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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May 27. 2024

지나간 것들과 함께한 짧은 일상

소일상 이야기 모음집

1


문선공에 대한 칼럼을 읽은 적이 있었다. 활자를 뽑아 문장을 만드는 이들, 닳아 없어진 지문과 손에 묻은 먹으로 삶을 증명하는 이들. 옛 것들은 청취와 함께 뿌연 안개를 뿜어내고, 우리는 이를 로망이라 부르며 마시고 취한다. 이젠 다시 보지 못할 것임을, 설령 살아 있더라도 멀찍이서 바라볼 뿐 아무도 하지 않을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지난주 파주 지혜의 숲에 다녀왔다. 도서관처럼 책이 빼곡하게 꽂혀있고 그곳에서 따로 숙소도 구할 수 있다. 해당 숙소를 쓰면 지혜의 숲에 있는 책을 빌려 숙소에서 읽을 수도 있다. 솔직히 매력적인가? 의아했지만 같이 가는 친구가 그 분위기가 좋다 하기에 별생각 없이 함께했다.


 나는 파주에 작은 로망이 있다.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서 일하며 책과 가장 가까이 사는 이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 다들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 취직을 꿈꾸는 와중에 이게 무슨 소리냐 할 수도 있지만 삶의 절반을 한적한 동네에서 보내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한적한 도시에서 정취를 느낀다. 조용한 도시도, 탁 트인 자유로도, 30분 거리에 있는 산 아래 커피숍도. 짧은 1박이었지만 리프레쉬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문선공. 지혜의 숲에서 활자의 숲이라는 일종의 활자 박물관에 갔고 오래전에 봤던 칼럼이 다시금 떠올랐다. 이제는 찾을 수도 없는 오래된 칼럼은 내가 이 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을 키워준 글 중 하나였다. 이제는 사라진 직업을 추억할 수 있게 해 준 글 중 하나였다. 세상은 변한다는 것을 내게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글 중 하나였다. 칼럼을 스크랩하는 이들의 마음이 이랬을까. 아, 그때 스크랩 했어야 했는데. 이제라도 늦은 탄식을 뱉어본다.




2


최근 서평을 전혀 쓰지 않고 있다. 정확히는 못쓰고 있다. 이유는 2가지다. 하나는 서평 워크숍이라는 수업을 듣다 보니 과거 생각했던 방향성, 글의 완성도에 대한 회의감과 더불어 때로는 책을 읽고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 하나는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이 서평을 쓸만한 책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지금 여러 책을 동시에 읽고 있다. 루틴처럼 특정 시간대마다 생각이 날 때 읽는 것이다. 밤 시간대에 읽는 책은 한국 현대문학사, 막내 동생이 국어교육과를 다닐 때 시험 때문에 읽었다는 책인데 이제는 동생이 이 집을 떠났다 보니 내가 대신해서 맡고 있는 책이다. 솔직히 읽고 있으면 내가 지금까지 지레짐작했던 것들이 틀리기도 하고 맞기도 해서 무언가 알아가는 재미에 읽고 있기는 한데, 그거랑 별개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는 않는다. 동생의 이야기처럼 딱딱해서 읽히지 않는다기보다는 책 자체가 조급하게 읽을 이유가 없는 책이다. 무엇보다 이런 책들은 조급하게 읽으면 머리에 남는 것 없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고. 그래서 좀 아껴먹는 중이다. 아껴먹는다고 하는 게 맞나?


 다음으로 읽는 책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다. 고등학교 때는 이런 책을 덥석 집어 들고 하루, 이틀 만에 읽고는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랬나 신기할 따름이다. 낮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천천히 읽고 있다. 과거에는 양장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 나온 영화 특별판은 무선 제본 방식이라 그때와 읽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내용이 가득 담겼다고 해야 하나, 이만큼 굵은 책이 무선 제본이니 잘못하면 찢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해야 하나, 읽을 때마다 여러 측면에서 부담감을 가득 가지게 된다. 아니, 오히려 이런 책을 부담감 없이 집어든 과거의 나에게 찬사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읽는 책은 가장 빨리 읽어야 하는 양들의 침묵이다. 이번주 금요일 독서모임에 선정된 도서기도한데 원래 공포 스릴러 장르를 별로 안 좋아하다보니 이토록 유명함에도 책은커녕 영화로도 접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이렇게라도 좋은 글을 읽게 해 주니 오늘도 독서모임에게 감사함이 늘었다. 나는 솔직히 공포, 스릴러와 같은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스플래터 무비는 아예 기겁을 할 정도다. 누군가가 죽고 다치며 바닥이 피로 흥건하게 젖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뭐, 글로 접하다 보니 조금 두려움이 덜하지만 그래도 책을 읽은 후에 ott로 영화를 찾아보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내일이면 서평 워크숍 수업은 끝이 난다. 4주 간의 짧지 않은 수업이었는데 강평 전에 긴장도 하고, 결국 욕도 먹으면서 배우는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듣고 싶었던 대답들을 모두 듣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하지?라는 생각에 도전했던 수많은 행동들에 대한 답변, 그리고 지금 내가 생각했던 방향성의 수정, 앞으로 해야 할 일들. 내일 수업에서는 내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이 수업이 끝난 후 6월 3일부터는 편집자의 시선으로 릿터 읽기 수업이 시작된다. 5월에 시작 예정이었던 이 수업은 예상과 달리 인원을 다 모으지 못해 6월로 넘어갔다고 한다. 솔직히 5월에 전부 듣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이제 다음에 개강하는 수업도 재미있게 들어야지. 그리고 또 하나씩 배우면서 취업에 힘써야지.




3?


6월 일정


인천 아트북 페어 가기

서울 국제 도서전 가기

중학교 동창 만나기

주간, 야간 독서모임

사진 찍으러 다니기

검도 다시 시작하기

그리고 많은 독서


며칠 전에 브라질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는 형을 만났다. 6월에 계획한 것들을 말하니까 왜 이렇게 바쁘게 사냐는 말과 함께 돌아오는 이야기.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바쁘게 사는지 몰라. 브라질 사람들처럼은 아니어도 놀 수 있을 때 놀고, 또 이렇게 움직이는 거 말고 집에 가만히 있어도 훌륭하게 놀고 쉬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이도 얼마 안 남았다?"


"맞는 말이긴 한데 지금 이게하고 싶은 거니까. 그리고 집에서 게임만 하면 질린다? 요즘 게임 질리더라."


 형은 이제 결혼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한다. 브라질에서 만난 여성분, 브라질 사람들은 자국을 너무 사랑해서 결혼해도 본토를 떠나지 않는다고 하던데 결혼하면 이제 얼굴은 또 어떻게 볼까. 언제 또 바보처럼 우리끼리 모여서 술이나 마시며 놀 수 있을까.


 확실한 건 20대 초반, 중반, 함께 모여 밤새도록 술이나 마시던 청년들은 이제 아저씨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비혼주의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형조차 결혼을 이야기할 만큼 시간이 흘렀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변했다는 것.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그 시절처럼 떠들고 웃는다는 것.


 벌써 이 인연도 15년은 되었다. 그 당시 글쓰기를 좋아해서 모인 사람들 중 글로 먹고사는 이는 한 명도 없지만(나는 먹고살고 싶어 하지만 아직 백수니까) 그 인연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반년에 한 번도 겨우 보는 우리지만 그래도 그 한 번 볼 때 즐겁게 웃자.




활자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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