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혁신 지옥 8
과거에는 길을 지나가면 일괄적으로 교복을 입고 통학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등교하기 위해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가 항상 넥타이를 자주 까먹고 착용하지 않아서 다시 집으로 돌아간 다음에 넥타이를 착용하고 등교했더니 이미 등교 시간이 지났거나, 지각할 것을 우려하여 어쩔 수 없이 넥타이를 착용하지 않은 채로 등교했다가 교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복장 불량으로 적발되어 지도를 받고 체벌을 받았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등교 시간에 길을 지나가도 교복을 제대로 입은 학생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에서 학생의 복장 지도가 느슨해지고 있는 추세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학생들의 복장 지도를 느슨하게 혹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은 학생 인권을 존중하는 조치라고 이야기합니다. 교복 외에 학생들이 착용하는 액세서리, 학교 안에서 착용하는 신발의 종류, 학생들의 두발의 색상과 길이, 여학생들의 화장 상태 등의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도 요즘에는 거의 하지 않는 편입니다. 물론 제가 지금까지 열거했던 용의 복장 통제가 모두 반드시 필요하거나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학생 인권 존중을 명목으로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를 느슨하게 혹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학생을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이 학교의 목적이라는 관점에 비추어볼 때 적절한 것인지 살펴보고 성찰하며 잘못된 점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학생 인권만을 외치면서 생활지도를 대충 느슨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로 인해 제대로 지도받아 본 적이 없어 조금이라도 엄격하게 지도받으면 이에 대해서 반항하고 부적절한 감정을 표출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학교에서의 생활지도가 점점 어려워지고 적절한 인성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가 매우 느슨해지면서 과거에 비해 학교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요즘의 학교에서는 교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학생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어떤 옷을 입고 학교에서 생활하는 걸까요? 학생들이 학교에서 교복 대신에 입는 옷은 첫 번째 종류는 바로 생활복입니다. 우리나라 교복은 정장 스타일로 제작되어 교복을 입으면 활동하기 불편하고 오랫동안 입고 있으면 복통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교복을 착용함으로써 학생들이 느끼는 여러 불편함 때문에 요즘의 대부분의 학교는 생활복을 별도로 제작합니다. 편안한 착용감을 지니고 있고, 입었을 때 활동하기도 편한 방식으로 생활복을 제작하여 학생들이 교복 대신에 입을 수 있도록 한 것이죠. 만약 학교에서 별도의 생활복을 제작하지 않았다면 학교에서 체육복을 입고 있을 수 있도록 거의 대부분의 학교가 용의 복장에 대한 규정을 완화했습니다. 실제로 교복이 학생들에게 많은 불편함을 야기하기 때문에 저는 생활복 제도가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좋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교복 대신에 입는 두 번째 옷은 사복입니다. 과거에는 생활복 제도가 없어서 학생들이 계속 불편한 교복을 착용하고 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학교에서 사복을 착용하는 학생을 쉽게 찾기 어려웠습니다. 기껏해야 추운 겨울에 패딩 잠바를 덧입고 오는 정도였고, 교복을 제대로 입지 않은 상태에서 패딩 잠바만 덧입고 오면 크게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현재는 어떠한 교복도 착용하지 않고 완전히 사복을 입은 상태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불편함을 해소해 주기 위해서 교복을 대체할 수 있는 편한 옷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오히려 이전보다 학교에서 규정한 옷을 더 착용하지 않고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교복이 불편해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생활복이나 체육복을 제공했는데 왜 그 옷들보다 더 불편해 보이는 사복을 입고 오는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2가지 사항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학생들이 교복을 선호하지 않거나 교복을 입지 않는 주된 이유가 불편함 때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를 느슨하게 해주는 경향성이 학교 규칙을 준수하려는 학생들의 의식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복을 통해 자기 자신을 과시하고 뽐내려는 성향이 학교 규칙을 준수하려는 의식을 압도하면서 법, 도덕 등에서 요구하는 규칙을 준수하려는 의식까지 약화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복도 잘 입지 않고 생활복도 잘 입지 않으면서 학교의 용의 복장 규칙을 자유롭게 위반하는 학생들이 가뭄에 콩 나듯이 가끔 교복을 입고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학생들이 입고 있는 교복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학생들은 대부분 치마를 지나치게 짧게 줄이거나 바지의 통을 지나치게 줄여서 입고 옵니다. 안 그래도 학생들이 교복의 착용감을 불편하게 느낀다고 하는데, 치마를 짧게 줄이거나 바지의 통을 줄이면 교복을 입는 것이 당연히 더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학생들이 교복을 입지 않는 핵심적인 이유가 '불편함'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해 주는 차원에서 학교에서 용의 복장에 대한 규제를 느슨하게 하자는 주장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실제로 과거보다 용의 복장을 훨씬 더 느슨하게 규제하고 있는데, 과연 용의 복장에 대한 규제를 느슨하게 하는 것이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에 존재하는 용의 복장 규정을 잘 지키지 않는 학생들이 보여주는 외적 스타일을 한 번 살펴보세요. 대부분의 자유분방한 학생들이 한결같이 입술에 진한 틴트를 칠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몸매 선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타이트한 옷을 입고 다니고, 최대한 비싸 보이는 브랜드의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등 대체로 이 학생들은 일관된 패션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이 학생들이 자기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용의 복장 규정을 지키지 않는 걸로 보이시나요? 이 학생들은 전혀 개성 없이 서로 유사한 패션 스타일을 지향하면서 용의 복장 규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학생들이 용의 복장 규정을 지키지 않는 이유를 크게 2가지로 추측합니다. 첫 번째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과시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 보이고 싶은 '허영심'입니다.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몸매의 선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타이트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남학생들의 경우에는 자기의 단단한 몸이나 강인함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고 여학생들의 경우에는 자기의 성적 매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최대한 비싸 보이는 브랜드의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것은 자기 부모님의 경제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용의 복장 규정을 밥 먹듯이 위반하는 불량한 학생들을 상담해 보면 이 학생들이 용의 복장 규정을 자유롭게 위반하게 된 이유에는 불량한 친구에게 물들어서 그런 행동을 습관적으로 하게 되는 것도 있지만, 꽤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성적이나 교우 관계 등의 부분에서 열등감을 느끼고 그 열등감을 다른 방식으로 떨쳐내기 위해 외적 모습에 치중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열등감이 너무 깊고 따라서 그 어떤 친구들보다도 외적 모습이 더 뛰어나 보이고 싶으면 용의 복장 규정을 위반해야 하는 것이죠. 근대 유럽의 철학자이자 사회 계약론을 주장한 홉스와 루소는 이러한 허영심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한 철학자인데,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게 보이고자 하는 허영심으로 인해 인간이 전쟁 상태에 있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루소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의식하고 다른 인간들과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허영심을 갖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허영심이 인간들 사이의 평화를 깨뜨리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했습니다. 옛날의 철학자들도 이러한 허영심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 현장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성 존중'이라는 말도 안 되는 명목으로 방치하고 있습니다.
저도 학생들이 어느 정도 자기의 개성을 지나치지 않은 한계 내에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불량한 학생들이 용의 복장 규정을 밥 먹듯이 위반하는 이유는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부분 허영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학생들의 개성 표현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아무리 인정하더라도, 학교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이 자기 개성을 마음껏 자유분방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오는 곳이 아니라, 교육을 받고 수업을 들으러 오는 곳입니다. 따라서 교육을 받는 데 방해가 되거나 수업을 듣는 데 방해가 된다면 복장에 대해 통제를 하고 염색이나 액세서리 등도 금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용의 복장에 대한 규제를 느슨하게 하는 것이 아무리 학생들의 개성 표현을 존중하는 조치라고 해도, 염색, 액세서리, 자유로운 복장 등이 학생들의 주된 관심을 외모로 돌려 학습을 외면하게 만들고 학습보다 외모에 더 치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으며, 이는 학교를 설립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교육을 받게 하는 본질적인 목적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즉, 학생들의 개성 표현을 존중하기 위해서 교육, 학습, 수업을 소홀하게 생각하는 것이므로 지금의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용의 복장 규정을 지키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어른들이 지키라고 정해놓은 규칙을 지키고 싶지 않은 '반항심'입니다. 학교 규칙의 대부분은 학교라는 공동체 생활에 적합하도록 합리적인 수준에서 규정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학생들이 공동체 차원에서의 사고를 하지 못하고 개인 차원에서의 사고만 함으로써 자기가 지키고 싶은 규칙만 지키고 자기가 지키고 싶지 않거나 자기 성향에 맞지 않는 규칙은 지키지 않으면서 공동체의 질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 질서를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학교 규칙은 어떤 특정 학생에게만 규칙을 위반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지켜야 하는 규칙입니다. 결국 개인 차원의 사고만 하는 학생들은 자기가 지키고 싶지 않은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 때문에 반항심이 생기고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점점 규칙이 느슨해지고 처벌도 느슨해지면서 이 학생들의 반항심이 처벌로 이어져도 개인 차원에서 유리한 결과 혹은 그렇게 불리하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이 반항심을 표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결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다른 학생들은 학교 규칙에 순응하지만 나는 학교 규칙을 자유분방하게 위반할 수 있다는 우월감', '선생님들이나 어른들이 나를 감히 통제할 수 없다는 자만심'입니다. 불량한 학생들이 학교 규칙에 어긋나는 용의 복장으로 인해 교사에게 지도받으면서 교사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등 반항심을 표출한 후에 돌아서서 친한 친구들에게 "별 것도 아니면서~"와 같은 뉘앙스의 말을 뱉으면서 욕을 하고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는 모습을 학교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학교와 교사의 권위에 당당하게 반항할 수 있다는 우월감과 자만심, 즉 위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언급했던 '허영심'이 드러나는 것이죠. 제가 불량한 학생들이 용의 복장 규정을 포함한 학교 규칙을 잘 지키지 않는 이유를 허영심과 반항심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언급했지만, 반항심 또한 허영심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량한 학생들은 자기가 학교 규칙을 미련하게 지키고 있는 범생이들과 달리 학교와 교사의 권위를 업신여기고 학교 규칙을 어기면서 자기 이익을 이기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는 허영심을 지니고 있는 것이죠. 현재 우리나라 교육은 느슨한 생활지도와 통제를 통해서 이 허영심을 제한하지 못하고 오히려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의 허영심과 반항심을 극대화하는 이러한 현상이 반드시 학생들이나 교육 제도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비교육적이고 불합리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 원인 중에서 교사들의 직무 태만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의 인권만이 지나치게 존중받고 교권은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학교의 환경 속에서 교사들이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를 이전보다 훨씬 더 느슨하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학교 현장에서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와 생활지도를 하면서 느낀 것은, 교사들이 아예 통제와 지도를 놓아버렸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중학교는 고등학교보다 생활지도를 더 엄격하게 하는 편이기 때문에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사실 중학교에서도 이미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를 포기한 학교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아무리 생활지도보다 교과지도가 더 중시되는 환경이라도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를 거의 하지 않는 학교가 많습니다. 그런데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의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와 지도를 거의 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이 학교 규칙을 너무 가볍게 위반하고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러한 교사들의 태도가 매우 모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학생들의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와 지도를 강조하는 이유는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와 지도의 효과가 단순히 용의 복장을 바르게 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학교 규칙을 준수하는 습관과 성향을 기르는 효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학교 중에 학생들이 학교 규칙을 성실하게 지키고 생활지도가 잘 이루어지는 학교는 거의 없습니다. 반면, 항상 용의 복장 규칙을 준수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학습 수준이나 성적에 관계없이 출결 상태가 양호하고 학교생활도 성실하게 합니다.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와 지도가 적절히 이루어지고 학생들이 용의 복장에 대한 규칙을 성실하게 준수하는 학급은 대부분 사건사고 없이 학생들이 안정적이고 질서 있게 학교를 다닙니다. 이처럼 용의 복장 규칙을 지키는 것은 정당한 학교 규칙을 지키는 것의 첫걸음입니다. 그런데 현재 많은 교사들이 학교 규칙의 첫걸음마저 제대로 지도하지 않고 학생들이 학교 규칙을 제대로 성실하게 지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현재 많은 학교들이 학생들이 용의 복장에 대한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이를 넘어 학교 규칙을 매우 가볍게 여겨 밥먹듯이 어기는 아사리판이 된 것에 왜 교사들의 책임이 있는지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제가 이전에 근무했던 학교 중에는 제가 그 고등학교를 발령받았을 때 그 지역에서 우수한 수준의 학생들이 입학하여 좋은 평판을 얻었던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장이 바뀌면서 그 고등학교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지역의 불량한 학생들이 그 지역의 외부에 있는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는데, 특성화고등학교 중에는 그 학교에 불량한 학생들이 너무 많아 오히려 생활지도나 통제를 강하게 하는 학교들이 많습니다. 강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그 학교에 사건사고가 너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강하게 통제를 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이 특성화고등학교들이 일반고등학교에 비해서 특히 강하게 통제하는 것이 바로 용의 복장입니다. 그래서 특성화고등학교를 다니던 불량한 학생들이 외부 지역의 특성화고등학교로 등교하느라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도 귀찮은데 이러한 강한 통제까지 받으니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기가 사는 지역의 일반고등학교로 전학을 신청했습니다. 어느 일반고등학교도 이 불량한 학생들의 전학을 받아주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근무했던 학교의 바뀐 교장이 이 불량한 학생들의 전학을 모두 받아주었습니다. 갑자기 불량한 학생들이 특성화고등학교에서 대거 전학을 오게 되면서 학교의 분위기는 매우 나빠졌고, 전학을 온 불량한 학생들은 오자마자 교권 침해, 학교폭력 등을 포함하여 여러 심각한 수준의 사고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일반고등학교 교사들이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를 거의 하지 않고 생활지도도 엄격하게 하지 않으니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엄격한 통제와 생활지도로 인해 눌려 있던 성질들이 학교 이곳저곳에서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일반고등학교의 자유분방한 맛을 알아버린 이 학생들에게는 어떠한 생활지도도 먹히지 않았고, 학교 공원에는 이 학생들이 흡연한 이후에 버리고 간 담배꽁초가 가득 쌓였습니다. 그 학교에는 교사와 학생이 산책할 수 있는 육상 트랙이 있었는데, 어떤 선생님이 그 육상 트랙을 산책하다가 육상 트랙에 노골적으로 버려진 담배꽁초를 발견하고는 "고등학교는 중학교보다 이런 생활지도를 안 해도 돼서 너무 좋아~"라고 말했습니다. 담배꽁초를 발견했으면 학교 학생들의 규칙 준수가 미흡함을 지적하는 말을 해도 모자랄 지경인데, 고등학교에서는 중학교보다 흡연과 관련된 생활지도를 엄격하게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교사들의 생활지도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가볍고 느슨해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이 학교에 새로운 교감이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감은 학생들이 학교 규칙을 잘 지키는 특목고에서 근무하다가 제가 근무했던 학교로 발령을 받은 교감인데, 발령받자마자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전학 온 불량한 학생들의 용의 복장 상태와 학교생활 모습, 그리고 이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받아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복을 제대로 입지 않고 온갖 액세서리를 걸치면서 껄렁껄렁하며 교사의 생활지도에 반항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 교감은 아침 일찍 교문 지도를 나가서 학생들의 용의 복장 상태를 검사하였지만, 이것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놈의 학생 인권 존중 때문에 요즘에는 교문 지도가 학생들의 용의 복장 상태를 점검하는 차원이 아니라 학생들의 아침 등교를 밝게 맞이해 주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교감은 굳은 결심을 하고 수업 시간 중에 갑자기 학교에 있는 모든 교실과 교무실에 전체 방송을 했습니다. 교감은 전체 방송에서 이 학교의 학생들이 전혀 학교 규칙을 지키지 않고 교사들의 지도를 듣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를 엄격하게 할 것이며, 학교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학생들은 앞으로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학생들은 고성을 지르고 교사들 앞에서 교감 욕을 노골적으로 하면서 난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범죄자'라는 용어를 언급한 교감의 말이 지나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이 교감이 학교 구성원들 중 그 누구도 해결할 의지를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놀랐던 것은 바로 교사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 학교의 교사들은 하나같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발령받자마자 왜 이렇게 나대는 거야?", "좋은 학교에만 있다가 와서 일반고 현실을 모르네." 등과 같이 반응했습니다. 평소에는 학생들이 자신이 생활지도를 전혀 따르지 않아 화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불만을 호소했던 교사들이 정작 생활지도와 학교 규칙 준수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를 엄격히 하겠다는 교감의 발언에 비난과 조롱으로 반응한 것입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제대로 먹히지도 않을, 학생들이 우습게 바라볼 정도로 느슨한 생활지도를 하면서 학생들이 생활지도를 제대로 듣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그런데 정작 생활지도를 강하게 하려는 학교 구성원을 보면 이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교사들이 많습니다.
저도 생활지도를 강하게 하는 편에 속하는데, 생활지도를 강하게 하면 주변에 있는 교사들이 "젊을 때부터 그런 방식으로 하면 교사 생활 오래 못해~"라고 조언을 가장한 간섭을 한 적이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문제 행동을 한 학생들을 강하게 혼내고 있으면 자기들끼리 "저렇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저러다 민원 들어와서 우리까지 피해 입겠어~"라고 뒤에서 수군거린 적도 많습니다. 저는 생활지도 업무를 맡았을 때 이런 교사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를 엄격하게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제가 교직 경력이 길지 않은 저경력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가 무너지면 학교 규칙 체계가 무너지고 학생들이 학교 규칙을 준수하려는 습관을 가질 수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이 뭐 하러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통제하냐고 투덜거리거나 불만을 표시하고 거의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교사들이 몇 개월 후에 자기 반의 학생들이 용의 복장 규정을 전혀 지키지 않는다며 저에게 징계 절차를 진행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요즘 학생들이 용의 복장 규정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며 주변에 하소연하더군요. 용의 복장 규정을 가볍게 여기는 학생들도 문제가 있지만, 용의 복장에 대한 강한 통제를 전통적이고 고루한 생활지도 방식으로 여기거나 자기가 귀찮아서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를 포기한 교사들에게도 현재 학교 규칙 체계가 무너진 것에 대해 큰 책임이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근무했던 학교에도 중학교 2학년 담임교사들이 자기들이 담당하는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너무 사고를 많이 치고 반항이 심해서 다루기 힘들다며 불만을 이야기했는데, 그들은 이 학생들이 1학년일 때 1학년 담임교사들이 제대로 지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비열한 모습을 보이더군요. 제가 바로 그 1학년 담임교사였기 때문에 그러한 책임 전가가 매우 불쾌하고 역겹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이 2학년 학생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망가질 것이라고 학기 초부터 정확하게 예측했습니다. 왜냐하면 2학년 담임교사들이 교내에서 학생들이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을 전혀 통제하지 않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렇게 눈에 띄고 기본적인 용의 복장 통제마저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학생들이 분명히 크게 망가질 것이라고 예측했고, 그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은 제 예측보다도 더 심하게 망가져 교사의 통제를 전혀 듣지 않고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켰습니다(어떻게 망가졌는지, 어떤 사건사고를 일으켰는지 말씀드리고 싶지만 글의 주제와 맞지 않을 것 같아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교직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어느 학생에게든 생활지도를 강하고 엄격하게 했었지만, 현재는 제가 맡고 있는 담임 학급의 학생들에게만 생활지도를 강하고 엄격하게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교사들이 엄격하고 강한 생활지도에 협조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학급의 수업을 하다가 학생의 태도가 너무 불손하고 불량해서 혼내면 그 학급의 담임교사가 저에게 와서 "우리 반 아이를 왜 그렇게 세게 건드리셨어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담임교사가 맡고 있는 담임 학급은 거의 예외 없이 무질서하고 학생들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학교폭력을 포함한 각종 사건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그래서 그 담임교사는 자기가 맡고 있는 담임 학급의 학생들을 뒷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 교사들에게는 그렇게 뒷담을 해 놓고 제가 강하게 혼내면 저에게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따지면서 오히려 학생 편을 드니 그 반의 생활지도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겠죠. 그래서 저는 이제 다른 학급의 학생들은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고 제가 맡은 담임 학급의 학생들만 강하고 엄격하게 생활지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자기 반의 학생을 왜 이렇게 강하게 건드렸냐며 따지던 교사들이 너무나도 질서가 잘 잡히고 멀쩡한 우리 반 학생들의 상태를 보고 저에게 "운이 참 좋네~ 운이 좋아서 훌륭한 학생들을 만났네~"라며 비아냥거립니다. 저는 몇 번은 그냥 듣고 넘기지만, 지속적으로 그런 얘기를 하면 우리 반의 질서는 원래부터 잡혀 있던 것이 아니라 제가 노력해서 만든 것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그렇게 이야기한 교사들을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에게 그렇게 기분 나쁜 이야기를 하는 교사들 중에 제 기억에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교사가 있습니다. 그 교사가 담임을 맡은 학급의 학생이 교복을 아예 입지 않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서 등교하길래 등교 길에 지도했는데, 그 학생이 밑도 끝도 없이 반항심을 표출하여 저도 강하게 혼냈습니다. 1시간 후에 그 교사가 저에게 와서 "지금 우리 OO이를 건드리셨어요?"라면서 저에게 따지러 왔더군요. 저는 복장이 너무 불량한데 반항까지 했기 때문에 강하게 지도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생활지도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교사들은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를 매우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가 생활지도의 첫걸음임을 모르는 것이죠.
이처럼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지고 이로 인해 학교 규칙 체계가 무너진 것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생활지도를 약하고 태만하게 하는 교사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들에게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를 강하게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러한 강한 통제로 인해 학생들이 정당한 학교 규칙을 준수하는 습관과 성향을 함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협조 그리고 제도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규정상 실내에서 실외화를 신을 수 없고, 학생들이 실내화주머니를 들고 다니는 불편을 없애주기 위해 따로 실내화주머니를 보관하는 사물함까지 설치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여학생 3명이 복도에서 너무 노골적으로 실외화를 신고 다니더군요. 저는 그 학생들과 먼 거리에 있었고, 그 학생들에게 실외화를 벗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여학생 3명은 잠깐 벗는 척을 하더니 제가 못 볼 거라고 생각하는 공간에 가서 다시 실외화를 신었습니다. 저는 그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자꾸 꼼수를 부리지 말고 실외화를 벗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학생들은 제 앞에서 실외화를 벗었다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제가 못 볼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실외화를 신었습니다. 이 학생들은 2번이나 꼼수를 부리다가 적발된 것이죠. 저는 그 학생들을 다시 불러 강하게 꾸짖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제가 직접 수업을 하는 학생 1명만 계속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제가 수업을 하지 않는 나머지 2명의 학생은 불만이 가득한 똥 씹은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더군요. 자기들이 의도적으로 꼼수를 부리면서 교사의 지도를 무시하고 교사를 약 올려놓고 오히려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니 저도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시대의 학교 현장에서는 학부모와 제도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분노를 꾹 참고 그 학생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제가 과연 그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큰 소리를 지르면서 생활지도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학부모가 자기 아이의 인권을 침해하고 정신적인 상처를 줬다며 아동학대로 고소할 수도 있고,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는 그러한 말도 안 되는 고소를 받아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소가 유죄로 연결되는 경우가 그렇게 드물지도 않습니다. 그 학생들은 기본적인 용의 복장 규정마저 가볍게 여기고 교사에 대한 반항심도 가득하지만 모두 각 반의 부반장을 맡고 있는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학생들은 상습적으로 학교 규칙을 위반하고 교사에게 반항하는 학생들입니다. 각 반의 부반장을 맡고 있는 학생들마저도 학교 규칙 중에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고 지키는 것이 어렵지도 않은 용의 복장 규정마저 제대로 지키지 않고 교사를 약 올리다가 갑자기 반항심을 표출하는 학교에 저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죠. 학급 임원이 교사를 약 올리면서 용의 복장 규정을 지키지 않는 학교에는 더 이상 남아 있을 수 없고, 제가 생활지도로 인해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내년에 학교를 무조건 옮길 생각입니다. 그런데 과연 학부모가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를 포함하여 교사의 엄격하고 강한 생활지도를 존중하고 법과 제도도 교사가 엄격하고 강하게 생활지도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었다면 그 학생들이 저를 약 올리고 저에게 반항심을 강하게 표출하는 일이 일어났을까요? 일어났더라도 제가 그 학생들을 그냥 보낼 수밖에 없는 사태가 발생했을까요? 그리고 실제로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생활지도다운 생활지도는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당연히 생활지도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죠. 위에서도 몇 번 언급했지만 다시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는 생활지도의 첫걸음입니다.
용의 복장에 대한 강한 통제를 반대하는 학생, 학부모, 교사 중에서 교복이 일본 문화의 잔재라고 하면서 비판하는 의견을 자주 들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정확하지도 않습니다. 교복은 본래 영국이 원조이고 현재에도 영국, 싱가포르, 호주 등을 포함하여 여러 나라에서 교복이 존재하며 학교에 교복을 착용하고 오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용의 복장에 대한 강한 통제를 반대하는 학생, 학부모, 교사 중에서 교복 문화 자체가 너무 획일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하는 의견도 자주 들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월드컵 경기가 열리면 축구 팬들이 붉은 악마를 상징하는 빨간색 옷을 맞춰서 입고 응원을 하는 모습, 야구팬들이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색깔과 맞는 옷을 입고 응원을 하는 모습(예를 들면, 한화는 주황색, 삼성은 파란색) 등을 보았을 때, 교복처럼 통일된 옷을 입는 것을 단순히 획일성의 차원에서 비판해서는 안 되며, 집단에 대한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경찰 제복이나 군복과 같은 옷도 자기의 신분과 직업을 나타내기 위한 용도로 입기도 하지만, 집단에 대한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이러한 정신을 표현하기 위한 의도로 입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교복, 생활복, 체육복 중 아무 옷이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용의 복장에 대한 통제를 너무 심하게 한다고 따지던 학부모가 곧 있을 체육대회에서 학생들끼리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티(같은 반 학생들끼리 맞춰서 입는 옷)를 금지하자, 그 학부모가 담임교사에게 전화하여 체육대회 때 반티를 금지하기로 결정한 교장과 교감이 너무 꼰대스럽다며 노골적으로 비난한 일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체육대회 때 통일성 있게 반티를 맞추는 것 또한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표현한다는 측면에서 교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복은 싫다고 하면서 반티를 못하게 하는 것은 비난하는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못하죠.
학생들이 단정하게 교복을 입도록 조치하는 것은 학생들이 학교 규칙을 성실하게 지키는 성향과 습관을 함양하도록 함으로써 학교에서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부인이 무단으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더 큰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허용되지 않은 외부인이 무단으로 학교에 침입하여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사례가 드물지 않게 일어납니다. 외부인들이 학교에 학생인 척 들어와서 화장실에서 몰래 흡연을 하고 나가거나, 학생인 척 점심 급식을 먹고 나가거나, 몰래 교무실로 들어와 교사의 지갑에 있는 현금이나 카드를 훔치거나, 어떤 학생이 외부인인 자기의 남자친구를 몰래 교내로 들어올 수 있게 하여 으슥한 곳에서 성적인 애정행각을 하 경우를 저는 짧은 교직 경력에도 불구하고 몇 번 목격했습니다. 뉴스에는 외부인이 학교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칼부림을 하거나 성추행을 하는 등의 일도 보도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학생들은 외부인이 교내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일으키는 각종 사건사고로부터 안전을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교복과 관련된 학교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아무런 사복이나 입고 다닐 수 있게 한다면 누가 외부인인지 식별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제가 이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 1학기에는 교복에 대한 통제를 나름 철저하게 했으나 2학기에 교감이 바뀌면서 교복에 대한 통제를 하지 않자 외부인이 무단으로 침입하여 위에 있는 여러 사건사고를 일으켰고 학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생이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학생들이 규칙을 준수하는 습관과 성향을 함양하도록 하여 온전한 사회인으로 길러내기 위해서 교복을 핵심으로 하는 용의 복장 통제는 필요한 것입니다. 즉,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용의 복장 통제는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