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레맛곰돌이 Apr 15. 2024

점심에 적어보는 근래의 일상

아침부터 비가 와

 다음 독서모임은 26일, 그전까지 팔자 좋게 다른 책을 읽고 있다.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1871-1900', 이 책에 대한 서평은 나중에 따로 작성을 해보려고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관심이 많았던 역사도, 몰라서 찾아봐야 하는 역사도 많지만 이 또한 독서의 즐거움이리라.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가벼운 일상 이야기를 적고 싶어서다. 오늘로 4월의 중간점을 찍었다. 4월 초순부터 지금까지 이례적인 날씨를 보이다가 오늘에서야 비가 내리고 땅이 식었다. 친형은 예비군 훈련 때문에 집을 비웠고, 부모님은 부동산 잔금을 치르러 가셨다. 오늘도 집에는 나 혼자 뿐이다.


 한참 눈뜨면 출근하고, 커피 한 잔을 비운 후 엔진을 고칠 때 생각해보고는 했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일을 하지 않고 집을 지키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지금 집에 혼자 남은 형은 어떤 기분일까. 막상 푹 쉬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 없이 집에서 여유롭게 있어도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솔직히 조금 심심하다. 일하고 싶다.




요즘 가끔 카페에 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다. 변명이라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집에서는 온전히 책에만 몰두하지를 못한다. 독서용으로 마련한 책상이 없다 보니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하는데 그러면 자꾸 모니터로 눈이 간다. 모니터에는 아무런 불빛도 없다. 검은 도화지가 펼쳐져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머릿속으로 검은 도화지에 선을 긋는다. 그림을 그린다. 그러다 보면 집중이 흐트러진다.


 카페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랑하는 연인들, 한숨 돌리기 위해 방문한 직장인들, 아이들과 함께 찾아온 부모, 혹은 어머니들. 삼삼오오 함께하는 이들 사이에서 홀로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자니 가끔 미안한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가득한 카페에서는 책에 집중하게 된다. 내가 상상이라는 심연 아래에 빠지기 전 누군가가 목소리로 나를 끌어올려줘서일까.


 솔직히 벌이가 없는 입장에서 이제는 커피값도 호사다. 이제 내 한 달 벌이는 지원금 55만 원이 전부고, 독서모임을 할 때 드는 비용, 핸드폰 요금, 기타 지불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아슬아슬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과거보다 벌이가 줄어든 대신 얻은 자유는 값지냐?',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물어본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쉬는 게 좋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살만 찌고, 돈도 없다.


 예전에는 사무실에서 움직이고 작업장에서 움직이면서 열량을 태웠다. 그랬기에 어느 정도 체형이 유지가 되었고, 그 시절 남부럽지 않은 체력을 가졌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 비교하지 말아야겠다. 이 것도 내가 게을러서 '곧 이사를 가니까 이사 가면 운동 시작해야지' 중얼거리기만 하고 시작하지 않은 탓이니까. 문득 전역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인사를 갔을 때 반겨주셨던 사무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너는 시작하면 꼼꼼하게 마지막까지 잘 가는 타입인데 언제나 시작을 미적거리는 버릇이 있어. 알고 있지? 그걸 고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분명 고치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될 거야."


 사무관님, 당장은 게으르게 살고 있지만 잊지 않겠습니다... 진짜로 이사 가면 운동 바로 시작할게요... 이렇게 자유를 얻으니 살은 얻고 돈은 잃고 있다. 하지만 달라진 게 하나 있다. 책을 가까이할 시간을 만들고 있다는 점. 생각해 보면 정말 오랜 시간 책을 놓고 살았다. 일하면서 바쁘다는 이유로 책을 멀리 했고, 게임 때문에 책을 멀리 했다. 좋아하는 소설은 많이 읽었지만 교양서적은 일 년에 몇 권도 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책이든, 정확히는 교양서적을 더 많이 읽으며 보내기로 했으니까.


 지금 내가 쉬는 시간은 책과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정확히는 쉬는 시간도 아니다. 출발선을 찾는 시간이다. 그러니 부끄러워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열심히 살았으니까. 20대의 시작부터 마무리 직전까지 일만 하며 살았는데 다시 출발선을 찾는다고 집에서 있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니까. 1년은 쉬어도 된다. 설마 너 하나 못 먹여 살릴까. 전역하고 집에 돌아온 날 아버지는 내게 다시금 말해주셨다. 그렇지만 난 1년은 쉬고 싶지 않다. 1년은 내게 너무 긴 시간이고, 나는 지금도 일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 당장 시작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당장 시작하기에 나는 아직 부끄러운 사람이고 모자란 사람이다. 출발선에 서지 못한 선수와 같다. 그렇기에 조금 더 책을 읽으면서 부단히 살고 싶다. 적어도 55만 원을 받는 몇 달 동안 손 벌리지 않고 내가 다시금 밟아야 할 출발선을 찾고 싶다.




사실 쓰고 싶은 글은 많다. 과거에 블로그에 썼던 누군가 지인이 짠 세계관의 인물에 대한 소설, 그때의 부족함을 알기에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보고 싶다. 그리고 공군에서 20대를 시작했고 20대를 끝낸 내 이야기도 한 번 적어보고 싶다. 그날도 이런 비가 오는 날이었다. 나는 해를 좋아하지만 비와 연관이 많은 인간이었고, 내 20대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비였다.


 오늘 같은 비가 오는 날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방 안은 뉴에이지 음악과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이 맴돌고, 이 글이 끝나면 아마 음악소리와 키보드 소리 모두를 정적이 밀어낼 것이다. 오늘은 남은 책 다 읽어야지. 내일은 해가 뜰 테니까 또 도서관으로 가볼까. 새로 만든 북스타그램도, 쭉 써오던 브런치도 계속 잘 이어가야지. 밖에서는 긍정적인 이야기 많이 하고 이런 이야기는 비 오는 날에만 가끔 떠올려야지.


 그리고 이건 어제 먹은 햄버거, 햄버거 사냥꾼은 오늘도 신메뉴를 찾아 나선다...

매거진의 이전글 밤양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