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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석영 Apr 14. 2020

지속가능성 개념어 사전(4) 수막 카우사이(충만한 삶)


에콰도르는 주목할 만한 나라다. 땅과 바다에서 나오는 것들(석유, 바나나, 커피, 코코아, 꽃, 금, 목재, 물고기 등)이 풍요로워서 21세기인 지금도 에콰도르인들은 그것들에 상당 부분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달리 말해, 에콰도르인들은 자동차나 냉장고, 컴퓨터 같은 것을 생산하지 않는다. 농수산물도 대부분은 자국 내에서 소비되고, 일부만 수출된다고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의료장비의 부족, 관의 부족 같은 문제도 이런 경제구조와 일정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수출 품목은 석유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에콰도르는 전 세계에서 토착문화를 가장 잘 고수하고 있는 국가에 속한다. 사실 이 나라는 잉카 제국에 복속되기 이전부터 고유한 건축 양식, 도자기 양식을 발전시키며 독자 문명을 유지했다. 특히, 케추아 족(Quechua people)의 고유한 페인팅 양식은 오늘까지 널리 인기를 얻고 있기도 하다.      


감자 품종을 무려 350종이나 보존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라는 점도 특기할 만 하다. 하지만 시장에는 겨우 14종만 출시된다고 하니, 나머지 품종은 각 지역에서 생산-소비되고 있는 모양이다. 또 하나, 만약 당신이 생물 공부에 심취해 저 갈라파고스 제도를 탐사하고자 한다면, 에콰도르 영토로 입국해야만 한다. 그 섬들은 에콰도르의 영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2008년의 헌법 개정이다. 2008년 에콰도르는 ‘수막 카우사이(Sumak Kawsay, 충만한 삶, 온전한 삶, 좋은 삶)’를 중심 원리로 삼는, 자연의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세계 최초의 헌법을 제정한다. 케추아 어로 수막(Sumak)은 ‘충만한, 온전한, 좋은’을, 카우사이(Kawsay)는 ‘삶, 삶의 방식’을 뜻한다. 2008년 당시 새 헌법을 추진한 정당은 ‘PAIS 동맹(Alliance)’으로 이 정당의 정치적 색깔은 민주적 사회주의 계열에 속한다.       


수막 카우사이(스페인어로는 부엔 비브르Buen Vivir)는 케추아 족의 전통적 우주관에서 나온 개념이다. NGO 파차마마 동맹(Pachamama Alliance) 웹사이트 설명에 따르면, ‘수막 카우사이’는 “우리 자신, 다른 공동체들, 그리고 자연과 조화로움을 유지하는 삶”이다. (www.pachamama.org/sumak-kawsay) 즉, 이런 조화로움을 유지하는 삶만이 그 삶의 의미가 충만히 충족되는, 바람직한 삶이라는 생각이 ‘수막 카우사이’라는 단어에 응축되어 있다. 특히 “자연과의 조화”라는 생각은 어머니 자연(Pachamama)을 소중히 여김이라는 생각으로 표현되곤 했다.      


수막 카우사이라는 단어는 케추아 어이지만, 에콰도르의 많은 토착민들은 수막 카우사이라는 삶의 방식(에토스, 윤리 원칙)을 고집해왔다. 예컨대 “아추아(Achuar) 부족, 키츠와(Kichwa) 부족은 재생과 재성장을 진흥하는 방식으로 [자연의] 자원을 사용”해왔다. 이들은 수막 카우사이라는 대원칙을 고수하며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보존하는가 하면” 미래 세대들에게도 중요할 “환경을 보호”하고 있다. (www.pachamama.org/sumak-kawsay) 생태적 지속가능성의 원칙이 이미 에콰도르 토착민들의 윤리 원칙에 오래도록 구현되어 있었던 셈이다.       


수막 카우사이를 중시하는 우주관은 자연과 사회를 양분해서 인식하지 않는다. 즉, 수막 카우사이라는 개념은, 인간 공동체의 이익 증진이라는 주요과제와 자연의 보호라는 종속과제라는 식으로 두 과제를 서열화하거나 이분하지 않는다. 이 두 과제가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이 수막 카우사이라는 개념의 중심 생각임을 이해해야만 한다. 즉, 이 개념 안에 담겨 있는 ‘어머니 자연의 보호 없이는 공동체(사회)의 보호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야생동물의 세계를 종속화함으로 인해 초래된 ‘코로나 19’ 판데믹이라는 거대 비극은 우리에게 같은 생각을 주문하고 있지 않은가.       


    

■ 지나친 이상주의 아닐까?


‘자연 보호야 물론 바람직한 것이지만, 인간의 이익이 자연의 이익보다 우선’이라는 인간중심주의적 생각에 경도된 이들은 ‘수막 카우사이’나 ‘자연의 권리’ 같은 새로운 원칙을 한가한 이상주의로 폄훼할지 모른다. 어쩌면, 제국적 생활양식에 길들여진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해 이런 폄훼에 쉽게 동참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2008년 헌법에 어머니 자연의 권리를 최초로 명기한 에콰도르 정부이지만, 헌법 개정 과정에서 토착민들과 정부 사이에는 문구를 둘러싼 심각한 갈등이 있었고, 헌법 개정 이후에도 에콰도르 정부는 새 헌법과 모순되는 경제 개발 정책을 추진해서 갈등의 폭을 증대시키기도 했다. 2008년 제정된 새 헌법의 문구는 한낱 이상주의적인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힘을 얻는 이유다.     

 

그러나 2008년 마련된 에콰도르 헌법과 그 정신은,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에콰도르 외 모든 국가들에게 (에콰도르와 유사한 법체계를 정비한 볼리비아는 예외가 될 것이다.) 선도적인 법적 혁명의 사례로 인식되어야 한다. 에콰도르 정부가 보인 오류는 반면교사로 삼으면 그뿐이다.      


그뿐 아니라 ‘수막 카우사이’라는 이들의 윤리 원칙은 인간의 행복과 복된 삶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에게 다시 생각해볼 것을 요청한다. 왜 적도에 걸쳐 있는 저 남미의 소국에서는 “어머니 자연과의 조화”를 잃지 않는 삶을 “충만한 삶”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왜 그들은 어머니 자연을 함부로 파괴하는 행위가 자기 삶의 충만함을, 자기 부족의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훼손한다고 느꼈던 걸까? 이들의 이러한 생각을 이해하려면, 이들의 우주관을 이해해야만 한다. 토마스 베리(Thomas Berry)는 자신의 마지막 저작 『황혼의 사색』에서 우주와 자연 만물 사이에 존재하는 우정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모든 어린이들이 자연 만물 간 우정의 관계를 경험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구 곳곳에 존재하는 자연과의 동반 관계, 동반 감각 없이는, 그 어떤 사람도 “결코 참된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다”고 쓰고 있다. 참된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것은, 자기의 가능성을 충만히(충분히) 자기의 실제로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아닐까. 자연의 권리에 관련된 법의 혁명은 우주관의 혁명이 이끌어야 하며, 에콰도르의 사례 역시 이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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