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평항, 시간의 문이 열리는 영원의 바다

시간의 문을 찾아서

by Black and Navy

화성시 궁평항에 다다르면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 것은 활기찬 항구와 정돈된 어시장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의 활기와 바다의 역동성이 교차하는 그곳에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양옆으로 뻗은 파도를 막아주는 든든한 길 끝에 귀여운 등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제 발걸음이 멈춘 곳은 주차장 왼쪽으로 길게 뻗은, 조금은 특별한 구조물 앞이었습니다.

[흑백의 긴 피싱피어 위로 짙은 구름이 드리우고,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가는 풍경]


이곳은 보통 '피싱피어'라고 불리는 낚시터입니다. 지금은 안전상의 이유로 낚시가 금지되어 사람들의 온기는 사라졌지만, 구조물만큼은 바다 위를 당당하게 점하고 서 있습니다. 멀리서 이 구조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위를 유유히 날아다니는 갈매기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마치 이 바다와 구조물이 온전히 자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선포하듯, 갈매기는 빙빙 돌며 허공에 궤적을 그립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의 구름이 흐름을 멈추고, 거칠게 몰아치던 파도와 갈매기의 날갯짓조차 박제가 된 듯 멈춰 섭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전한 고요. 그것은 마치 현실의 시간이 멈추고 '시간의 문'이 열리는 찰나와 같았습니다.


시간의 문 너머로 마주한 바다는 조금 전의 풍경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방금 보았던 등대도, 정박해 있던 어선들도, 인공적인 건축물의 흔적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오직 끝없는 바다와 묵묵한 바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이곳의 바다는 아까보다 훨씬 거칠고, 코끝을 찌르는 바다 내음은 태고의 비릿함을 가득 머금고 있습니다.

사람의 흔적이 지워진 이 바다는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채 나에게 다가옵니다. 거칠고 황량했던 이 바닷가가 사람들의 노력과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지금의 모습으로 변해온 과정을 거꾸로 되짚어보게 됩니다. 수많은 시간이 덧칠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경계선만큼은 변하지 않는 영원불멸의 존재처럼 나를 가만히 응시합니다.


그 경계선 앞에 서서 깨닫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의 흔적은 쌓여가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자연의 본질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궁평항에서 열린 시간의 문은, 저에게 잊고 지냈던 근원적인 평온과 경외심을 다시 선물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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