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문을 찾아서
전망대에 올라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광활한 침묵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시화호의 풍경에서 색을 덜어내니, 비로소 사물의 본질과 그 안에 쌓인 시간의 결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화려한 도심의 불빛 대신, 이곳에는 낮게 가라앉은 구름과 대지를 묵묵히 지탱하는 송전탑,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는 습한 공기만이 존재합니다.
[송산그린시티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화호]
이곳은 경기도 화성의 송산그린시티 전망대.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현대의 지도가 아닙니다. 흑백의 프레임 너머로 보이는 저 멀리 섬의 실루엣은 마치 오래된 필름 속 한 장면처럼, 혹은 아주 먼 과거로부터 온 초대장처럼 나를 잡아끕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은 사실 아주 오래전, 거대한 공룡들이 주인 노릇을 하던 터전이었습니다. 수천만 년 전의 시간이 화석이 되어 잠들어 있는 곳. 이곳에서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고 층층이 쌓여 거대한 퇴적층을 이룹니다.
전망대 아래로 펼쳐진 광활한 대지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기묘한 감각이 몰려옵니다. 시곗바늘이 느려지다 이내 멈추고, 발밑의 땅이 진동하며 억겁의 세월 전으로 회귀하는 듯한 기분. 그것은 마치 현실 세계의 고리가 느슨해진 틈을 타 '시간의 문'이 열리는 찰나와 같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 숲은 신기루처럼 멀게만 느껴지고, 눈앞의 갈대밭 사이로 금방이라도 거대한 생명체가 고개를 내밀 것만 같습니다. 인류가 나타나기도 전, 지구의 주인이었던 그들이 누비던 그 원초적인 생명력이 이 잿빛 풍경 속에 여전히 맥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의 문을 통과해 마주한 풍경은 나에게 묻습니다. 영원할 것 같은 도심의 화려함과 이토록 고요한 태고의 시간 중 무엇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를. 우음도가 품은 긴 세월에 비하면 나의 고민과 일상은 찰나의 점조차 되지 않을 만큼 미미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전망대를 내려오는 길, 다시 색채가 살아나고 세상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방금 열어보았던 '시간의 문' 너머의 서늘하고도 경이로운 감각이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때로 삶이 버거울 때, 나는 다시 이 흑백의 풍경을 떠올릴 것입니다. 모든 시간이 멈추고 오직 존재의 경이로움만이 남았던 그 순간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