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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Jun 02. 2024

5/31 독서모임 주간 3회차 후기

양들의 침묵

내가 극장에서 처음 본 공포 영화는 컨저링 3였다. 요즘 말로 쫄보, 공포 장르와는 담을 쌓고 살았기에 이에 대한 면역도 전혀 없었고 보면서 눈을 반쯤 가린 채 움찔 놀라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나는 미디어에 '공포, 스릴러, 잔인'과 같은 태그가 붙어 있으면 피하는 사람이다. 그런 영화를 따로 시간 내서 본 적도 없고, 게임을 즐겨본 적도 없다. 특히 스플래터 무비, 피와 살점이 난자하는 영화는 호러와는 다른 느낌으로 섬뜩하게 내 정신을 뒤집어 놓는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미디어로도 유명한 양들의 침묵을 접해본 적이 없다. 그저 유명했던 베스트셀러구나, 거기에 나오는 한니발 렉터가 엄청난 악역이구나, 정도로만 기억할 뿐. 솔직히 처음 양들의 침묵이 독서모임에서 선정되었을 때 올 게 왔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 접해보지 않은 장르의 도서를 읽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독서모임 본연의 장점, 그게 물론 공포, 스릴러 장르의 소설인 것이 문제지만. 솔직히 책을 펼치면서 무서울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트 북이 아니고서야 책을 펼쳤을 때 그림이 튀어나오면서 나를 괴롭힐리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작품 자체가 어지러울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을 접하기 전 내가 생각했던 한니발 렉터는 레더페이스처럼 사람을 갈아버리는 미치광이 살인마정도로 생각했기에 아마 방바닥이 흥건해지도록 피가 튀리라 생각한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30일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내가 익히 읽는 장르가 아니었기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고 미루고 미루다 독서모임 전날 책을 펼쳤다. 그리고 책을 덮은 때는 다음날 새벽 4시 30분, '생각보다 할 이야기가 많을 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야기를 하지?' 곰곰이 생각하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서야 책과의 눈싸움이 끝나고 잡고 있던 긴장의 끈이 놓였다. 그와 동시에 귀를 뚫고 지나가는 트럭의 경적 소리, 아침이 오고 있었다.




"혹시 장르소설은 좋아하시나요?"


사실 이 질문은 좀 무의미하다 생각한다. 한국의 90년생은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를 필두로 많은 작품을 학창 시절에 접하던 세대였고 당시 불건전하다고 평하며 격하했던 라이트노벨, 한국식 장르소설, 혹은 라이트노벨에 대한 시도와 확장, 그리고 다시 발굴되는 하이텔 시절의 판타지 소설까지 영상 미디어가 확장되지 않은 시절 많은 장르소설이 꽃피웠던 세대기도 했다. 그렇기에 다들 장르소설에 대해 각자 관심이 있다는 듯한 반응이 나왔다. 또한 한때 장르소설을 좋아했고, 써보기도 했기에 이번 도서는 재미있었다는 말을 넘어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첫 번째는 캐릭터의 디테일과 요즘 표현으로 말하는 '캐릭터는 작가의 지능을 넘지 못한다'라는 당연한 진리에 대한 이야기. 한니발 렉터 박사는 한니발 렉터 시리즈 최대의 지성으로 나온다. 그는 한때 정신의학과 의사로 심리상담을 했고 자신의 전공분야 외에도 수사학, 범죄심리학, 종교학, 철학과 같은 분야에서도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캐릭터 자신의 입이 아닌 묘사와 행동으로 표현이 되는데, 이를 통해 작가의 디테일과 기획을 위한 사전조사가 돋보이게 된다.


 장르소설을 읽는 이라면 한 번쯤은 이런 작품들을 봤을 것이다. 작가가 공인하기로는 이 세계 최고의 지성을 가진 인물이라고 하지만 작가 본인의 역량 부족, 혹은 조사 부족으로 얼토당토 하지도 않은 행동 끝에 결론을 내고, 그대로 결말이 나는 이상한 소설들. 나도 이 이야기를 하고 나서 당장 몇 개의 작품이 떠올랐는데 다른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듯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사전조사를 1년 넘게 한다고 했던가, 본 도서를 집필하기 위해 프로파일러를 인터뷰하며 조사했다는 후일담을 들어보면 다시금 작품 계획과 더불어 충분한 조사는 필수불가결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양들의 침묵의 시간축과 이에 따른 시대상 반영에 대한 이야기. 본 도서는 1980년대 작품이었고, 시간축 또한 1983년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당시 여성 수사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 범죄자를 포함한 등장인물들의 -노골적이기도 하고 노골적이기도 않은- 비아냥, FBI와 연방 경찰, 이들의 소통과 때로는 대립과 비슷한 구도 형성, 이런 부분들이 시대상을 더 적나라하게 풀어내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특히 도서 초반에 스털링이 한니발 렉터 박사를 만나러 갈 때 나오는 "xx(여성의 성기를 나타내는 비속어) 냄새가 나는군..."이라는 대사는 너무나도 노골적이어서 뇌리에 깊게 박혔다. 나는 이 대사가 80년대 초반 여성 수사관이 아직 사회에 완전히 자리 잡은 포지션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다른 일부는 FBI와 경찰 사이의 묘한 신경전과 비협조적인 태도가 당시 수사에 대해 상하가 확립되지 않은 현대에 비해 무질서한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평도 있었고(나는 이 말에도 동의했다. 특종을 잡기 위해 머리부터 들이미는 기자부터 권력 아래 서로 삐걱거리는 경찰과 FBI의 모습까지...).


 마지막은 작품에 대한 순수한 본연적인 평가다. 해당 작품이 왜 재밌었는가, 내가 꺼려하는 장르임에도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는가, 에 대한 평가로 나는 모든 이야기를 작가의 입으로 공인해 주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해당 캐릭터의 전문성과 행동의 당위성, 생각을 묘사로 풀어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똑똑한 캐릭터다! 라고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전문가인지를 보여주고, 작가가 이 사람은 과거부터 재봉술을 배웠어!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죽의 무두질, 관리와 작업 방향성, 유의점에 대해 캐릭터의 생각으로 풀어내면서 그가 전문가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능력. 이런 능력들이 유달리 작품에서 빛났기에 다소 취향이 갈릴 수 있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그런 점조차 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았나, 나는 그렇게 평가했다. 그리고 그런 내 평가에 다른 분이 이야기를 얹어주셨다.


"한니발 렉터라는 입체적이고 재미있는 인물을 만들고 이 시리즈를 4권만 쓴 게 너무 아까워요. 적어도 5, 6권은 쓰셨으면 좋았을 텐데..."


 솔직히 요즘 작가라면 이 시리즈로 10권 정도를 썼을 텐데(장르는 다르지만 00년대 전후로 나온 장르소설을 보면 타라덩컨 12부작, 해리포터 7부작, 테메레르 9부작과 같이 성공한 장르소설의 경우 정말 수많은 책들이 나왔다), 작가가 그 후로도 청탁을 받지 않는 이상 거의 쓰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니 현대에 나온 작품이었어도 시리즈가 계속 이어졌을지는 미지수지만 아쉬운 점은 확실히 남는다. 그리고 하나 더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자면 양들의 침묵, 한니발, 한니발 라이징까지 4부작 중 3개의 작품은 국내에 판권을 통해 다시 출판했지만 레드드래곤만은 판권을 사 오지 않았는지 출판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양들의 침묵 4년 전 사건인 레드드래곤에 대해 넌지시 이야기가 나오고는 하지만 지금 작품을 접하는 독자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혹은 다른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거나.


 이번 모임도 꽤나 즐거웠다. 그리고 책 이외의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집에 이북 리더기가 있음에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는 하지만, 이번에는 핸드폰으로 본 도서를 읽었다는 분이 계셔서 그분의 독서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은 크레마클럽을 사용하시는데 핸드폰을 스크롤링하는 것조차 독서 시간이 길어지면 힘들다 보니, 이번에는 자동 스크롤링 기능을 켜놓고 멀찍이서 글만 읽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자동 스크롤링 기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 기능을 쓰시는 분이 실제로 있었다니... 물론 나도 어렸을 때 소설을 핸드폰으로 읽으면서 손가락 지문이 실시간으로 닳는 느낌을 느껴봤기에 공감은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라는 인간이 전자책으로 읽을 때조차 종이책으로 읽는 느낌을 받고 싶어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며 책을 읽는 괴짜기에 나는 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좀 들었다. 다음 모임은 아직 미정이지만 다음에도 또 책에 대한 이야기, 책이 아닌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골고루 담아서 떠드는 풍성한 모임을 기대하고 있다.




31일 독서모임, 1일 인천 아트북페어, 계속 일정이 있다 보니 2일이 돼서야 독서모임 글을 썼다. 사실 이게 끝나면 다음은 아트북페어에 대한 후기도 써야 하고 늘 쓰는 5월 독서리뷰, 프리뷰에 대한 글도 써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면 브런치에 쓰고 있는 글과 본 도서에 대한 서평도.


 사실 본 도서에 대한 서평이 필요할까, 조금 회의적이기는 하다. 아마 여기서 다뤘던 이야기들이 전부이지 않을까 싶은데, 특히 나는 스릴러 장르에 대한 지식도 없고 이 작품의 다른 미디어믹스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기에 서평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이 서평과 5월 독서리뷰를 통한 짧은 글로 서평을 대체하지 않을까 싶다.


 내일은 고대하고 고대하던 편집자의 시선으로 릿터 읽기 수업 개강일이다. 내가 하도 이 이야기를 독서모임에서 떠들어서 그런지 다른 한 분도 이 수업을 신청하셨다고 하는데, 솔직히 인원이 덜 모여서 개강일이 한 달 밀려버린 입장에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아마 한 달 더 밀렸으면 진짜 정신이 나갔을지도 모른다... 릿터 읽기 수업으로 이번 달도 보람차고 풍성하게 보낼 거 같다. 읽던 책들도 빨리 읽고 새 책도 찾아서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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