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앞에서
브라이언에게 전화가 온 것은 이미 가구공장에 대한 기대를 접었을 때였다. 그는 자신을 기억하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당신이 등장하는 글도 썼소!’라고 말하고 싶었다. 공장에 이력서를 낸 지 2주가 지났을 때였고, 급한 성미에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 있던 터였다. 그럼에도 그의 목소리는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이 낯선 도시에서 나의 이름을 찾아 불러주는 사람이 또 한 명 생긴 것이다.
브라이언의 호출을 받고 2차 면접을 받으러 갔다. 내가 사는 도클랜드에서 서던 크로스 스테이션까지는 트램을 타고 10분, 그곳에서 트레인을 타고 30분, 다시 버스를 타고 20분을 더 가야만 하는 외진 곳이었지만 그 길의 풍경이 한 데 모여 나의 자산이 될 거라는 정처모를 합리화를 거쳐 가구공장에 도착했다. 문학에 대하여, 그리고 내가 했던 방송 일에 관해 물었던 1차 면접과는 달리 2차 면접에서 그는 보다 심층적인 물음을 던졌다.
“한국인들은 의무적으로 군대를 가야 한다던데, 이미 다녀왔어?”
“십 년 전에 제대를 했습니다.”
브라이언은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라고 시켰다. 자 이제 옆 사람을 쏴라.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브라이언 앞에 앉은 9명의 후보자들마다 각양각색이었다. ‘사람은 절대적으로 쏘면 안 된다.’, ‘상사가 쏴라고 하면 무조건 쏘겠다.’, ‘총을 들이밀기보다는 적과 대화를 나누길 원한다.’ 브라이언은 성에 차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나를 비롯한 후보자들은 간단한 인터뷰와 서류작성을 마치고 돌아갔다. 브라이언은 여기 있는 몇몇은 자신과 함께 일을 하게 될 수도, 어쩌면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며 말을 아꼈다. 무엇보다 공장 일이라는 게 기계를 사용하는 직업이기에 알코올과 약물 같은 마약 검사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떨어지는 이들이 꽤나 많기 때문에 자신을 다시 볼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사가 이뤄지는 날은 알 수 없었다. 불시에 문자 메시지가 오면, 나는 검사를 받으러 가야 했다. 카프카의 소설 『심판』에 나오는 주인공 K처럼 어느 날 갑자기 법 앞으로 끌려가야만 할 판이었다.
그로부터 3일이 지나도록 문자는 오지 않았다. 때마침 다른 도시에서 친구가 놀러 온다고 했고, 우린 소주를 한 잔 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검사는 다음 주에나 진행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잘 마시지도 않던 술인데, 여차저차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제법 여러 병을 비워냈다. 휴대폰의 전원이 꺼진지도 모른 채로 술잔을 행주 짜듯 말려내곤 잠이 들었다. 목이 말라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높다랗게 뜬 이후였다. 아침 8시 30분, 나는 휴대폰에 충전기를 연결하고 지난밤을 상기시키며 침대에 멀뚱히 누워있었다. 도착해있는 문자메시지는 1개, 브라이언이었다.
‘너는 9시 30분까지 내가 지정해주는 장소로 가서 알코올과 마약에 대한 검사를 받아야 해. 여권과 네 정신을 챙겨가도록. 행운을 빌어. 주소는…….’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방으로 가선 수도꼭지를 입에 문 것이다. 분노의 양치질을 세 번이나 하고, 화장실에 앉아서 자책을 하며 평정심을 되찾으려 애썼다. 힘들게 얻어낸 기회를, 인문학도에게 손을 내민 브라이언의 기대를 고작 소주 몇 병으로 망쳐버릴 순 없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바로 나의 과오였기에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사람도 나였다. 어차피 받아야 할 벌이라면 법 앞에서 당당히 심판을 받으리. 단호한 결심과는 달리 쑤셔오는 아랫배를 붙잡고 화장실을 여러 번 드나들었다. 자아성찰과 자포자기, 휴지같이 얇고 위태로운 절망과 희망이 불과 30분 만에 펼쳐졌다. 이제 벨트를 조이고, 검사장으로 출두해야만 했다.
검사장은 한적한 마을의 시계탑 가까이 있었다. 어떻게든 내 몸에서 피와 섞여 이리저리 흐르고 있을 알코올을 희석시키고자 물통에 담아온 물을 계속해서 마셨다. 검사장에 들어선 순간 하얀 벽과 하늘하늘 솟아오르는 가습기의 수증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과 전화기를 붙잡고 상담을 하고 있는 백인 여자를 보자 숨이 막혀왔다. 나는 서류에 이름과 개인정보를 기입했다. 그리곤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다시금 배가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접수처의 여자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나는 제법 급했지만 달리 말을 걸 재간이 없어 그저 발만 동동 굴렸다. 접수처 뒤로 이어진 복도에서 검시관일 게 분명한 여자가 걸어왔다. 그녀는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카디건을 걸쳤고,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었으며, 눈이 파랗고 몸이 늘씬했다. 나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녀의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오늘 나에게 심판을 내릴 그녀는 법관이었다.
나는 의자에 앉자마자 화장실을 다녀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접수처에 있던 여자와 같은 말을 했다. 잠시 후면 화장실을 가야만 하니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져 솔직한 상황을 얘기하고 말았다. ‘실은, 지난밤에 술을 많이 마셨어요. 자주 마시는 건 아니고, 친구가 여행을 와서 마시게 됐는데 검사를 하루만 미루면…….’ 그녀는 의자를 당겨 앉았다. 나와 더 가까워졌다. 그녀는 책상에서 서랍을 열더니 음주단속기계를 꺼냈다.
“검사해보면 알겠지.”
그녀에게선 묘한 향이 났다. 나는 검시관에게 순식간에 홀려버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나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고, 나는 스스로 기계의 주둥이를 입 속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불어.”
나는 후, 바람을 불었다.
“더, 세게.”
나는 더 세게 불었다.
“삐-”
그녀는 기계의 액정을 확인하곤 종이 위에 나의 상태를 써 내려갔다.
“저, 괜찮은 건가요?”
그녀는 나를 흘겨보았다.
“다행이네.”
심장이 초속 5cm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저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나는 또 한 번 화장실 타령을 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술을 많이 마신 날에는 좀처럼 제어가 되지 않는 법이니까. 검시관은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화장실 문을 직접 열어주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나에게 검시용 소변통을 내밀었다. 나는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화장실의 문을 잠그고선, 내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자 좀처럼 상황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녀는 나와 불과 1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서선 커튼을 쳤다. 새하얀 커튼은 어떤 감각의 차단도 이뤄내지 못한 채로 그저 힘없이 나풀거렸다. 우린 얇은 천을 가운데 두고 서로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역할은 그러니까, 소변통에 나의 체온이 담긴 소변을 담아내는 동안 감시하는 그야말로 검시관인 것이었다.
나는 좀처럼 긴장이 풀리지 않아 벨트를 푸는 것부터 허둥대고 말았다. 부끄럽지 않게 소음을 만들어 내려고 했는지, 나의 긴장된 마음을 숨기고 싶어서였는지, 잘되지도 않는 영어로 혼잣말을 지껄였다. 그녀는 전문가답게 나의 심정을 헤아렸는지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어주었다. 수압은 세지 않았고, 그 쫄쫄쫄 흐르던 수돗물과 소변통으로 떨어지는 나의 오줌은 한 데 섞여 기이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나는 기어이 소변을 받아냈다. 한번 터져버린 오줌은 끊길 기미가 없었고, 나는 소변통을 변기 위에 올려두고 마저 일을 치렀다. 그때였다. 변기 위에 올려둔 검시용 소변통이 미끄러지며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나는 아직 볼일을 다 마치지도 못했는데, 소변은 벽과 바닥에 이리저리 흩뿌려졌다. 나는 영어인지 불어인지 모를 감탄사를 내뱉어버렸다. 바지는 허벅지까지 내려간 채였고, 소변통에서 흘러나온 소변은 내 발끝을 적셔냈고, 검시관은 기어코 무슨 일인지 물어보게 되었다.
나는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바지를 올려야만 하니까, 소변통을 주워야만 하니까, 잠시만. 나는 커튼을 걷으며 말했다.
“물을 마시고, 다시 해야 할 거 같은데…….”
그녀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걸레를 내밀었다. 나는 바닥에 앉아선 내가 쏟은 소변을 닦아내었다.
“나는 마약을 하지 않아요. 내가 마약이니까요.(I don't do drugs, I am drugs. - Salvador Dali)"
아무래도 술이 덜 깬 걸까. 좁은 화장실에서, 그것도 처음 보는 여자 앞에서 소변을 쏟은 이 청춘이 서글퍼 나는 한참을 그렇게 쭈그린 채 있었다.
“다행히 소변을 받았을 때 이미 검사가 다 되었네요. 이상 없는 거 같으니, 그만 마칠게요.”
그녀는 먼저 화장실을 나갔고, 나는 마지막 정리를 하곤 얼른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나는 진정 법 앞으로 끌려갔다 온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자아(ego, 自我)라는 법속으로. 그 법은 늘 문지기가 가로막고 있어 나는 그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을 두려워만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문지기를 가까이에서 보고야 말았다. 그 서늘한 콧날과 삐져나온 코털, 나는 그만 법 앞에서, 법 안으로 들어갈 것을 또다시 주저하고 말았다. 문지기의 얼굴은 누군가와 닮아 보였다.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나는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눌렀다. 째깍, 검사를 마쳤으니 이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마을에 우뚝 솟은 시계탑의 분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명징하게 들려왔다. 시간은 아직 10시도 채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