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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Jul 30. 2024

유토피아 전시전, 여름편집자학교 3강 강연+오션월드후기

유토피아: 노웨어, 나우 히어와 난다 여름편집자학교 3강 그리고 오션월드

 7월 28일, 이제 장마도 끝나고 해가 뜨기 시작했다. 완연한 여름이 앞으로 한 달은 남았다는 의미다. 내가 이 전시전을 가게 된 계기는 별 게 아니었다. 형이 휴가를 쓰고 갑자기 전시전을 간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그 후 형이 가져온 도록을 보면서 이야기를 듣고 가게 되었다. 물론 그 사이에는 여러 이야기가 숨어있다. 나에게 함께 가자고 권했지만 어떤 전시전인지 알려주지 않아서 관심이 없었는데, 전시전을 보고 온 후에 무슨 소설 작가의 일부 작품을 토대로 만들었다던데? 같은 관심이 동하는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 가게 되었다던지. 가져온 도록의 그림이 마음에 들고 연출이 궁금했다던지. 이야기는 많지만 아마 말을 꺼내다 보면 친형을 향한 성토장이 열리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7월 28일에는 일정이 하나 더 있었다. 난다 여름편집자학교 3강, 글항아리 편집장님의 강연 듣기. 두 일정을 같이 묶은 이유는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라운드시소 성수와 청담시네시티까지의 거리가 20분 남짓이어서 전시전을 본 후에 시간에 맞춰 움직여 바로 강연에 들어 가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계획을 세우던 당시에는 꽤나 러프한 계획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밥은커녕 커피를 마실 틈도 없을 정도였다. 9시 조금 넘은 시간에 집에서 나와 전시장까지 가는데 1시간 30분, 전시전 구경 1시간 30분, 이동시간 20분. 지금 계산해 봐도 정말 타이트한 일정이었는데 대체 중간에 커피 마실 시간이 남을 거라는 발상은 어디서 난 거지?


 강연이 끝난 후에는 대충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으려다 29일 오션월드 일정이 생각나서 급히 마무리. 그리고 바로 다음날 새벽부터 오션월드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당일치기로 새벽부터 운전을 해서 오션월드에 가고, 빡세게 논 다음에 폐장시간 맞춰 친구들을 집에 데려다줄 수 있을까? 사실상 내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알겠지만 자정이 넘어 모든 친구들을 집에 데려다줬고 목숨은 부지한 채 집에 돌아왔다. 중간에 친구들이 내가 대신 운전해 줄까? 같은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지만, 솔직히 남에게 차를 맡기느니 집에 안 가고 만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어서 말이지... 중간중간 일이 많았기에 서문부터 난잡하지만 오늘도 하나하나 이야기를 토막 내 정리해 본다.


1. 유토피아 : 노웨어, 나우 히어 전시전 후기

지하철역을 표기하는 지도를 보면 역 이름이 잠에 들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인 것이 인상적이다.


 유토피아, 그러니까 이상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는 언제나 전시전의 단골 레퍼토리로 손꼽힌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전시전에 관심이 동한 이유는 하나였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내 단편을 기반으로 이 전시전을 기획했다는 이야기. 소설과 전시전의 융화라는 기획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전시전을 구경하는 일도 싫어하지 않고.


 이번 기획의 초기 구성부터 작품 배치까지 재미있는 요소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처음 입장을 할 당시 꿈과 추억, 과거의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CRT모니터를 필두로 레트로 감성을 보였고 태초의 어둠과 빛, 우주와 별에 대한 거대 담론을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주제에 맞게 풀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억이 나는 작품은 많았지만 우주에서 밝게 빛나는 별을 용접봉의 아크로 표현한 장면은 아마 당분간 강렬한 빛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날 만큼 순수히 재미있는 발상이지 않았나 싶다.


 사실 작품 개개인을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작품과 작품 간의 연관성, 전시장의 배치, 그리고 작품 연출과 디테일적인 요소로 접근했다면 더 재미있게 볼만한 요소가 많았다. A와 B라는 작품의 그림자의 방향을 보면 A의 경우 그림자가 왼쪽으로, B의 경우 그림자가 오른쪽으로 뻗는 것을 통해 작품 사이에 -보이지는 않지만- 동일한 광원을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서로 반대되는 그림자를 보인다는 점이라던지. 도록으로는 단순히 착시 현상을 일으킬 것처럼 생긴 작품이었지만 작은 구멍을 통해 보게끔 만들어놔서 처음 작품을 접하는 방문객이 구멍으로 접근하는 시선의 방향에 따라 작품의 포인트를 유도하고, 내부에 유리를 설치해 반사되는 연출을 표한다던지. 사람이 없는 물과 지하철역 내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카피문구라던지. 기획과 연출 모두 잡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나 싶다.


입처럼 길게 늘어지는 창문이 마치 사람과 같아 재밌다는 생각을 해봤다. 내심 마음에 든 작품


 그라운드시소에 대해서는 과거 한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앞으로도 이런 재미있는 기획이 나올 거라는 기대감을 올려주는 전시전이었다고 생각한다. 전시전이 끝난 후에는 도록부터 시작해서 여러 아이템을 파는 굿즈샵에 들렀는데 나는 이미 집에 도록이 있으니 그 대신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리커버 에디션을 구매했다. 사실 나는 김초엽 작가의 이름을 익히 듣기는 했지만 SF 소설 자체를 많이 읽지 않다 보니 접할 기회가 없기는 했다. 아마 당장 읽지는 않겠지만 다음 달 중에는 읽고 전시전을 떠올리면서 비교해 볼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이번 리커버에디션과 형의 도록, 같은 전시전을 보고 물에 잠긴 지하철을 떠올린 형과 보랏빛 하늘을 떠올린 나

2. 난다 여름편집자학교 3강 <속도내는 법, 확장하는 법 - 독서 유목민 편집자의 영역 넓히기> 후기


 전시전이 끝난 직후 버스에 몸을 던졌다. 12시 20분, 13시 강연까지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버스 하나를 놓이면 늦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고 버스에서 내린 후에도 거의 뛰듯이 움직이며 강연장을 찾았다. 내 자리는 맨 앞의 맨 왼쪽 구석이었다. 사실 다른 이들과 함께 듣기 위해 연달아 정해진 좌석을 골랐는데 다른 분들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결국 홀로 이 강연장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래도 늦게나마 맨 앞자리를 잡아 편집장님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은 자리선정이 아니었을까?

이 기울어진 각도를 통해 내 위치가 예상되리라 생각된다.

 강연은 대전제를 세우고 이에 따른 곁가지가 붙는 형식으로 흘러갔다. 기획, 구성, 작가와의 관계 형성, 자기 자신을 향한 고찰. 모든 주제에서 강조되는 사항은 결국 편집자의 독서이력과 스스로 글을 쓰는 행위, 생각을 정리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였고 이는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모든 편집자들과 언사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사항이었다. 민음사의 정기현 편집자가 릿터를 편집할 때 내세웠던 수많은 자신의 독서 이력과 경험도, 서평 워크숍을 진행하셨던 변 선생님이 강의를 진행할 때 좋은 책을 찾기 위한 조건에서 이야기했던 자신의 독서 경험과 해당 책의 자신의 경험, 시장 내의 포지션 분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그리고 이번 강연까지도. 결국 좋은 책을 만드는 편집자는 책을 읽어야 하고 이를 토대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여러 강의를 들으면서 내 독서 이력과 경험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 이 서평 적기였다. 처음에는 취업을 목표로 하는 다소 불순한? 의도의 활동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은 꼭 적고 싶다! 는 강렬한 감각과 함께 글쓰기를 이어가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이제는 글을 읽을 때마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계속 떠오른다. 오히려 쓰고 싶은 말이 없으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근에 서평이 20편을 넘겼다. 적어도 30편은 쓰라는 변 선생님의 이야기에 따라 처음에는 30편을 목표로 적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목표는 잊고 순수히 즐기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 기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마 이번 강의에서 가장 강조했던 글쓰기와 독서라는 대목에서 나는 순수히 좋은 길을 가고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칭찬해 본다.


 강연은 즐거웠고, 중간중간 내가 익히 아는 책들과 최근 읽고 있던 『나쁜 책 : 금서기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기에 조금 웃으면서 마지막까지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강연 초반에 연재물을 단행본으로 엮는 방식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라는 의견을 보이셨고 이런 연속성을 띄는 작품 특성상 하나의 대주제로 작품을 묶지 못하면 이는 여러 차례 쓰인 편지를 엮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방향의 이야기를 꺼내셨는데, 나 또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최근 느끼고 있었기에 공감을 하며 듣는 한편, 위에서 언급된 책 또한 연재물이었기에 과연 이런 스스로의 문제제기에 대해 어떻게 돌파해 나갔을까 라는 의문점이 생겼다.


 그래서 강연이 끝난 이후 편집장님께 쭈뼛쭈뼛 다가가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셨냐는 질문을 드렸고, 이에 대해 어제 메일을 통해 답변을 받았다. 예비 편집자 지망생의 개인적인 질문에 나름의 기획 의도와 고민을 담은 메일을 보내주신 편집장님께 다시금 감사하다는 말씀을 이 자리에서 드린다. 그 메일을 통해 비로소 강연이 완성되었고 『나쁜 책 : 금서기행』의 서평도 마무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서평은 강연이 끝난 후에 쓰고 싶었다. 내용 자체는 굉장히 재밌었지만 최근 연재물을 엮은 단행본을 꾸준히 읽었고 이런 연재물적 특성에 대해 의구심을 계속 품어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답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훌륭한 답을 돌려받았으니, 독서모임이 끝나고! 월 말 독서 리뷰가 끝나고! 독서 모임 도서에 대한 리뷰가 끝나고! 그 후에는 작성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어째 월 말이면 써야 하는 글이 자꾸만 쌓여서 괴롭다. 왜 말에는 늘 쓸 글이 3편, 4편, 많게는 5편까지도 쌓일까.


 강연에 대한 총평을 하자면 결국 편집장님의 열정에 감화되는 강연이었다고 생각한다. 페이가 좋지 못하고, 업무 환경이 좋지 못하고, 사람들이 좋지 못하고... 그런 이야기가 암암리에 돌고는 있지만 그 이전에 나는 글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해서 이 일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강연을 통해 언제나 새로운 열정을 얻고 다음 달을 힘차게 내걸을 용기를 얻는 사람이고. 편집장님의 열정에 다시금 감화되며 열심히 준비해서 좋은 편집자로 일어서고 싶다는 꿈을 품어본다.


3. 7월 29일 오션월드 후기

 

 살면서 오션월드에 처음 가봤다. 여름이면 오션월드! 핫해 핫해! 하는 광고는 익히 들었지만 나와는 관계도 없는 장소였고 애초에 우리 가족들은 수영장에 가는 일이 아예 없었으니까. 생각해 보면 일을 시작한 후에는 가볼 수도 있었는데 왜 안 갔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뭐, 애초에 별로 보여줄 것이 없는 내게 수영장은 먼 존재였던 것이 정답이겠지. 


 이번에는 중학교 동창들이 같이 가자고 꼬드겨서 약속을 잡게 되었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이게 대체 무슨 놀러 가는 조합일까 싶기도 하지만 이미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에 남자, 여자 구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식으로 놀았고.


 비가 오는 월요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역시 7월 말 휴가기간은 무서운 법이다. 아침 7시에 출발하기 위해 6시 30분부터 차를 끌고 나왔는데 옆자리에 앉는 녀석은 의무감으로도 눈을 뜨고 있었건만 뒷자리에 앉은 친구는 혹여 추울까 준비해 준 모포까지 덮고 출발한 지 30분 만에 잠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6시에 일어나 차 끌고 오션월드까지 2시간 30분, 폐장시간 7시까지 신나게 논 후에 다시 경기도로 1시간 30분, 거기에 저녁식사를 하고 각자 집에 데려다 주기까지 40분. 이거 나만 힘든 여행 아닌가? 이게 늘 운전하셨던 아버지의 비애였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뒤에 앉으신 여성 분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갈 때도 자고, 올 때도 자고...


 놀이기구를 타기엔 줄이 너무 길어 익스트림 리버(이하 작은 유수풀), 서핑마운트(이하 파도풀),  슈퍼 익스트림 리버(이하 파도풀)를 주로 타고 폐장 직전에 카이로 레이싱을 즐겼는데, 이렇게만 즐겨도 하루가 알차다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특히 작은 유수풀은 실내에서 실외로 흐르는데 이걸 가만히 타고 둥둥 떠내려가다 다른 친구 구명조끼를 잡아 빠뜨린다던지 하는 유치한 장난을 치고는 했는데, 나이 30이 다 되어가도 이런 장난을 멈출 수는 없다는 걸 느꼈다. 파도풀에서는 같이 온 여자사람친구(이하 여사친)가 수영을 못했기에 벽으로 가면 끌어다가 밖으로 내밀어주고, 얕은 곳으로 흘러가면 잡아다가 깊은 곳으로 같이 데려오고 하는 식으로 다 같이 파도를 타며 놀았다. 과정에서 물을 많이 먹어 돌아오는 길에 목이 좀 아프기도 했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재미있던 것은 유수풀이었다. 다 같이 튜브를 타고 둥둥 떠내려가는 와중에 파도가 치는 지점에서 멈춰 서있다가 파도를 맞으며 흘러갈 때의 즐거움이란, 이런 재미를 이제야 알았다니. 인생을 헛살았다는 말보다는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놀이동산과 같은 곳에 놀러 가서 군것질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럴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놀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거의 혹사다 싶을 정도로 몸을 움직이는 편이니까.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는지 내 기준에서는 과연 이 정도로 먹고 싶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군것질거리를 틈틈이 사 먹었다. 츄러스, 라면, 군만두, 커피... 이 정도면 사실상 푸드코트 아닌가? 뭐, 이게 모두의 노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면 납득이 가지만. 아니, 사실은 내가 아직도 제대로 즐기는 법을 모르는 걸지도. 나는 카메라를 메고 혼자서 뛰어다니듯 동물원을 3시간 만에 주파하던 인간이었으니까. 내 기준에서는 즐긴 거지만 다른 사람들 기준에서는 혹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듯 동물원을 일주한 후에는 저녁을 먹고 밤에 바로 뻗기도 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생각보다 너무 피곤해서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채로 올라왔다. 다른 이의 연애사나 음악과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올라오기는 했지만 결국 가장 큰 이야기는 결혼을 생각 중인 옆자리의 친구가 품고 있는 고민과 가정사에 대해 둘이서 나눈 이야기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29살과 14살, 이 15년의 간극에 변하지 않은 것이 우정이라면 변한 것은 현실이다. 예전의 일상 이야기처럼 우리는 이제 사랑을 하고 가족을 꿈꿔야 하는데 이룬 것은 없으니, 과연 가족이라는 틀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생과 사, 인연과 같은 중요한 기로에서 고민을 풀어낼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이라는 쓸쓸한 생각들. 특히나 최근 그 친구는 조부모님의 죽음을 겪었기에 이런 고민이 더 깊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내가 너무 어린 시절에 조부모님과 외조부모님을 모두 보내드렸기에 파편적인 기억으로 그들을 추억하고 있는데 10년이라는 기억이 쌓인 그 친구는 얼마나 답답할까. 검은 넥타이를 매고 녀석을 마주한 날 씁쓸하게 짓던 웃음을 잊지 못한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인천에서 가진 조촐한 저녁자리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직장, 전 남자 친구, 전 여자 친구와 같은 쓸모없는 이야기들. 쓸모없지만 필요한 이야기들. 사랑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여사친의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밤문화와 이런 것들을 즐기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이야기하면 웃기지만 나는 29살이 되도록 클럽에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연애를 꽤 길게 하기도 했고, 그전까지는 여자보다 종교, 음악, 예술, 공부,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았다. 남자들만 있었던 군대에서는 클럽 한 번 가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때로는 부끄러운 이야기가 되기도 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가본 게 자랑인가? 싶기도 한다. 경험은 중요하지만 내가 하우스 음악을 좋아한다고 클럽에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런 주제들에 내 의리, 동료 의식에 대한 긴 담화도 좀 이어졌다. 어쨌든 나는 군인으로 살았고, 우리는 라인이니 파벌이니 이런 소리를 하면서도 언제나 군인이라는 이름 아래에 뭉쳤다. 동료 의식이라는 게 있었고, 의리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 부끄러운 인간들도 있었지만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후배들을 위해 잘못된 것은 솔선수범해 들이박는 것이 선배의 미덕이었고 나는 마지막까지 노력했다, 이런 길고 지루한 이야기. 요즘 사회에서는 내가 말하는 의리라던지 동료라던지 이런 말들이 굉장히 상투적이고 틀에 박힌 문구가 된 느낌이라는 말에 다른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처럼 사는 인간은 없을 거라고, 너도 이제 사회화가 더 되어야 한다고. 조금 더 들이박다 보면 언젠가 나도 사람이 되겠지. 그렇게 웃어넘기지만 사실 나도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지난 『있었던 존재들』에 대한 서평에서도 직업의식이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서 열을 내봤자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만한 구석도 아니었고. 이 사회에서는 내가 이레귤러인 거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지우지 못하면서 여사친도 집에 데려다주고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3가지 사건에 대한 후기였는데 이번에는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쓰고 싶은 말이 많았고, 작은 사건들이 아니었으니까.  이제 다음 예정은 8월 3일에 있는 독서모임이다. 그전에 또 술을 마시자는 약속이 있긴 했는데, 뭐 그건 여기에 쓰일 만큼 큰 일은 아니니까 빼고 이제는 독서모임까지 꾸준히 책을 읽으며 8월을 맞이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써야 하는 글은 『나쁜 책 : 금서기행』서평, 7월 독서 리뷰 및 프리뷰,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와 『고통 구경하는 사회』의 서평, 8월 독서모임 후기까지 총 4편이다. 이렇게 열심히 쓰는데 내가 지원하는 출판사에서는 이 서평을 읽고 있을까. 읽고 마음에 들었다면서 부른 곳이 있었으니 아마도 읽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 열심히 써본다. 아니, 사실 읽지 않아도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서 넘쳐 결국은 쓰게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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