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되려고 하는 이들이 도대체 왜 알라딘의 '서재의 달인'이나 예스24의 '파워블로거'에 도전하지 않는지 저는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출판편집스쿨 수업이 끝나고 답답한 마음에 변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을 때 받은 답변이었다. 사실 머리로는 서평을 쓰는 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책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만든 책을 읽고 책의 의미, 사회적 작용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고 이게 토대가 되어야 내가 만든 책의 의미, 사회적 작용에 대해서도 논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메일을 받고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이게 서평?이라고 할 만한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이 수업은 내가 써왔던 글들에 대한 간단한 재점검 시간이다. 나는 실제로 '어떤 방향으로 서평을 써야, 누가 볼 지 예상을 하고 써야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가'와 같은 생각으로 글을 쓰기도 했고, 갈피를 잡지 못해 다양한 부분으로 책을 분석하기도 했다. 왜 팔리지 않았는가, 번역은 어땠는가, 내용, 레이아웃, 개인적인 평...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그간 가졌던 자부심에 부끄러움이 올라와 다음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 아마 4주간 왕래할 때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본가가 내동으로 이사를 가면서 한겨레교육문화센터와 더 멀어졌다. 버스를 2번 갈아타야 했고 버스는 양화대교 근방을 지나 대로변을 달리다 보니 늘 만원이고는 했다. 거기에 수업이 있는 화요일마다 일이 있었고, 마지막 수업 때는 친형의 첫 운전에 동승한다고 옆에 탔다가 진이 빠지기도 했다(운전을 가르쳐주는 사람들에게 문득 존경심을 느낀다). 일이 생길 때마다 함께하던 이들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오늘 그렇게 힘들면 수업 빼고 집에서 쉬는 게 낫지 않아?"
그때마다 나는 고개를 저었고 어떻게든 시간에 맞춰 참석했다. 이번 수업도 듣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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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개강하기 전 서평을 제출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가장 최근에 쓴 글은 위에 올린 영화도둑일기에 대한 서평이었기에 그대로 제출했다. 솔직히 나름 잘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서문을 나름 재미있게 썼고, 비유도 본 도서와 비슷하게 들어가는 비유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나? 스스로 자평하면서 제출했다. 그리고 이런 자만심은 두 번째 수업에서 바로 박살 났다.
1. 실패한 비유
2. 도서에 대한 생각을 이어갔지만 이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없음. 책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뿐임.
3. 그래서 서평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야 함.
4. 그래도 서두는 흥미롭게 썼음.
이렇게 혹평을 받았는데 그래도 서두는 흥미롭게 썼다는 이야기에 속으로 웃었다. 가끔씩 글을 쓰는 입장에서 그래도 처음은 잘 썼네 라는 말이 얼마나 칭찬처럼 들리는지... 선생님은 글에서 서사적 거리감을 두라는 이야기를 늘 하시는데 아마 내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이해하기에는 적합하고, 내가 보기에는 그럴듯한 비유였지만, 과연 타인이 보기에 그럴듯한 비유였는가?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24년 전 게임에 대한 플레이 감상은 실용 영화에 대한 감상만큼이나 마이너 했을 거니까.
안타까운 점은 2번과 3번이다. 선생님의 평을 듣고 나서야 내가 담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떠올랐다. 나는 미디어의 보존과 공유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이제는 일회성으로 쓰이고 사라질 미디어들이 어떤 경로로든 공유되고 보존되어, 후세에 글로만 남는 것이 아닌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로 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담고 싶었다. 미래에 사라지는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제는 볼 수 없는 직업인 문선공에 대해 언급을 하며 비유를 시작하는 칼럼처럼, 이제는 글로만 남은 식물들의 이름처럼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글에는 그런 마음이나 생각이 온전히 담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언제나 마지막 칸을 빈칸으로 남기는 내 습관 때문이다.
내가 쓴 다른 글들도 그렇다.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담으려는 것처럼 말을 풀어내지만 내가 했던 생각은 직접적으로 마지막까지 풀어내지 않는다. 그런 완결성이 멋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습관일지도 모르고, 빈칸으로 남기는 것이 서평을 읽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일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생각의 발로일지도 모른다(실제로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서평에 대한 평가는 내가 했던 잘못된 행동과 생각들에 대한 가장 가혹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 솔직히 이렇게 배부를 정도로 혹평을 듣고 움츠리지 않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부분이라도 수정한다면 한 단계 스텝업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니까 그 후에는 좀 웃음이 나왔다.
그 후로 나온 다른 서평에 대한 이야기들도 내게는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서평을 누구 읽으라고 쓰는지, 전문적으로 보이고 싶어 쓰는 글은 아닌지, 특정 출판사의 책만을 분석하는 것이 과연 취업 시장에서 도움이 되는 글쓰기 방식인지, 서평이라고 글을 쓰고 있지만 저자와 평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저자의 글만 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이 중에서도 가장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책을 상품으로 접할 때의 서평과 책을 작품으로 접할 때의 서평을 구별하며 써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책을 상품으로 접해 분석한다는 것은 업계 종사자처럼 전문적으로 보이기 위해 하는 행동이지만 업계 종사자처럼 전문적인 사람을 뽑고 싶다면 출판사는 그냥 경력자를 뽑지 신입을 뽑지 않는다는 이야기,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든 종사자가 아닌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빈약한 데이터로는 종사자 수준의 분석을 하기 어렵다는 이야기... 음, 틀린 말이 전혀 없다. 그리고 사실 이 말을 듣고 좀 찔렸다. 지난 몇 번 다양하게 시도해 본다고 썼던 서평 중에는 그렇게 쓴 서평도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이 수업은 0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보다는, 첫걸음을 나섰고 앞으로 어떻게 걸어야 할까 고민했던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이기는 하다. 서평에 대해서는 선악 시비 미추와 판단과 근거가 핵심이고 여기에 호오-다른 말로는 호불호-는 필요 없다는 이야기로 간단하게 설명할 뿐, 그 후는 모두의 서평에 대한 강평뿐이다. 하지만 출판사에 취업을 생각했고, 서평에 대해 한 번이라도 고민을 해봤다면 이 4주는 가치 있는 4주가 되리라 생각한다. 내가 했던 고민은 다른 이들도 했던 고민이고, 다른 이들이 했던 행동은 과거 내가 했던 행동일 테니까. 그러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방향성을 다시 잡는다는 의미에서 이번 수업은 충분히 가치 있고 재미있지 않았나 싶다.
내 서평을 처음 강평하실 때 자기 글에 취해서 쓴 건 아니냐고 이야기하셨는데 솔직히 찔렸다. 어딘가에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 볼 것이라는 생각이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스스로 쓰는 글에 대해 즐거움을 느껴야 이런 일도 이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그래서 자기 글에 취해서 썼다는 말을 반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웃었다. 그리고 절반은 객관화가 아직도 덜되니 조금 더 사람들이 보기 좋게 다듬어 쓰자는 자기반성을...
이제 내일은 독서모임이 있고, 모레는 인천 아트북페어에 간다. 나는 사실 출판편집스쿨을 다니기 전에 아트북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으레 그렇듯 특정 미디어 작품에 대한 아트 디자인 북을 줄여서 아트북이라 부른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아트북이라는 장르가 따로 있다고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이런 정보를 가르쳐준 학우님들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군이라는 조직 특성상 수도권보다 외지에 있고 이런 정보에는 둔감하다 보니 하던 일을 접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지만 그렇기에 지금 다른 대외 활동도 함께하고, 또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공부할 기회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
6월에는 인천 아트북페어와 서울 국제도서전이 있다. 둘 다 처음 가보는 행사니 재미있게 둘러보고 좋은 추억으로 만들어야지. 그리고 다음 주부터 기다리던 편집자의 시선으로 릿터 읽기 수업이 시작된다. 원래는 서평 워크숍과 같이 5월에 시작해서 비슷한 시기에 수업이 끝나는 것을 원했는데 인원을 구하지 못했다고 밀리다 보니 서평 워크숍이 끝나고 다음 주부터 수업을 듣게 되었다. 이 수업도 이번 워크숍처럼 재미있게 흘러가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변 선생님이 출판편집스쿨, 서평 워크숍 수업 말미에 이야기하셨던 에디터십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늘 편집자에 대한 꿈을 키우는 것 같다. 편집자가 뭐든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무심하게 넘기지는 말아야 한다. 많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야 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내는 만큼 자신의 이야기 또한 중요하다. 이제 전역한 지 2달이 지났는데, 가진 돈이나 까먹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더 공부하고 더 배우면서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