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의사, 겹겹의 능선 너머 신라의 숨결을 마주하다.

시간의 문을 찾아서

by Black and Navy

도심의 소음이 흐릿해질 때쯤, 우리는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경기도 화성,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만의사는 제게 그런 '뜻밖의 깊이'를 선물해 준 공간이었습니다.


[구름이 웅장하게 피어오른 하늘 아래, 만의사의 단단한 기와지붕과 저 멀리 겹쳐진 산봉우리가 담긴 흑백 사진]


숲과 바위, 그리고 시원한 미소

절집으로 들어서는 길은 초록의 숲과 계절을 머금은 꽃들이 반겨줍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는 건 하얀 화강암 위에 우뚝 서 계신 부처님 상이었습니다. 볕을 받아 뽀얗게 빛나는 그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씻겨 내려가는 듯한 시원함을 선사합니다.

단단한 바위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과 자비로운 미소가 어우러져, 복잡했던 마음의 소음들이 고요히 잦아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도권에서 만난 첩첩산중의 신비

절집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가장 높은 곳에 서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낮은 구릉지일 것이라 짐작했던 화성의 풍경 대신, 겹겹이 쌓인 산봉우리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 깊지 않은 지역이라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강원도 어느 깊은 골짜기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발아래로 펼쳐진 산의 너울은 속세와의 거리를 한 뼘 더 벌려놓으며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줍니다.


시간의 문이 열리는 소리

만의사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베일에 싸여 있지만, 사람들은 이곳이 통일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터전이라 믿고 있습니다. 바람 끝에 매달린 풍경 소리가 '딸랑' 하고 고요를 깨우는 순간, 구름조차 흐름을 멈추고 시간의 문이 다시 열리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찰나의 정적 속에서 저는 보았습니다. 화려한 가사를 수놓은 신라 시대의 승려들과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던 신도들의 행렬이 절 입구에서부터 길게 이어지는 모습을 말이죠. 수천 년의 세월을 건너온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지금 제가 딛고 있는 흙 위로 겹쳐졌습니다.


멈춤이 주는 위로

만의사는 단순히 오래된 절집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도심과 산중이 경계를 허무는 기묘하고도 평온한 틈새였습니다.

일상의 속도가 너무 빨라 숨이 가쁠 때, 화성의 품에 숨겨진 이 깊은 절집을 다시 찾게 될 것 같습니다. 신라의 구름과 오늘의 바람이 만나는 그곳에서, 잠시 시간의 문을 열어두고 쉬어갈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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