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문을 찾아서
북한산의 서쪽 자락, 경기도 고양시의 품에 안긴 흥국사로 향하는 길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입니다. 서기 661년, 신라 문무왕 시절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이 오래된 절집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의 기도를 품어왔을까. 순간 '불이문(不二門)'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가파른 나무 계단 끝에 자리 잡은 흑백의 불이문. 하늘의 구름이 낮게 깔려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불이문으로 향하는 계단은 생각보다 가파르다. 하지만 그 가파름은 고통이 아니라, 세속의 번뇌를 털어내기 위한 경건한 과정처럼 느껴집니다. 고개를 들어 불이문을 바라보는 순간, 신기하게도 머리 위를 흐르던 구름의 행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흑백의 프레임 속에서 세상의 화려한 색채는 지워지고, 오직 단단한 질감의 나무 계단과 정교한 단청의 선만이 남았습니다. 이 문을 넘어서면 더 이상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경계는 없다는 '불이(不二)'의 가르침이 발끝에서부터 전해져 옵니다.
계단을 한 칸씩 오를 때마다 1,300년 전 신라 시대로의 시간이 중첩됩니다. 당시 원효대사가 '흥성(興聖)'을 기원하며 세웠던 이 절집은 지금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찬란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세월의 풍파 속에 중건과 중수를 거듭해왔지만, 공기 속에 감도는 특유의 장엄함만큼은 창건 당시의 기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흥국사는 화려함보다는 깊은 침묵과 경건함이 지배하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불이문 아래 서서 그 정교한 건축미를 감상하다 보면, 당시 신라 불교 예술이 지향했던 '성스러운 세계의 재현'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찰의 전경이 문 너머에서 숨을 죽인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다 오르고 나면, 비로소 흥국사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1,300년 전의 이 자리의 절집 말입니다. 이 산세와 바람을 같지만 무엇인가 다릅니다. 과거의 화려했던 절집의 모습과 현재의 소박하고 단단한 풍경이 겹쳐지며, 묘한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흥국사 불이문은 단순히 사찰로 들어가는 통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찰나와 영원을 잇는 통로이자, 번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고요한 나를 마주하게 하는 마음의 문이었습니다. 구름조차 쉬어가는 그곳에서, 나는 잠시 시간을 잊은 채 신라의 어느 날을 거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