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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Jun 09. 2024

인천 아트북페어 후기

6월 1일에 열린 아트북페어에 다녀왔다. 이제 하루하루 기온이 올라가고 있다고, 점심을 향해 가는 인천역은 후덥지근했고 주말의 차이나타운은 적지 않은 인원으로 북적였다. 군에 몸담고 있을 때는 이런 행사가 있는 지도 몰랐는데 전역을 한 후에야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으니, 이런 말을 하면 웃기지만 역시 전역하고 볼 일이다.

 최근 카메라를 다시 메고 다니고 있다. 거리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도시의 생기를 느끼고 나 또한 이 도시의 일부임을 다시금 느낀다. 내가 찍은 사진에는 언제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길게 펼쳐진 길이 있다. 나는 끝없이 펼쳐지는 길을 좋아하는 걸까. 마치 하늘에 닿을 것처럼 뻗어나가는 길과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남기는 발자국과 이어지는 삶을 떠올리게 된다.


 행사장에서 카메라를 휘두를 틈은 없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이들이 방문했고, 또 그들이 만든 행렬을 따라 걷다 보니 멈춰 서서 찍을 틈 따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행사장 내부에서는 따로 사진을 더 찍고 싶지도 않았다. 눈길을 끄는 책들이 많았기에 그럴 시간에 책을 조금 더 구경해보고 싶었다. 책을 만드는 이들의 열정은 대단하구나, 다시금 배운다.


인천 아트 플랫폼으로 가는 길, 다시금 되뇌었다. '지금 벌이가 없으니 책은 1권만 사기, 더군다나 지금 어깨에 카메라 가방도 메고 있어서 무거운 책 사면 돌이킬 수 없음.' 좀 추한 이야기이지만 이제는 씀씀이를 아껴야 했다. 과거처럼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인도 아니고, 이제는 퇴직금을 깨작깨작 까먹는 일만 남았으니. 더군다나 집에서 가져온 카메라도 니콘 D750이었다. 어깨에 메고 다니기 좋다고 말할 수 없는 풀프레임 DSLR, 아침에 준비할 때부터 내심 오늘은 행군이 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인천역에 내리니 그 무게가 체감되어 헛웃음이 나왔다.


 생각해 보면 인천역에 올 때는 늘 무언가 축하할 일이 있어서 오고는 했다. 형의 대학 졸업, 동생의 고교 졸업, 짜장이 뭐가 좋았는지 그 시절 우리 가족은 축하할 일이 있으면 가끔 차이나타운에 와서 점심을 먹었다. 늘 자동차로 와서 몰랐는데 이런 거리였구나, 한 걸음씩 거리를 노니며 목적지인 인천 아트 플랫폼으로 향했다.


좌) 가는 길, 찍고 나니 시점이 더 낮았으면 좋겠다 생각이 든다  우) 오늘의 강연 일정, 나는 김애란 작가님의 강연을 참석했다


 아트북페어는 좋은 말로도 정돈된 행사는 아니었다. 광장에도 부스가 있고 창고 갤러리에도, B동 1층에도, 2층에도 있었지만 행사를 어디서부터 구경하면 좋겠다는 유도도, 팸플릿을 구할 수 있는 진열대도 보이지 않았기에 당연하게도 행사장을 헤매며 길을 찾았다. 각 동의 안내데스크에서 팸플릿을 요청하면 나눠주지만 그보다는 진열대를 배치해서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솔직히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처음 관심을 가진 부스는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전시한 부스였다. 근대 문학을 책으로 출간한 작품들과 문학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담긴 팸플릿, 그리고 이 근방에 문학관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인천역 근처에 이렇게 볼거리가 많았던가, 오늘 행사 참여가 끝나면 방문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B동에 들어갔다.


 B동은 메인 부스답게 내부에 북페어 출전 부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행사 팸플릿을 구하지 못했기에 솔직히 2층에도 부스가 있는지도 몰랐고 어린 시절 방문했던 서코처럼 따닥따닥 붙어있는 부스들의 모습에 '설마 이게 전부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구경을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간략하게 아트북페어를 찾아봤을 때 위에 나오는 부스들을 보고 예상은 했지만 역시 생각 이상으로 애완동물(특히 고양이), 자연에 대한 부스가 적지 않았다. 역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친구는 고양이인가, 솔직히 고양이는 책 읽을 때 방해될 거 같은데... 고양이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집에서 애완동물을 기르지는 않기에 온전히 감성을 공유하지는 못하면서 많은 부스를 지나쳤다.


 내가 유의 깊게 본 부스는 B동, 창고 갤러리를 포함해서 5 부스정도 있었다. 끝내 책을 구매했던 '.TXT', 관심은 갔지만 지갑 사정 때문에 책을 사지 못했던 '꼴렉시옹 루아지르', 손가락 2마디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작은 책을 파는 한 부스와 채식주의를 하는 악어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책을 파는 부스, 그리고 갤러리에서 라바콘을 촬영해 일지를 만든 부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이토록 다양한 타입의 부스들이 모일 수 있는 것도 아트북페어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먼저 장고 끝에 책을 산 '.TXT'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책을, 정확히는 누군가 내고 싶어 하는 책을 내는 부스였다. 판타지, 지옥의 악마, 혹은 신을 사전처럼 정리한 "지옥사전", 무협 속 신묘한 약을 정리했다는 "묘약록", "백수의 권"이나 "잃어버린 조선의 부적들"같은, 과연 누가 읽을까? 싶으면서도 관심이 가는 책들을 내는 부스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이 부스에서 "신사 숙녀의 자기방어술" 이라는 책을 구매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가독성이 좋은 책은 절대 아니다. 책이 위로 길고 옆으로 좁은 형상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종이의 장력을 버티지 못하고 접히는 구조다. 그에 비해 레이아웃도 꽤나 빽빽하게 종이 안쪽까지 집어넣고 폰트도 본문 내용의 분위기에 맞춰 낡은 폰트로 분위기를 냈다. 사실상 읽기 좋으라고 만든 책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집에 이런 책이 한 권정도 꽂혀 있으면 재밌지 않을까? 만약 그런 부분을 노렸다면 보기 좋게 당했다고 외치겠다.


'꼴렉시옹 루아지르'에서는 과거 프랑스의 패션을 일러스트로 정리한 패션 서적, 세계문학 완역본을 팔고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카메라 가방에 들어갈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아 구매하지 않았다. 패션 서적은 생각 이상으로 잘 정리가 되어있었는데 본 도서에 대해 일러스트의 출처, 사료에 대해 물어보는 다른 손님을 보면서 출처표기의 중요성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 외에는 텀블벅에서 펀딩을 통해 책을 내시는 거 같은데 자신의 편집자 경험을 풀어냈던 책은 막상 전부 팔려서 없었다는 점, 있었으면 나도 한 권 사갔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작은 책과 동화는 모두 B동 2층에 있었다. 특히 나는 동화가 마음에 들었는데 과거 대학 수업 당시에 들었던 "동화는 독자가 어린아이지만 구매자는 부모인 특이한 시장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동화의 핵심은 아이의 시선으로 풀어내 아이의 흥미를 유도해야 한다는 점, 부모에게는 교훈적이고 교육적이라는 인상을 줘야 한다는 점 모두를 기억해야 한다."는 말을 늘 생각하며 살았기에 이런 어린이를 위한 동화에 유달리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스티커를 붙이며 동화를 같이 만들기 좋다는 점, 어른들도 좋아하는 내용인 점, 그리고 아이들에게 직관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을 들면서 설명을 해주셨는데 내가 아이가 있는 가정집이었다면, 그리고 아이가 악어가 나오는 캐릭터 만화를 많이 본다면 한 번쯤 고려해 볼 만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과거 대표 악어캐릭터였던 크롱은 이제 너무 늙었고, 카카오프렌즈의 콘은 너무 마이너한 캐릭터라 아이들이 악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초록색 악어가 초록색 풀을 먹는 이야기는 상상할 때마다 웃겨서 마음에 들기는 했다. 작은 책은 일러스트 북이었는데 말 그대로 작았기에 눈에 띄었다. 집 책상을 꾸미는 용도라면 정말 적당하지 않았을까.


 창고갤러리에서는 1년간 집 주차문제로 봐온 라바콘을 시작으로 자신 주변의 라바콘을 촬영하는 일대기를 정리한 포토북을 봤다. 주변의 평범한, 당연한 물건에 몰입하고 이에 의미를 찾는 행동들에 대해 나도 흥미를 느꼈기에 재미있게 설명을 들으면서 책을 넘겼던 기억이 나는데 안타깝게도 이미 책을 산 상태여서 추가로 책을 더 사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후에 편집자의 시선으로 릿터 읽기 수업을 들어갔는데 강사이신 정기현 편집자님이 쓰신 "초예술 토머슨"이라는 책에 대한 리뷰를 읽어보면서 북페어에서 본 이 책이 생각나 아쉬움이 더해졌다. 그때 샀어야 했는데, 이미 이름도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되었으니 다시 찾기는 힘들겠지.


구경이 끝난 후에는 사실상 내 메인 일정인 김애란 작가님의 강연에 참석했다. "소설의 사계 삶의 음계", 삶과 죽음, 사람들의 다양성과 이 또한 사람이고, 이 또한 나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사람들과 그 속에 사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셨는데 처음 가져온 대본이라 그러신 건지 생각보다 시간에 쫓기면서 말씀하시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사계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본인이 쓴 소설 "입동"을 가져왔는데 지난달 죽음에 관한 도서를 감명 깊게 읽어서 그런지, 이 강의 속에서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간과 일어서야만 하는 남은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났다. 친부모를 잃는 고통도 함께한 세월만큼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일진대 자신이 낳은 아이를 먼저 잃는 부모의 고통은 얼마나 클까. 가장 큰 불효는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이라고, 예로부터 내려왔다고 하지만 죽은 이에게 효라는 것은 현대인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말이다. 누군가 떠나면 결국 현세에 남은 이들은 슬피 울고, 바닥을 치면서도, 다시금 일어나야만 한다. 이 고통은 과연 "살려하니까 살아진다."는 말로 이겨낼 수 있는 고통일까. 강연 재미있게 들었다.



 이렇게 올해의 인천 아트북페어가 끝났다. 이렇게 핸드폰으로 대충 사진을 찍으니 좀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아트북페어 자체는 부족함 없는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올해 봤던 부스들이 내년에도 더 좋은 작품을 가지고 참가하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에는 2권 사가고.




말이 길어져 나머지는 사진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그 후에는 한국근대문학관을 다녀왔고, 거리를 다니면서 사진을 조금 더 찍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제야 글을 쓴 이유도 사실 사진 정리가 덜 되어서였다. 이달 말에는 국제도서전에도 가는데 국제도서전은 얼마나 규모가 클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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