서 주말마다 출사를 다녔고, 보드게임을 사서 모으거나 심레이싱 게임을 하기 위해 레이싱 시뮬레이터를 구매하거나, 차가 생긴 이후에는 드라이빙을 다니면서 바다를 보러 다니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적은 월급에 꾸준히 돈을 모으면서도 이런 취미를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가성비가 좋은 인간이어서 그랬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정확히는 취미 빼고는 아무 곳에도 돈을 쓰지 않는 인간이었기에,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병사시절에 비해 재미있게 취미를 즐기지는 못했다. 바보들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 아니 이 말을 여기서 사용하는 것은 아닌 거 같은데. 그렇다고 또 아예 틀린 말은 아니고. 정리하면  그 당시 자유가 결여되었던 우리들은 함께 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즐거웠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엉망진창인 바이올린 연주 놀이와 놀이라고 하기에는 사뭇 진지했던 탁구 경기에서 매일 즐거움을 느꼈겠지.


 솔직히 병사시절이 그립냐,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대답할 것이다. 이유는 맨 위에서 말했던 '교육'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절 함께했던 감성만은 조금 그립기도 하다. 그리고 닫힌 환경과 시너지가 생겨 무언가에 몰두하게 되었던 분위기가 그립기도 하다. 200p 가량 되는 공군 병사 노트를 동기, 후배들에게 받아 빼곡하게 채워나갔던, 주말이면 점심 식사 후에 탁구장에 삼삼오오 모여 부딪히던, 누가 음악실에 간다고 하면 악기를 툭툭 집어 들고 뛰어가던 그 시절, 이게 우리의 군생활이었다.


 그 외에 도전한 취미도 많았다. 배드민턴도 있었고, 헬스도, 농구도 있었다. 위에서 말한 것들에 비하면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지 못했지만. 군생활 당시에 시작했던 취미 중 아직까지 이어지는 취미는 심레이싱과 사진촬영뿐이다. 탁구는 그 시절에 맞췄던 중국식 펜홀더를 아직 가지고 있지만 같이 할 사람을 찾지 못해 포기한 지 꽤 오래되었고, 바이올린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처분, 베이스기타는 전역 전에 저렴한 가격에 선배에게 처분했다.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해본 취미들은 내 삶에 양분이 되었다. 어쭙잖게 한 일은 하지 않은 것과 같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쭙잖게라도 접해본 일과 접해보지 않은 일은 천지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케스트라를 했기에 아직까지도 금관악기에 관심이 있고, 그 시절 후배들과 조율하며 바이올린 팀과 합주를 했기에 바이올린도 배워볼 수 있었다. 탁구를 나름대로 잘했기에 다른 운동에도 욕심이 생겼고, 배드민턴, 헬스부터 고등학교 때 했던 농구, 그리고 검도에도 도전하게 되었다.


 다음에 또 어떤 새로운 취미에 도전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모르는 게 많은 만큼 배우고 싶은 것도 많기에 더 도전해보려고 한다. 아, 그런데 이렇게 무언가에 계속 도전하는 사람은 연애도 못한다던데. 아마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다음 주에는 신앙생활 이야기를 다뤄보려고 한다. 군대 하면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것이 종교활동이다. 누군가는 강제로, 누군가는 본인의 의지로 참석했을 텐데 본인 또한 이에 대한 많은 기억이 있기에 한 번은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어떤 종교가 좋다, 어디를 가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본인 또한 지금 냉담을 하고 있으니 그냥 추억팔이 정도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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