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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석영 Apr 02. 2020

코로나 19와 오랑우탄의 숲


제국주의의 기본 인식은 지배와 종속(피지배)을 ‘노멀 상태’로 보는 것이다. 제국이라는 말의 어원인 라틴어 ‘imperium’ 자체가 누군가에 대한 ‘지배’를 뜻한다.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인간은 평등하지 않으며 우월한 민족이 열등한 민족을 지배함이 우주의 순리다.      


불행히도, 이 이데올로기는 자연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발원했다. 저 16세기,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 강탈은 ‘제국주의적 자연 지배’라는 오래된 역사적 경험에서 뻗어 나온 것이었다. 기이한 언어와 풍습으로 살아가고 있던 그곳의 원주민은 채찍으로 다스려야 하는 하등동물의 다른 버전일 뿐이었다.      


우주의 위계구조상 가장 밑에 있는 것들은 지배해도 좋다는 생각은 수백 년간 유럽 땅을 지배했다. 예컨대,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은 콜로세움 개관을 기념하여 100일 동안 9,000마리의 야생동물을 살육하며 축제를 즐겼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유럽 땅에서 동식물들이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지만, 황금기는 길지 않았다. 11세기 이후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까지, 영국에서는 학, 비버, 큰곰이 멸종했고, 유럽 전역에서는 늑대와 뇌조의 수가 급감했다. 16세기 초 잉글랜드에서는 여우, 족제비, 담비 등 야생동물의 시체를 가져오면 교회 관리인이 돈으로 바꿔준다는 내용의 법까지 제정되었다. (상세한 내용은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 세계사』를 참고)     


20세기 중엽. 수백 년간 지구를 뒤덮었던 제국주의와 신제국주의라는 먹구름이 사라지고 UN이 창설된 이래, 인류사회에서 제국주의 이념은 더는 발붙일 곳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연을 지배 대상으로 한 제국주의적 행동양식에는 전혀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한편으로 야생동물 보존 운동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태동한 20세기였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제국주의적 자연 강탈은 극으로 내달렸다. 


19세기 후반,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로 인한 인류사회와 자연 간의 대사적(metabolic) 상호작용의 교란을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는 이것을 ‘대사적 균열(metabolic rift)’이라 불렀다) 크게 우려했는데, 20세기에 이것이 기어코 현실화되었다. 지구에서 ‘대사적 균열’이 일어나는 동안, 울리히 브란트(Ulich Brand)와 마르쿠스 비센(Markus Wissen)이 말한 ‘제국적 생활양식’(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의 중심부가 그 주변부를 착취하고, 그 주변부는 그 주변부를 착취하는 식으로, 자연을 최종적 피지배자로 삼는 ‘지배의 연쇄’를 통해서 지속가능한 생활양식)이 세계 도처에서 보편적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우리를 옥죄고 있는 ‘코로나 19’라는 재앙은 저 ‘대사적 균열’로 인해 초래된 여러 현상들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재앙은 기업과 인간의 지배하에 놓인 자연의 비극이 비단 자연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기업과 인간의 비극으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류사회 전체가 ‘대사적 균열’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그 어떤 재앙보다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유다르다.      


그렇기에 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섬, 오랑우탄들이 겪어온 오래된 비극은 오늘 새삼스럽다. 이들의 비극 뒤에는 ‘대사적 균열’을 일으키는 가운데 ‘제국적 생활양식’을 한층 공고히 해온 자본주의 경제가 있고, 그 비극은 우리의 비극으로도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오랑우탄의 비참은 팜유(palm oil) 생산에서 기원한다. 2005년, 팜유는 콩기름을 제치고 세계 생산량 1위의 기름으로 등극하는데, 이유는 딱 하나, 훌륭한 경제성 때문이었다. 단위면적 당 생산량이 탁월했고 (콩보다 4~6배 높다), 그러기에 값이 저렴했으며, 보존 기간도 긴 데다, 혈청 콜레스트롤 수치도 높이지 않는 건강식이라 인기도 높았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가공식품을 넘어 각종 미용 제품, 연료(바이오디젤 연료)의 생산에서도 팜유는 제 몫을 톡톡히 했다. 한마디로, 팜유는 돈이 되었다.      


팜유 생산 기업들은 농지 확대에 혈안이 되었다. 문제는 농지에 심을 기름 야자수(palm tree)의 서식조건이었다. 특이하게도 이 나무들은 연중 내내 기온이 높고 일조량이 넘쳐나며 축축한 기후조건에서 가장 잘 자라는데, 지구에서는 특히 보르네오 섬과 수마트라 섬의 열대우림이 딱 그런 조건을 구비한 장소였다. 오랑우탄들의 숲 말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 팜유 생산량의 85%가 이 두 섬의 숲을 개간한 농장에서 생산되고 있고, 1999년과 2015년 사이 무려 10만 마리의 보르네오 오랑우탄들이 목숨을 잃었던 까닭이다. (현재 3종 오랑우탄 모두 CR, 즉 심각한 위기종 등급이며, 현재 속도로 숲이 파괴될 경우 2032년 멸종될 예정이다)     

   


대안이 있을까? 팜유 생산을 둘러싼 자연 파괴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자, 2004년 ‘지속가능한 팜유 산업 협의체(RSPO)’가 발족한다. RSPO는 RSPO 인증마크가 있는 제품은 숲을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생산된 제품이라며 홍보하고 있지만, 속사정은 홍보와는 달랐다. WRM(세계 열대우림 운동, World Rainforest Movement) 같은 단체는 수많은 팜유 농기업들이 RSPO 인증마크 같은 ‘그린 이미지’로 자신들을 위장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2018년 9월 그린피스는 허쉬, 켈로그, 하인즈, 네슬레, 유니레버, P&G, 펩시코, 마스, 로레알, 존슨앤존슨, 다논 등 팜유 관련 25대 기업들이 채 3년이 되지 않는 기간에 싱가포르 면적의 2배에 이르는 열대우림을 파괴했다고 폭로했다.         


비난의 화살은 이들 악덕 기업들로 향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만일 저 기업들의 이름이 친숙하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사실, 팜유는 우리 모두의 ‘제국적 생활양식’과 분리될 수 없다. 감자칩을, 켈로그 시리얼을, 오레오(Oreo)나 리츠(Ritz)를, 허쉬(Hirsh) 초콜릿을, 빵과 버터를, 라면을 즐기는 한, 팜유는 우리의 젖이고 꿀이며 기쁨이다. 시인 최승호는 시화호방조제 공사 당시 세금을 낸 국민들이 실은 “시화호의 살인청부자였다”고 썼다. 팜유의 생산과 소비를 즐긴 이들 모두가 실은 ‘열대우림의 살인청부자’가 아니면 무엇일까.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 영국 화가 존 다이어(John Dyer)는 ‘그림 그릴 마지막 기회(Last Chance to Paint)’라는 프로젝트(www.lastchancetopaint.com)를 어린이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림과 음악을 접하며 어린이들이 위태로운 자연과 토착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기획된 프로젝트다.     






 

존 다이어와 함께 아이들이 그린 오랑우탄의 숲은 일종의 천국이다. 아이들은 죽어가는 오랑우탄을, 쓰러지는 숲을 그리지 못한다. 이 천진난만한 아이들도 커서는 오랑우탄의 피가 묻은 음식을 즐기게 될까? 아니, 이들은 제 명대로 살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의 아이들은 어떨까? 우리는 이미 새로운 시대로 진입해 있고, ‘미래를 그리워하는 능력’은 우리 자신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다.   


*출처: 한겨레신문. 애니멀피플. 우석영의 동물+지구 미술관(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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