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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석영 Apr 01. 2020

어떤 오래된 질병

궤도를 바꿀 건지 말 건지 기관실에서 주야장천 이바구만 까대는 동안에도 열차의 궤도는 전연 바뀌지 않았다. 2019년 12월, 무언가 쿵 하고 열차에 부딪혔다. 열차는 삐걱거리면서 여전히 달리고 있지만, 속도는 완연 늦춰졌고 배출물(정확히는 대기 중 온실가스) 증가율도 현저히 낮아졌다. 열차에 와 부딪힌 것은 뜻밖에도 태풍이나 가뭄 같은 것이 아니라 신종 바이러스였다.      


정말이지, 뜻밖이었다. 하지만 이미 1980년대부터 기후과학자들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이야기했듯, 일부 생태학자, 역사학자, 감염병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신종 감염병의 위험을 역설해왔다. 이제야 그들의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역사의 표면 위로 올라와 우리의 귀에 쟁쟁할 뿐이다.      


이들에 따르면, 신종 감염병의 태반은 인간이 야생동물의 서식지인 숲 지대를 침범함으로써 초래된 결과였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러하다. 1920년대 아프리카. 침팬지를 식용한 일부 몰지각한 이들은 침팬지가 보유하고 있던 특정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다. ‘에이즈’라는 신종 질환의 시작이었다. (HIV) 1976년 콩고, 에볼라 강변의 어느 마을. 신종 감염병 환자들이 속출했다. (당시 치사율 88%) 질병은 아프리카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원인은 원시림이 파괴되며 인간과 야생동물 사이의 접촉면이 증대한 것이었다. (Ebola)     

 

동일한 이야기는 반복된다. 1993년 미국 남서부. 치사율 55%의 신종 감염병이 발생했고, 원인은 사슴쥐, 흰발생쥐에 인간이 노출된 사태로 추정되었다. (Hanta) 1994년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 시 교외 마을인 헨드라. 말 스물한 필과 사람 둘이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인간의 거주지역을 과일박쥐들이 살던 숲 가까이로 확대하지만 않았다면 피할 수 있었던 참극이었다. (Hendra)


동종의 비극은 계속 이어졌다. 1998년 말레이시아로 가보자. 숲속의 돼지우리에 있던 어떤 돼지에서 인간으로 이상한 바이러스가 옮겨온다. 총 감염자 276명 중 106명이 사망했는데, 원인은 과일박쥐가 떨어뜨렸고 돼지가 먹었던 과일 조각으로 추정되었다. 숲을 침범하며 양돈농장을 확대한 결과였다. (Nipah) 2002년 중국 광둥 지역에서 첫 환자가 나온 신종 질병인 사스의 경우도, 바이러스를 옮긴 숙주는 야생박쥐로 추정되고 있다. (SARS)      


신종 질병은 아니지만, 유독 20세기에 미국과 다른 북반구 전반에서 발병율이 증가한 라임 병 역시 개발 행위로 인한 숲의 남벌과 파편화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숲에서 여우, 늑대, 부엉이, 매 같은 포식자들이 사라지자, 흰발생쥐가 급증했다. 이 설치류는 라임 박테리아(정확히는 보렐리아 박테리아)의 숙주로 추정되고 있다. (Lyme)      


이처럼 19년형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줄기를 뽑아보면, 그 아래 감겨 있던 줄기들이 한 두름으로 올라온다. 이 모든 질병의 출현은 일관된 병적 행동이 초래한 일관된 결과임을, 이제라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이제라도 무언가, 배우고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라임 병 연구자 리처드 오스펠트(Richard Ostfeld)의 말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야생동물 서식지를 농지로 개간하거나 숲을 파괴하는 것처럼 생물다양성 파괴 행위를 생태계에서 수행할 때, 우리는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주는 생물종들을 제거하는 경향이 있다.” (<뉴욕타임즈> 2012년 7월 15일 기사)     


숲과 야생동물의 보호가 곧 인류 자신의 보호가 되는, 또는 “인류의 육체적 생존이 인간정신의 근본적 변화에 매달리게 된”(에리히 프롬) 새로운 시대에 우리는 와 있다.       


그런데, 숲의 파괴는 산업화 이후의 사건은 아니다. 역사학자 클라이브 폰팅(Clive Ponting)에 따르면, 산림 파괴는 지난 1만 년 동안 인류사에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파괴의 속도가 빨라진 것은 19세기 중엽 이후, 특히 20세기였다.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20세기 들어 다른 곳과는 정반대로 숲 면적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아시아나 중남미 등지에서 목재와 펄프를 수입했기 때문이었다. 파괴의 외주화였다. 20세기 후반의 반세기 동안, 지구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열대우림은 무려 절반 가까이 소실되었다. 브라질에서는 아예 불을 놓아 숲을 쓰러뜨렸다. 이 모두가 집을 짓고 농장을 경영하고 목재와 펄프를 팔아 돈을 벌기 위함이었고, 그 배면에는 팜유와 설탕이 첨가된 스낵과 커피와 담배를, 타이어와 옷, 종이, 가구, 집 등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전지구적 자동운동이 있었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인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처음엔 서로 대립한다. 하지만 둘 사이에 힘겨루기가 끝나자 둘은 곧 막역한 사이가 된다. 의기투합한 둘은 삼나무 숲의 신 훔바바를 찾아 무찌르는 여정에 착수한다. 훔바바를 처음 목도한 이들은 삼나무 숲에 신들이 살고 있음을 알아채고 경외감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빈손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결국 둘은 훔바바를 죽이고 마을로 돌아온다.      


지금 우리에겐 다른 서사시가 필요하지 않을까? 훔바바를 죽이러 들어갔지만 서로 친구가 되어 나오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동아시아를 넘어 유럽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바이러스 레퀴엠은 우리에게 새 문명의 궤도에 오르라고 조언하고 있건만, 새로운 시대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이들은 백신 소식이나 하염없이 기다리며 ‘이 또한 지나가면 그만’이라는 망상의 암흑을 헤매고 있다. 


*출처: 한겨레 신문, 애니멀 피플, 우석영의 동물 + 지구 미술관 연재문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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