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문을 찾아서
경기도 용인, 화려한 도심의 소음에서 한 발짝만 비껴나면 거짓말처럼 고요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오늘 제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이동저수지를 곁에 둔 작은 절집, 동도사입니다.
수도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적막한 이곳에는 우리를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이끄는 묘한 힘이 숨어 있습니다.
절집 입구에 서면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 건 위로 곧게 뻗은 계단입니다. 사실 계단을 오르는 일은 숨이 차고 고되지만, 동도사의 계단은 왠지 모르게 자꾸만 발걸음을 위로, 위로 끌어당깁니다. 그 이끌림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한 걸음씩 올라 마침내 가장 높은 곳에 닿았을 때,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절집의 단아한 기와지붕 너머로 펼쳐진 푸른 저수지의 풍광. 그것은 단순히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해방감이었습니다.
[흑백으로 담긴 동도사의 전경. 화면 왼쪽에는 전통적인 사찰 건물의 처마가 자리하고, 그 뒤로 굽이치는 소나무 가지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습니다. 소나무 사이로 잔잔한 저수지와 먼 산의 능선이 보이며, 하늘에는 구름이 입체감 있게 흐르고 있습니다.]
자리를 잡고 가만히 앉아 풍경을 응시합니다. 소나무 가지들은 약한 바람에도 제각기 몸을 흔들며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사각거리는 댓잎 소리와 소나무의 춤사위가 어우러져 한 편의 자연 오케스트라를 감상하는 기분이 듭니다.
그러다 문득, 지나가던 구름이 멈추고 바람조차 숨을 죽이는 찰나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모든 소음이 사라진 그 고요한 틈새로, 저는 '시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실 이 절집은 원래 이곳에 있던 것이 아닙니다. 저수지가 생기며 물 아래로 잠겨버린 옛 절터에서 정성껏 추려온 조각들을 모아 다시 지어 올린 곳이지요. 지금 제 눈앞에 찰랑이는 저수지 저 깊은 곳에는, 우리가 보지 못한 옛사람들의 시간과 기도가 잠들어 있는 셈입니다.
바람이 멈출 때 열리는 시간의 문을 통해 저는 저수지 아래의 시간을 상상해 봅니다. 비록 예전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동도사는 물 아래 잠든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듯 가장 높은 곳에서 묵묵히 저수지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소중한 기억들도 어쩌면 마음속 깊은 저수지 아래 잠겨 있는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동도사의 계단을 오르듯, 우리 마음의 높은 곳에 올라 조용히 아래를 내려다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바람이 멈추고 시간의 문이 열리는 순간, 당신은 어떤 기억과 마주하게 될까요?
동도사는 화려한 볼거리가 가득한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추억하고, 현재의 나를 가만히 다독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 같습니다. 낮은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