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알게 된 계기도 '편집자의 시선으로 릿터 읽기 5기'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편집자님의 추천 도서, 인생 도서라고 매 수업마다 나오던 도서였고, 공교롭게도 이번 수업에 쓰인『릿터 Littor 2024.2.3 - 46호』 리뷰 지면에도 편집자님의 리뷰가 정성스레 작성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릿터에 추천할 정도로 즐겁게 읽은 책이니까 수업시간마다 계속 언급이 나왔던 거겠지.
그리고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는 걸로 알 수 있겠지만 당연히 내 취향에도 맞는 책이었다. 아마추어가 예술병에 걸리면 답도 없다고들 이야기하던데. 인문예술서적에 손이 가는 건 막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나는 예술에 그렇게 조예가 깊은 편이 아니다. 문예사조에 대해 배웠고 이에 대해 대학에서 글을 쓴 적도 있지만,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노력 수준이었을 뿐이며 무엇보다 캠퍼스에서 4년을 보냈던 친구들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개인적인 평가는 다른 예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관심은 있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들에 비하면 당연히 모자랄 것이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건 겸손함인가? 오만인가? 나는 겸손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에도 즐겁게 책을 읽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해하고 싶었다. 그들은 무엇이 예술을 초월한, 초예술이라고 말하고 싶었을까. 예술이라는 어려운 단어 앞에 '초'라는 엄청난 접두사가 붙어버리니 벌써부터 그 단어의 위용에 기가 죽었지만 그래도 이겨내고 그들과 함께 감정을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끝까지 완독하고 깨달은 사실, 초예술은 '초'라는 접두사가 붙을 만큼 대단한 것이지만 사실 '초'라는 접두사가 붙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우리와 가까운 것이었다.
다들 제목을 읽으면 이런 생각부터 들 것이다. 그래서 초예술은 뭐고 토머슨은 뭔데? 여기서는 토머슨의 정의에 대해 짧은 시대적 배경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고 내가 느끼기에 이 명명방식은 실로 80년대스럽고 다소 악의적이지만, 어이없을 정도로 친숙하다. 세상에 누가 비싼 돈 주고 데려온 외국인 용병 타자가 공을 못 친다는 이유만으로 '토머슨은 벤치를 달구기만 하고 타격은 못하니, 쓸모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쓸모없는 것. 앞으로 그런 건축물을 토머슨이라 칭하자!'라는 식으로 명명하겠는가... 사실 한국 사람들도 그러지 않은 건 아니었다.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동하던 당시 경기에 출전하지 않으면 안티팬들은 벤치나 달구고 있는다는 의미에서 벤치성이라는 악의적인 말로 비하했고, 박주영 선수가 아스날에서 활동하던 당시 거의 전 경기를 벤치에만 있으니 가만히 있으면 이기는 승리의 토템이라는 식으로 비하적인 표현을 쓰기도 했다. 물론 이런 의미에서 토머슨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초예술이라 불리게 될 토머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후로는 많은 사람들이 투고해 주는 토머슨을 기반으로 연재된 칼럼이 계속된다. 이런 문화는 구시대의 난개발 건축 양식에서 현대시대의 계획도시 형태로 전환될 때 많이 보이는 노상관찰 행위다. 난개발이 반복되면서 과거 쓸모가 있던 건축물이 쓸모가 없어지고, 혹은 건물의 대부분은 쓸모가 있지만 일부만 쓸모가 없어진, 그럼에도 그 쓸모 없어진 것을 치우기에는 또 인력이 사용되니 그대로 유기하게 되는, 현대도시의 발전 과정. 사실 토머슨을 찾는다는 행위는 도시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면 이는 이름 없는 시대에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가 된다.
이 책을 읽은 이들이 감명을 받아 현실에서 토머슨을 찾으려고 해도 아마 한국에서는 쉽게 찾기 힘들 것이다. 1. 이미 한국의 도시는 난개발을 지나 계획도시의 형태로 가고 있고 2. 난개발지구조차 도시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철거가 되고 있으며 3. 이런 사정들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더 이상 거리의 흉물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시가 앞장서 없애기를 원하고 있다. 정도의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이다. 한 지역에서 20년가량 산 사람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도시, 작게 말하면 집 앞 길조차 정리되고 거리는 천편일률적인 색으로 아름다워진다. 어린 시절 눈썰매를 타고 내려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울퉁불퉁한 언덕길은 벌써 초록색 페인트가 인상적인 매끈한 길로 재포장되었고, 자전거를 타다 부딪히면 아프겠다는 생각이 드는 축구공 크기의 시멘트덩이는 일찍이 잘려나가 길의 일부분이 되었다.
2000년대 중, 후반 칼럼에서는 빈민촌, 한국식 어휘로 달동네를 찾아가 거리를 사진으로 표현하는 칼럼이 자주 나왔다. 때로는 사라져 가는 달동네와 한국의 도시 정비 사업을 같이 조명시키기도 하면서. 구 도심이 새롭게 개발되고 현대식 도시로 탈바꿈하는 건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현대식 도시가 되는 과정에서 구도심의 흔적은 필요 없다. 그렇기에 모든 것들은 0(zero)가 되고, 새로운 건물은 폐허도 아닌 모든 것이 정리된 공터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사진작가들은 르포적인 사명감을 넘어 시대를 말하는 아카이빙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그곳에서 카메라를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현대식(혹은 난개발 수준에 그친 구도심에 살지만 또 달동네 정도는 아닌) 도시에 사는 독자들은 불분명한 계획과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 목표 아래 세워진 건물들 사이에서 아름다움과 더불어 거리에 담긴 추억과 이야기를 떠올렸을 것이고. 이게 쓸모가 없어 방치된 건축물을 찾으면서도 그 건축물의 쓸모를 찾고, 추억하고 싶었던 일본인들이 가졌던 마음과 비슷한 듯 다른 감정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책의 끄트머리에 가보면 결국 토머슨이라 불리던 존재들은 하나하나 철거되고, 도시의 일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모든 것은 시대를 기억하고 명명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더 이상 달동네에 대한 사진 칼럼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이제 토머슨이라 불리던 것들은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남긴 족적에 의의가 없는 건 아니다. 토머슨을 찾는 행위는 이제 '노상관찰학'이 되었고, 24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노상에 놓인 물건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 인천아트북페어에서 나왔던 자신의 집 앞에 있던 주차 라바콘을 시작으로 깨진 것부터 방치된 녀석까지 모든 라바콘에서 이유를 찾았던 작가님, 한없이 펼쳐진 길 위에서 사진을 찍으며 그 길의 의미를 찾는 나, 그리고 감명을 받아 노상관찰학회 세미나에 참석했다는 정기현 편집자님까지. 그들이 남긴 유산은 다양한 형태로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어렸을 때 달동네를 직접 오르며 거리의 사진을 찍던 칼럼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파란색, 빨간색 플레이트가 덧씌워진 천장과 좌우로 길게 펼쳐진 담벼락 사이에서 촬영한 사진에 무슨 아름다움을 느꼈는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저런 사진작가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물론 그 꿈은 이루지 못하고 지금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거리를 찍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지만.
나는 이사를 여러 번 다니며 예컨대 구도심이라고 부르기 적합한 곳에서 꽤 오래 살았다. 집 앞은 경사진 언덕이었고 그 언덕의 아래에는 철로를 따라 긴 방음벽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언덕을 바로 내려오면 방음벽을 넘어 반대편으로 넘어갈 수 있는 철교가 있었다. 나는 그 철교를 좋아했다. 언덕 아래, 방음벽만 겨우 넘을 수 있는, 물이 아래로 흐르는 가장 낮은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철교 위에 올라간 순간만큼은 저 하늘의 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내게 철교는 작은 천문관과 같았다.
언덕, 철교, 붉은 벽돌집, 긴 담장. 아마 한국적인 구도심을 표현할 때 이보다 적합한 단어 묶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문득 임현 작가님의 단편 모음집 『그 개와 같은 말』이 생각난다. 그는 내가 나열한 단어 묶음으로 한국을 풀어낸다. 그 배경에 아름다움이란 없다. 다들 날이 서있고, 때론 추하고, 때론 더럽다. 비가 오는 여름이면 괴롭고 눈이 오는 겨울이면 더욱 괴롭다. 내가 보고 자란 배경이어서 그랬을까, 소설은 재밌었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