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벌백계(一罰百戒)는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교육 혁신 지옥 6

by cusp

우리나라의 사자성어 중에 일벌백계(一罰百戒)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일벌백계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한 사람에게 벌을 주어 백 사람에게 경계함'이라는 의미를 지닌 용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벌백계는 처벌의 파급 효과를 강조하는 용어입니다. 즉, 문제 행동을 하거나 규칙을 위반한 어떤 사람을 처벌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문제 행동을 하거나 규칙을 위반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 처벌의 본질적인 기능입니다. 어떤 특정한 누군가만 문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에 속한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문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고, 조직에 속한 어떤 사람이 마치 전제 군주처럼 마음대로 규칙을 만들고 본인은 그 규칙을 위반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규칙은 구성원들에게 서로 피해를 주지 않고 조직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약속과 합의를 담고 있으며 이러한 규칙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조직, 사회, 공동체의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해 처벌이 일벌백계라는 사자성어가 의미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처벌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처벌의 존재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죠.


국가 단위의 관점에서 보면, 대중들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 국민을 대표하여 국가와 관련한 중요한 정치적 업무를 수행하는 정치인, 문제 행위의 정도가 심하여 사회적으로 큰 공분을 야기하는 흉악 범죄자 등의 경우에는 이들이 문제 행동을 했을 때 어떠한 문제 행동을 했는지, 이러한 문제 행동을 수사하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문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어떠한 진술을 하였는지, 수사 및 재판 결과 어떠한 처벌 및 조치를 받았는지 등이 언론과 뉴스를 통해 상세하게 공개됩니다. 이러한 사항들을 공개해도 논란이나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고, 이러한 사항들을 공개하는 것이 국가의 공익에 부합하며, 이들의 문제 행동이 적나라하게 공개되어 도덕적 비판을 받는 것이 그 문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 단위에서는 이처럼 일벌백계가 행해지는 경우가 있지만, 학교 단위에서는 전혀 이러한 일벌백계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일벌백계라고 하면, 보통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문제 행동을 한 학생을 공개적으로 혼내는 것, 어떤 학생이 문제 행동을 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다른 학생들에게 알리면서 너희들은 그러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훈계하는 것 등을 가리킵니다. 저는 학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이러한 일벌백계가 문제 행동을 한 모든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경우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 현장에서 이러한 일벌백계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벌백계가 학생들의 인권을 크게 침해한다고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도 이러한 의견에 일부 동의합니다. 일벌백계가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수치심을 줄 수 있고,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시기에 학생들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을 공개적으로 훈계하고 혼내고 처벌하는 일벌백계는 문제 행동을 한 학생의 큰 반항을 야기할 가능성이 큽니다. 자기가 한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고 교사에게 불만이 가득 품고 반항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혼나는 것을 매우 창피하게 여겨 자기 잘못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감정적으로 반항하는 학생들이 있죠. 학교 현장에서의 일벌백계가 야기할 수 있는 이러한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지도를 위해 일벌백계가 필요한 경우가 반드시 있으며 따라서 일벌백계가 '제한적'으로 허용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직장을 다니면서 업무를 수행하다가 가벼운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일벌백계 차원에서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직장 상사에게 크게 혼난다면 매우 기분이 불쾌하고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크게 혼내는 것이 이 직장의 공익에 부합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직장에서 매우 큰 잘못을 했거나, 참작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의도가 매우 불순한 잘못을 했거나, 회사의 이익이나 회사 구성원들의 권리를 크게 침해하는 잘못에 대해서는 일벌백계의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혼내거나 훈계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악한 행동은 선한 행동보다 전염성이 훨씬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일정 정도 이상의 교육을 받은 성인들이므로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에 대한 개념을 충분히 갖고 있으며, 촉법소년도 아니므로 엄격한 법의 적용을 받으며, 직장에 다니면서 자기의 생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악한 행동의 강한 전염성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습니다. 따라서 일벌백계의 필요성이 높지 않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다릅니다. 초등학생, 중학생보다 고등학생이 훨씬 더 그 정도가 덜하긴 하지만, 아직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에 대한 개념을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하며, 만 14세 이전까지는 촉법소년이므로 악한 행동을 훨씬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고 14세 이후라도 미성년자이므로 법적 처분을 엄격하고 강하게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으며, 부모님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생활하므로 자기의 문제 행동에 대한 대가와 책임을 자기가 온전하게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악한 행동의 전염성은 성인보다 학생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이러한 악한 행동의 전염성을 막기 위해서 일벌백계가 제한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학교 현장에서 어떤 교사가 일벌백계 차원에서의 지도와 훈계를 하면 학생이 반항하거나(보통 일벌백계가 필요할 정도의 문제 행동을 한 학생이라면 교사를 존중할 줄 모르고 반항심이 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학부모가 자기 자식의 인권을 침해했다며 민원을 제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현재 학교 현장에서는 일벌백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항상 교사들이 문제 행동을 한 학생들을 따로 불러서 지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지도 방식이 이미 높은 악한 행동의 전염성을 더 높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 어떤 학생들이 문제 행동을 했을 때 거의 모든 교사들이 그 학생을 따로 불러서 지도하는 방식으로 대처합니다. 제가 근무했던 대부분의 학교들의 관리자들도 학생을 지도하거나 혼낼 때는 교실이나 복도가 아니라 교무실로 따로 불러서 지도하고, 웬만하면 소리를 지르면서 지도하지 말라고 교사들에게 공지했습니다. 문제 행동을 한 학생이 교사에게 왜, 무엇을 잘못해서 지도받고 있는지 다른 학생들이 알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겠죠. 물론 교사들과 관리자들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의 민원을 최소화하고 자기 직업의 안전을 지키려는 의도에서 이렇게 대처하는 것이겠지만, 일벌백계를 죄악시하고 과도하게 경계하는 학교 현장의 이러한 모습은 교육받는 학생들의 인성을 좀먹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반드시 일벌백계가 제한적으로 필요한데, 그러한 이유 몇 가지를 제시해 보겠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일벌백계가 제한적으로 필요한 첫 번째 이유는 학생이 수업 시간에 공개적으로 문제 행동을 하는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학교 현장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이 수많은 문제 행동을 만들어내는데, 그러한 문제 행동 중에는 수업 시간이 아니라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일어나는 행동도 있고, 공개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한 행동들도 있습니다. 이런 행동들은 교사가 없는 곳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다른 학생들이 모두 지켜보는 상황에서 일어난 문제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일벌백계를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고 그 학생을 따로 불러서 지도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 발생하는 공개적인 문제 행동은 대부분 일벌백계가 필요합니다. 수업 시간은 학생들이 교사의 내용 설명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 시간이고, 따라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정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업 시간은 제한된 공간 안에 학생들이 모여 있는 상황입니다. 즉, 수업 시간은 학생들이 교실이라는 공간 안에 조용하게 모여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떤 학생이 문제 행동을 한다면 그 문제 행동을 주변에 있는 다른 학생들이 인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수업 시간에 공개적으로 부적절한 문제 행동을 했을 때 이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지도하거나 훈계하지 않고 따로 불러서 지도한다면 문제 행동을 지켜본 다른 학생들이 그 문제 행동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주변 학생들뿐만 아니라 문제 행동을 한 학생 또한 수업 시간에 했던 문제 행동에 대한 일벌백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기가 했던 행동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어린 학생들이라도 대부분 처벌의 정도 혹은 수준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문제 행동을 했을 때 교사가 따로 불러서 지도하려고 하면 일벌백계를 할 때보다 자기의 문제 행동을 가벼운 것으로 인지하고,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그 학생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벌백계의 방식으로 지도하면 자기의 문제 행동을 가볍지 않은 것으로 인지합니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이루어지는 문제 행동은 대부분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일벌백계가 이루어져야 할 수준의 행동입니다. 교사는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수업 시간에 수업을 자기의 역량껏 구성하고 진행할 재량권을 지니며, 수업 시간에 발생하는 문제 행동은 이러한 교사의 재량권을 침해하는 것이자 옆에서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행동이므로, 현재 지도나 처벌이 전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학교 현장마저도 수업 시간에 있었던 문제 행동은 다른 시간이나 장소에서 발생한 문제 행동보다 더 강하게 조치하고 있습니다. 수업 시간은 학생들에게 다른 시간보다 더 강한 규율과 통제가 요구되는 시간이며, 주변 학생들이 문제 행동을 목격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엄격하고 강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시 문제 행동에 존재하는 악이 다른 학생들에게 쉽게 전염될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언급하는 수업 시간에 발생하는 문제 행동이라는 것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끼리 잠깐 수업과 관련 없는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책에 낙서를 하는 등의 사소한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소한 행동에 대해서는 가볍게 한 번 지적하고 넘어가는 것이 적절합니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정도가 심한 욕설을 사용하거나, 수업 시간에 언급된 특정 단어를 변형해서 야한 이야기를 하거나, 교사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수업이 진행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소리로 떠들거나, 지속적으로 물건을 던지면서 장난을 함으로써 수업 분위기를 크게 해치는 등 교권과 다른 친구들의 수업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여러 행동들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일벌백계를 해야 문제 행동을 한 학생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다른 학생들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학생이 수업 시간에 공개적으로 매우 큰 문제 행동을 해도 이를 일벌백계하고 공개적으로 훈계 및 지도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교사들이 많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교권이 바닥에 있고, 학생이 문제 행동을 해도 교사가 실질적으로 조치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는 제도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겠죠.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들도 자기가 수업 시간에 어떤 문제 행동을 해도 자기를 제대로 조치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공개적으로 문제 행동을 하는 빈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있던 학교에서는 교사가 앞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몇몇 여학생들이 책상을 원탁 모형으로 만들어서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정도로 떠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학생들은 아무리 따로 불러서 지도해도 말을 듣지 않을뿐더러, 교사가 수업 시간 중에 교실 안에서 공개적으로 지도하면 교사에게 욕설하고 반항기를 드러내거나 지도 교사를 교육청에 인권 침해로 신고하겠다며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런 강도 및 수준의 문제 행동이 수업 시간에 매우 드물게 발생할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뉴스에 보도되는 교권 침해 사건이 빙산의 일각일 뿐 이와 비슷한 일들이 전국에 있는 곳곳의 학교 현장에서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위에 제시한 사례의 학생들과 같은 극히 몰상식한 인성을 가진 학생들이 생기는 이유는 극히 낮은 교권, 학생을 제대로 지도하고 처벌하지 못하게 하는 법과 제도, 이로 인해 교사를 전혀 존중하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교사를 교육청에 신고해도 그 교사에게 피해를 줄 수 있고 그 교사를 굴복시킬 수 있다는 인식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 일벌백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의 인성을 교정할 수 없다면, 그 학생이 지니고 있는 악이 주변 학생들에게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수업 시간에 공개적으로 큰 문제 행동을 한 경우에는 일벌백계가 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학교 현장에서 일벌백계가 제한적으로 필요한 두 번째 이유는 꼭 수업 시간에 발생한 문제 행동이 아니더라도 학생이 일으킨 문제 행동의 강도와 지속성이 높은 경우 이러한 행동의 전염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학생들은 매우 많고, 그 문제 행동의 종류도 매우 다양합니다. 학교에서 직접 근무해 보니 이렇게 다양한 양과 질(?)의 문제 행동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일으키는 여러 문제 행동들 중에서도 너무나 악질이고 문제 행동을 일으킨 학생의 인성이나 정신 상태가 심각하게 의심되는 문제 행동들이 있습니다. 사실 문제 행동의 강도와 지속성을 측정하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지닌 일반인들이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그 강도와 지속성이 지극히 높은 문제 행동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철저한 일벌백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문제 행동에 대한 일벌백계가 없다면 학생들이 지켜야 하는 학교 규칙 체계가 무너지고, 학생들을 통제하고 교육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교사로서의 권위도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왜 문제 행동의 강도와 지속성이 높을 때 일벌백계가 제한적으로 필요한지를 설명하기 위해 2가지 사례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학교에는 보통 학생들이 쓰는 화장실과 교사가 쓰는 화장실이 별도로 있습니다. 저는 어떤 학교에 새로 전근을 가게 되었을 때, 그 학교의 학생들이 괜찮은 학생들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는 가장 좋은 척도가 교사 화장실의 청결 상태라고 굳게 믿습니다. 학생들의 인성이 형편없고 지도나 통제가 통하지 않는 학교의 경우에는 학생들의 출입이 금지된 교사 화장실을 학생들이 무단으로 이용하여 교사 화장실이 매우 지저분한 상태가 됩니다. 반면 학생들의 인성이 훌륭하고 지도나 통제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학교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무단으로 교사 화장실을 거의 이용하지 않아 교사 화장실이 매우 청결한 상태로 유지됩니다. 저는 경력에 비해서 전근을 매우 많이 다닌 축에 속하는데, 그중에서도 교사 화장실의 상태가 매우 지저분한 학교가 있었습니다. 교사가 보지 않을 때 몰래 교사 화장실에 들어가 그곳을 더럽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8월 어느 날부터 교사 화장실에 있는 변기에 누가 대변을 가득 배설하고 그 위에 두루마리 휴지 한 통을 넣어서 일부러 변기를 막히게 하여 자기의 대변 냄새가 교사 화장실을 뒤덮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매일 아침 교사 화장실을 들어가면 변기가 이러한 상태가 되어 있어서 도저히 교사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학교에는 학교에 있는 화장실을 청소하는 시설미화원이 있는데, 대부분 할머니라고 불리는 나이에 가까운 여성 분들이 학교에서 시설미화원으로 근무하십니다. 어느 학교를 가든 학생들이 자기 집의 화장실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학교 화장실을 더럽게 사용하거나 휴지에 물을 묻혀 벽에 던지는 장난을 치는 등의 경우가 많아 항상 학교에 근무하는 시설미화원 분들은 불만을 많이 이야기하시고 학교에서 많이 고생하십니다. 안 그래도 더럽고 힘든 일을 하시는 분들인데 어떤 학생이 지속적으로 대변을 배설하고 일부러 대량의 휴지를 변기에 넣어 변기를 막히게 하니 더 스트레스를 받으시고 이러한 행동을 한 학생을 꼭 잡아서 다시는 이러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교사들과 관리자들을 붙잡고 이야기하셨습니다. 하지만 다른 교사들과 관리자들은 어떤 학생이 이런 짓을 했을지 궁금해하고 불쾌해하면서도 이 일을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였습니다. 아마 이러한 문제 행동을 한 학생을 잡아도 엄격하고 강한 처벌을 내리기 어렵고 화장실이 민감한 공간인 만큼 오히려 나서서 잡았을 때 그 학생이나 그 학생의 부모가 민원을 제기할 것을 우려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민원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중요한가요? 게다가 문제 행동을 한 학생은 학생 화장실도 아닌 교사 화장실에 그러한 더러운 행동을 할 정도로 대담했습니다. 그 학생의 이러한 심각한 문제 행동은 1달 반 동안 이어졌습니다. 당시 교사 화장실 앞에 CCTV가 있었기 때문에 저는 이 CCTV 녹화 영상을 뒤져서 빨리 범인을 찾아내어 그 학생을 강력하게 처벌 및 조치하고 시설미화원 분의 고통을 덜어드려야 한다고 관리자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관리자는 제가 그렇게 이야기할 때마다 '그놈 잡아야지~'라는 말을 하며 동조했지만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고, 제가 너무 화가 나서 CCTV 녹화 영상을 뒤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3번째 했을 때에야 같이 CCTV 영상을 확인해 보자고 했습니다. CCTV 영상을 확인해 보니 매일 오전 8시 30분에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채로 교사들의 눈치를 슬슬 보며 교사 화장실에 들어가서 15분 정도 있다가 나오는 학생이 눈에 띄었고, 그 학생 외에는 오전에 교사 화장실을 들어가는 학생이 거의 없거나,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금방 나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범인을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CCTV 영상과 범인 학생에 대한 정보를 학생부에게 전달했고, 학생부에서 그 학생의 문제 행동에 대한 일을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몇 시간 후에 학생부장이 그 문제 행동을 한 학생을 불러서 1달 반 동안 교사 화장실에 대변을 배설하고 두루마리 휴지 한 통을 일부러 변기에 넣어 변기를 막히게 하였는지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 학생은 자기가 한 일이 절대 아니라고 잡아떼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부장이 증거 동영상을 제시하자 학생은 자기가 한 짓임을 인정했습니다. 학생부장이 학생에게 왜 이러한 행동을 했냐고 물어보았는데, 그 학생은 자기가 그러한 나쁜 행동을 하겠다는 의도를 품은 적이 없으며,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행동을 한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학생의 변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달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거의 매일 꾸준히, 악한 의도가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을 해놓고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행동을 했다는 말을 하는 이 썩어빠진 학생이 강하고 엄격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지만 학생부장이 그 학생에게 했던 대답은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였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속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학생부장이 왜 이렇게 대처했을까요?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일까요? 아마 학생을 강하고 엄격하게 처벌하고 싶어도 교권 자체가 바닥이고 문제 학생을 제대로 조치하거나 처벌할 수 없는 우리나라 교육 현장의 현실을 고려하여 자기의 직업을 안전하게 지키고 피곤한 민원을 받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겠죠. 이 학생을 강하고 엄격하게 처벌하고자 하면 학생들을 포함한 학교 구성원들에게 이 일이 알려질 가능성이 높고, 인권 침해라는 이유로 민원을 받기 싫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학생들에게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대응하며 온건하게 대하는 것은 학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지도할 교육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사가 교육적 책임을 다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학생들을 강하고 엄격하게 처벌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교사에게 부여하고, 강도와 지속성이 지극히 심한 이러한 문제 행동에 대해서 일벌백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행동에 대해서 일벌백계하면 그 학생이 '똥쟁이'라고 놀림받거나 다른 학생들이 그 학생을 피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그 학생이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할 수 없을 텐데 그건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반박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실제로 제 주변에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반박을 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1달 반 동안 그 대변과 휴지를 계속 치워야 했던 시설미화원 분과 그 냄새나는 교사 화장실을 불쾌하게 이용해야 했던 교사들의 인권은 그 문제 학생의 인권보다 뒤떨어지는 것인가요? 왜 피해자의 인권보다 가해자의 인권이 더 존중받아야 하나요? 단순히 가해자의 수와 피해자의 수만 따져도 피해자의 수가 더 많은데 도대체 가해자의 인권이 더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결국 그 학생에게는 어떠한 처벌도 부과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교사들이 그 문제 행동을 한 학생의 문제 행동이 소문나면 그 학생이 똥쟁이라고 놀림받고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우려와는 정반대로, 그 학생은 그런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은 것을 가까운 친구들에게 무용담처럼 말하고 다녔으며, 이후 몇몇 학생들이 교사 화장실이 아니라 학생 화장실에 똑같은 행동을 해 놓았습니다. 어떠한 처벌도 부과되지 않으니 그 행동의 악한 요소가 금방 전염되어 버린 것이죠. 강도와 지속성이 극심한 문제 행동의 경우에는 일벌백계가 반드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낮은 교권, 엄격한 처벌을 방해하는 법과 제도, 그리고 이로 인한 교사들의 물러터진 소극적 대처로 인해 이 심각한 문제 행동이 주변 학생들에게 전염되어 버렸고 시설미화원 분께서는 더 이상 이 학교에서 일할 수 없다고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화장실에서 발생한 일이고 대변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일벌백계하기에는 인권 침해의 요소가 있다는 말은 너무나 크게 틀렸습니다. 강도와 지속성이 극심한 문제 행동에는 분명히 매우 악한 의도가 담겨 있고, 이를 일벌백계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학교의 지도 체계가 부실함을 빠르게 눈치채어 강도와 지속성이 극심한 그 문제 행동을 모방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목격했던 한 가지 사례를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위에 언급했던 교사 화장실 사례와 동일한 학교에서 겪었던 일입니다. 워낙 학생들의 질이 나쁘기로 유명했던 학교인데, 그 지역의 대형 병원에서 근무하는 정신과 의사가 약물 중독 예방 교육을 하러 제가 근무했던 학교에 방문했습니다. 전교생을 체육관에 모아 앉혀 놓고 정신과 의사가 앞에서 강의를 하는 방식으로 교육이 진행되었는데, 교육 예정 시간이 10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전혀 조용히 하려는 기색이 없이 큰 소리로 떠들고 장난을 쳐서 교육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교사들이 아무리 지도해도 학생들은 조용히 하지 않았고, 교육 진행을 맡은 정신과 의사는 "이 상황에서 교육을 진행해도 되는 거예요?"라고 말하며 학생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였지만, 결국 1시간 내내 학생들은 조용히 하지 않고 계속 떠들면서 장난을 쳤고 정신과 의사는 "미안해서 빨리 교육을 끝내줬다."라고 말하며 쓸쓸히 체육관을 나갔습니다. 그 정신과 의사가 과연 이 학생들의 정신 상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할 만큼 학생들의 교육받는 태도는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남은 시간에 결국 그나마 그 학교에서 학생 지도를 적극적으로 하는 편인 한 선생님께서 마이크를 잡고 소리를 지르며 "내가 너희들 때문에 이 학교의 교사라는 것이 창피하다.", "인간적으로 너무한 것 아니냐." 등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런 인성을 가진 애들에게는 저렇게 소리 지르는 것으로도 부족하다."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요즘 학교 현장에서 교사가 학생들을 소리 지르면서 혼내는 모습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 학생에 대한 아동학대라는 둥 인권 침해라는 둥 현실에 맞지 않는 비난들이 가해지고 실제로 생각 없는 학부모들이 소리 지른 것에 대해 아동학대로 고소를 하는 등의 경우가 있어서 많은 교사들이 몸을 사리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선생님께서 한 행동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요즘 학교 현장에서 매우 보기 드문 행동이고 매우 강단 있고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죠.


문제 상황은 이다음에 발생했습니다. 그 선생님께서 소리 지르면서 전교생에게 훈계한 다음에, 이 학생들을 체육관 밖으로 나가서 교실로 들어가도록 여러 교사들이 지도했습니다. 그런데 몇몇 여학생들이 체육관 밖을 나가면서 "저 개XX는 왜 자꾸 소리를 지르고 XX이야. XX X같네."라고 말하는 등 온갖 쌍욕을 퍼부으면서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자기들의 태도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이 엄격하게 지도한 교사에 대해 저런 쌍욕을 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그 여학생들 주변에 학생들이 교실로 안전하게 이동하도록 지도하는 교사들이 많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교사들은 몇몇 여학생들이 소리 지른 선생님의 이름까지 언급하며 쌍욕을 퍼붓는 상황을 정확하게 듣고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들을 제지하지도 않았고 어떠한 지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광경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후에 그 주변에 있던 교사들의 말을 어쩌다 의도치 않게 엿듣게 되었는데, 교사에게 그런 학생들을 엄격하게 지도하고 처벌할 권리가 법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감정적으로 흥분해 있는 학생들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주변 학생들과 교사들이 모두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특정 교사에게 쌍욕을 퍼붓는 학생들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교사들이 대부분인 학교 현장의 현실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여학생들은 이전에도 수업 시간, 쉬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자기 감정이 절제가 되지 않을 때 교사들에게 자주 욕설을 해서 교사들이 그 학생들을 수업할 때 녹음기를 켜고 수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며, 욕설을 할 때마다 그 학생들을 따로 불러 온건하게 지도하고, 징계를 부과해도 지극히 약한 징계만 부과하여 행동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결국 교사에게 욕설을 하는 이 학교의 유행(?)이 금방 다른 학생들에게 전염되어 교권 침해가 이 학교에서는 당연한 일처럼 자주 발생했습니다. 이런 학생들을 엄격하게 처벌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그 엄격한 처벌의 수단으로 일벌백계를 활용할 수 있었다면 교권 침해가 이렇게 자주 발생했을까요?


학교 현장에서 일벌백계가 제한적으로 필요한 세 번째 이유는 학생이 어떤 문제 행동을 해서 이를 지도했을 때 말을 바꾸거나 잡아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들 중 거의 모든 학생들이 대체로 자기가 했던 문제 행동을 은폐하거나 축소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여러 학생들이 주변에 있는 상황이라고 하여 문제 행동을 한 학생의 문제 행동을 즉각적으로 지적하지 않고 교사가 따로 불러서 이야기하자고 한다면 그 사이에 학생은 자기의 문제 행동을 은폐하거나 축소하기 위한 변명 거리를 생각할 것이고, 몇 시간 혹은 며칠이 지나서 이야기한다면 그 학생은 문제 행동을 한 상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이 보통 교사들이 학생들을 따로 불러서 지도하는 공간인 교무실에서는 웬만하면 문제 행동을 하지 않으며, 문제 행동이 발생하는 공간은 다른 학생들이 있는 교실이나 복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 행동을 한 학생들을 따로 교무실로 불러서 지도하는 행동은 학생들이 자기의 문제 행동을 은폐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 핑계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줍니다. 따라서 이러한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제대로 교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즉각적인 지도가 필요하고, 이것이 불가피하게 일벌백계를 하는 모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사례를 하나 제시해 보겠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겪었던 일인데요. 제가 수업하는 어떤 반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학생이 있습니다. 수업하다가 갑자기 전혀 그럴듯하지 않은 맥락에서 자기 혼자 깔깔깔 웃어서 수업하는 교사와 주변에 있는 학생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고, 수업 시간에 너무 작은 목소리로 교사에게 질문하여 잘 들리지 않아서 더 큰 목소리로 질문해 줄 것을 여러 번 요구하면(여러 번 요구해도 계속 작은 목소리로 질문해서 계속 더 큰 소리로 질문해 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교사가 자기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고 주변 학생들이 떠들어서 자기 목소리가 안 들리는 것일 뿐이라며 버럭 화를 내고(애초에 버럭 화를 낼 목소리로 질문을 했으면 잘 들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겨우겨우 질문을 알아들었을 때에는 그 질문이 너무 말도 안 되는 내용이어서 답변할 수가 없는 질문이고, 성적이나 점수에 지나치게 민감하여 자기의 성적이 낮게 나오면 그 과목을 담당한 교사를 노골적으로 째려보는 등의 행동으로 인해 이 학생은 자기가 속한 학급에서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친구들이 그 학생을 무시하며 때로는 그 학생을 타깃으로 삼아 비아냥거리거나 놀릴 때도 있습니다. 이 학생은 제 수업 시간에도 주변 친구들에게 갑자기 버럭 화를 내는 등의 행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수업 시간에 이 학생의 행동을 즉각적이고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일벌백계스러운 지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러한 지도가 효율적이고 교육적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다른 학생들이 그 학생을 더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타깃으로 삼으려는 마음을 품는 것이 우려되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교사들도 저와 비슷하게 대처했더니 이 학생이 수업 시간에 버럭 화를 내는 빈도가 높아졌고, 주변에 있는 다른 학생들도 "나도 수업 시간에 버럭 화를 내도 되는 거 아냐?"라고 수군거렸습니다. 차라리 일벌백계를 할 걸이라는 후회스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에게 정신과 치료가 필요해 보였지만, 보통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모들이 자기의 자녀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 치료를 받지 않고, 그러한 증세를 보이는 학생들을 잘못 지도했다가 교사가 큰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러 교사들이 다들 그 학생을 두고 쉬쉬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학생이 속한 학급의 수업을 들어갔는데, 마침 2일 후에 그 학급에서 수행평가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수행평가 범위, 내용, 평가 기준에 대한 공지를 10일 전에 했고 수행평가를 준비하기 위해서 학생들이 학습해야 할 학습지의 양이 2장이었기 때문에 범위도 전혀 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학생이 교실 앞으로 불쑥 나와 저에게 "선생님, 수행평가 범위가 학습지 2장이 맞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이미 수업 시간에 여러 번 공지를 했고 학급 게시판에 별도로 수행평가 범위를 붙여 놓았음에도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의아했지만 저는 맞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학생이 "수행평가 범위가 진짜로 이 학습지 2장이 맞나요?"라고 다시 물어봤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황당한 질문에도 나름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자기 자리로 들어가면서 "아이씨..."라고 말하였고, 그 말을 앞에 앉아 있는 몇몇 학생들과 귀가 밝은 제가 명확하게 들었습니다. 이 학생이 다시는 이러한 언행을 하지 못하도록 효과적이고 엄격하게 지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그 행동을 지적하고 혼내는 것입니다. 즉, 공개적으로 일벌백계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학생을 일벌백계하는 것이 인권 침해라며 민원이 제기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 학생이 학급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저는 꾹 참고 수업 시간이 끝난 이후에 별도로 지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40분이 지나 수업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저는 그 학생을 교무실로 따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에게 제가 질문에 친절하게 답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씨..."라고 말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학생의 대답은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였습니다. 아마 이 학생은 자기가 그런 말을 한 다음에 40분 동안 자기의 문제 행동을 은폐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고, 그 고민 끝에 택한 방법이 잡아떼기였던 것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자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왜 나를 따로 불러서 지도하냐는 듯이 따지며 오히려 저에게 눈을 부라렸습니다. 아마 평소에 쓸데없이 자존심이 세고 자기 잘못을 인정한 적이 거의 없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자기의 문제 행동을 축소하고 은폐하기 위해서 이러한 전략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눈을 부라리지 말라고 했더니 그 학생은 "나는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대화하라고 배웠다."라고 우기며 계속해서 저에게 눈을 부라렸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학생에 대한 체벌이 제도적으로 허용된다면 강하게 체벌을 했을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저도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더 이상 이 학생과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학생에게 교실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학생은 자기 교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습니다. 그 학생을 다시 불러서 왜 한숨을 쉬었냐고 물어보았는데, 그 학생은 "나는 한숨을 쉰 적이 없고, 그냥 일상적으로 숨을 내쉬었을 뿐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학생이 보이는 무례하고 황당한 언행과 태도에 저도 감정이 폭발하여 그 학생의 담임선생님께 가서 이 학생이 보였던 태도와 언행을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그 학생은 계속 자기의 눈을 부라린 행동은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을 바라본 것일 뿐이고, 자기는 한숨을 쉬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셋이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 학생이 또 저에게 눈을 과하게 부라리거나 한숨을 쉬는 행동을 하여 결국에는 담임선생님께서도 그 학생의 태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따로 지도하셨습니다.


저는 이 학생의 불량한 태도와 언행을 생활기록부에 기록하고 징계를 부과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빙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교실에 있던 학생들에게 진술서를 받았습니다. 학생들은 진술서에서 그 학생이 "아이씨..."라고 말하는 것을 명확하게 들었으며, 왜 그 학생이 갑자기 저에게 그런 언행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진술했습니다. 저는 그날 제가 문제 행동을 한 학생에게 했던 배려를 매우 후회하고 있습니다. 제가 민원을 받든 신고를 받든 상관없이 그 학생의 언행을 그 자리에서 강하게 질책하고 지도했으면 제가 그런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학생이 다른 학생들의 타깃이 되는 것이 우려되어 그 학생에게 베푼 배려가 이런 식으로 돌아올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학생은 여전히 반성의 기미가 없이 저에게 "선생님, 제가 했던 행동들을 진짜 생활기록부에 적으실 거예요?"라고 물어보는 뻔뻔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제가 즉각적이고 공개적으로 이 학생의 문제 행동을 일벌백계했다면 주변에 있는 학생들은 그러한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학생의 인권을 과하게 중시하는 학교 분위기 및 제도와 그 학생이 학급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학생의 악한 행동은 앞으로 이를 목격한 친구들에게 전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공개적이고 즉각적으로 그 학생의 문제 행동을 지적했으면 이 학생이 자기의 잘못된 언행을 잡아떼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만약 이 학생이 잡아떼려고 해도 주변 학생들이 자기들도 들었다며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 학생이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실제로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의 거의 대부분은 자기가 했던 문제 행동을 그대로 고백하고 반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어떤 학생이 문제 행동을 한 다음에 자기가 했던 문제 행동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실토할 때 이 학생의 인성이 훌륭한 것 같다고 감탄할 정도입니다. 학교는 학생과 교사를 포함하여 다수의 구성원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어떤 학생이 문제 행동을 하면 그 행동에 대한 목격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목격자가 함께 있는 상황에서는 거짓말을 과감하게 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재 학교 현장에서 학생의 잘못이 알려지는 것을 막음으로써 학생이 상처받는 것을 방지하고 학생의 인권을 최대한 배려하기 위해 일벌백계하는 것을 죄악시하고 학생들을 따로 불러서 단독으로 지도하는 이러한 트렌드는 학생들이 자기 잘못을 그대로 실토하지 않고 잡아떼거나 거짓말하도록 유도하고, 자기 잘못을 잘못이 아닌 것처럼 포장하는 능력만을 증진하고, 즉각적인 지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여 학생들이 핑곗거리를 생각할 시간을 주게 만듭니다.


저는 올해 3월에 중학교 학급의 담임을 맡으면서 어떤 학부모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뜬금없이 그 학부모는 저에게 "우리 아이를 다른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지적하거나 혼내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3월 초였기 때문에 저는 그 학생을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지적하거나 혼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학부모는 자기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담임교사가 자기 아이를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노골적으로 혼낸 적이 있어서 자기 아이가 그 이후로 위축되고 상처를 받았으며, 자기가 민원을 제기하여 결국에는 담임교사의 사과를 받아냈다는 것을 무용담처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더군요. 저는 "학생을 공개적으로 혼낼지 말지는 아이가 잘못한 정도, 잘못했을 당시의 상황 등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라고만 대답했습니다. 그 학부모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대답해주지 않으니 하교하여 집으로 온 아이에게 "너네 담임선생님이 너무 직설적이고 까다로운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엄마가 저에 대해 평가를 했다며 아이가 그대로 눈치 없이 전달해 주더군요). 아마 실제로는 더 과격하게 이야기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학생은 자기 머리에 생각나는 것을 눈치 없이 아무렇게나 이야기하는 성향이 있어서 선생님들로부터 이미지가 좋지 않고 주변 학생들로부터도 많은 비난을 받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다가 수업 시간에 갑자기 이 학생이 뜬금없이 저에게 "선생님은 꼰대예요."라는 황당한 발언을 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다른 학생들이 다 들을 수 있는 수업 시간에 발생한 상황이고, 교사에 대한 발언으로는 매우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업 시간 중에 그 학생을 공개적으로 지도하고 훈계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그 학생이 눈치 없는 발언을 해도 학부모가 워낙 강경하고 드센 사람임을 다른 교사들도 인지하고 있어서 그 학생의 언행을 감히 지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학생에게 일벌백계 스타일의 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학부모의 민원이 우려되고 법과 제도가 그러한 지도를 지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이후로 이 학생은 수업 시간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 말이 수업 시간에 어울리는 적절한 말인지, 교사와 다른 학생들이 듣기에 불편하지 않은 말인지를 고민하고 곱씹으면서 아무 말이나 하고 싶은 욕심을 절제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학생 때문에 수업 시간에 불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이야기하는 선생님들도 없어졌습니다. 1학기에는 자기의 눈치 없고 막말하는 성향을 감싸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들과만 어울렸고, 다른 학생들은 그 학생이 눈치가 없다며 비난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2학기에는 자기를 비난했던 학생들과도 아주 친밀하지는 않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가깝게 어울리고 학급 공동체와 조화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학생 이외의 학급 학생들도 일벌백계 스타일의 지도를 몇 번 활용했더니 자기가 했던 이전의 문제 행동들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주변에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이 있으면 교사가 별도로 지도하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그 행동은 잘못됐다.", "앞으로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하며 자발적으로 교정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벌백계 스타일의 지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학부모들이나 전문가들은 지도받는 학생의 인권과 학생이 받을 상처에만 편파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학생의 문제 행동을 제대로 지도하고 교정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학생들이 그러한 문제 행동을 학습하고 습관화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더 큰 상처가 되고 인권 침해가 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문제 행동을 제대로 지도하고 교정하기 위해 학교 현장에서 일벌백계 스타일의 지도가 필요한 상황이 반드시 있으며, 따라서 일벌백계 스타일의 지도는 제한적으로 허용될 필요가 있고, 이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기 위한 법과 제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일벌백계 스타일의 지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학부모들이나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받는 상처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부당하게 받은 상처는 부정적인 것이 맞고, 교사는 그러한 상처를 절대 학생에게 주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상처는 불가피한 것이고, 상처가 굳으면 딱지가 되듯이 정당한 지도로 인해 학생이 받게 될 충격이나 상처는 학생이 자기의 문제 행동을 교정하고 앞으로 문제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 학부모들이 저의 지도에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서 저에게 전화를 하면서 항상 습관처럼 꺼내는 말이 "우리 아이의 마음은 알아주셨나요?"입니다. 마치 자기 아이는 학교에서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어떠한 상처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죠. 공개적인 일벌백계 스타일의 지도에 대한 과도한 부정적 인식, 아이가 학교에서 받을 상처에 대한 과도한 부정적 인식 등이 결합되어 현재 학교 현장은 문제 행동을 하는 정도가 심한 학생들의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일벌백계 스타일의 지도를 아예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학교를 포함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처벌 및 지도의 본질은 문제 행동을 한 당사자의 행동을 교정하는 것, 그리고 문제 행동을 한 당사자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모방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입니다. 이는 제가 창조한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라, 과거에 처벌 및 제재에 대한 이론을 체계적으로 주장했던 철학자들이 제시한 생각입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인 제레미 벤담이 그 대표적인 예시인데요. 제레미 벤담은 인간이 도덕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때 인간을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만들기 위해서 사회적 시인, 비난과 같은 사회적 여론이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를 벤담은 '도덕적 제재'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일벌백계 스타일의 지도를 통해 심각한 문제 행동을 한 당사자에게 주어지는 다른 학생들로부터의 비난이 충분히 문제 행동을 한 학생의 행동을 교정하는 데 충분히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벤담이 주장하는 도덕적 제재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문제 행동을 하면 나도 이러한 비난을 받을 수 있으니 문제 행동을 하면 안 되겠다."라는 의식을 확실하게 심어줌으로써 처벌 및 지도의 본질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를 계승 및 변형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제레미 벤담이 주장한 도덕적 제재를 포함한 여러 제재들을 통해 인간에게 양심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의무감을 자라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일벌백계 스타일의 지도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상처만 준다는 편파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또한 문제 행동을 한 학생이 지도받음으로써 받게 될 상처에 공감할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멀쩡한 학생들이 받게 될 부정적인 영향에 공감하고, 몇몇 상황에서 일벌백계 스타일의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므로 그러한 지도가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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