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문을 찾아서
떠들썩한 세상의 소음이 피로해질 때면, 지도를 살피지 않고 발길이 닿는 대로 고요를 찾아 떠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충북 청주의 낙가산 자락, 그 품에 조용히 안겨 있는 보살사(菩薩寺)는 그런 마음을 달래기에 더없이 완벽한 곳이었습니다.
[낙가산 보살사의 전경.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돌계단과 정교한 석등, 그리고 그 끝에 자리한 고요한 삼성각의 모습]
사찰 마당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부재의 평온함이었습니다. 수행 중인 스님의 뒷모습도, 기복을 비는 신자들의 발길도 보이지 않는 텅 빈 공간. 하지만 그 비어 있음은 결코 쓸쓸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흔적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자연의 생생한 언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낮게 읊조리는 바람 소리, 그 바람의 결을 따라 맑게 울리는 풍경 소리, 그리고 나뭇가지 사이를 경쾌하게 오가는 새들의 지저깃 소리. 보살사는 크지 않은 절집이었지만, 그 안에서 흐르는 소리들은 대웅전의 처마만큼이나 깊고 시원했습니다.
천천히 경내를 거닐다 발길이 멈춘 곳은 가파른 돌계단 위, 삼성각 앞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누군가 정성스레 불공을 드리는 뒷모습이 시야에 스쳤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찰나의 눈길이 닿는 순간, 거짓말처럼 주변을 감싸던 바람 소리가 잦아들고 모든 소음이 음소거 된 듯 멈추어 섰습니다. 세상의 움직임이 정지되고 오직 저 높은 삼성각 안으로 내 영혼이 강렬하게 당겨지는 기분. 마치 현실의 시간이 멈추고, 아주 먼 과거 혹은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시간의 문'이 눈앞에서 조용히 열립니다.
사실 이곳 보살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천년고찰입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저 계단을 오르며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을까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다시 중건된 극락보전과 명부전의 단청 속에는, 그 긴 시간을 견뎌온 인고의 미학이 서려 있습니다.
흑백의 프레임 속에 갇힌 보살사의 풍경은 마치 시간이 박제된 듯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안에서 저는 가장 역동적인 시간의 흐름을 느꼈습니다. 멈춰버린 것 같은 그 찰나의 순간, 저는 다시 열린 시간의 문을 지나 오늘의 나를 되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