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문을 찾아서
청주공항의 소란함을 뒤로하고 미호강 줄기를 따라 좁은 시골길을 달립니다. 목적지는 청주 정북동 토성. 지평선 끝에 걸린 듯 낮은 언덕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현대의 시간축을 벗어나 아주 오래된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주차장에 내려 처음 마주한 토성은 그저 평범한 흙 언덕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벽 사이 좁은 길로 발을 들이는 순간, 공기의 밀도가 달라짐을 느낍니다. 사방을 둘러싼 성벽은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그 안에는 묘한 공허함과 평온함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저 멀리 현대의 상징인 높은 아파트 단지가 시야에 걸리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의 고요는 깨지지 않습니다. 마치 이 공간만은 다른 차원의 막에 싸여 보호받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정북토성 언덕 위, 한 그루의 나무와 한 명의 실루엣이 대조를 이루는 흑백 사진]
이제 성벽 위로 올라 천천히 걸어봅니다. 시야가 트이며 가슴이 시원해지는 찰나, 홀로 서 있는 외로운 나무 한 그루를 마주합니다. 사진 속 검은 실루엣처럼 서 있는 그 나무는 마치 성을 지키는 고독한 지킴이 같습니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마법처럼 현실의 소리가 소거됩니다. 21세기의 아파트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귓가에는 낯선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발밑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군사들, 그리고 성벽 위에서 펄럭이는 색색의 군기 소리...
삼국시대, 이곳을 지키던 병사들의 숨결이 바람에 실려 오는 듯합니다. 방금 전까지 지킴이 같았던 나무는 어느새 갑주를 입은 엄숙한 수문장으로 변해 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시간의 문'이었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