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물여섯 이야기
3~4년 전부터 우리 사회는 '나에 대해 알고싶은'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난 의미에서 MBTI와 소확행 등 소위 MZ들의 세대들이 유행처럼 자신에 대한 이벤트들이 밈이 되어 확산했다. MBTI 대화를 통해 첫만남에서부터 마치 당신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MBTI에 진심인 사람들이 늘어나기도 하였다.
그래서 오늘, 나의 강한 사람 되기 D-17 오늘의 새로운 도전의 취지는 가벼운 혼자 놀기였다. MBTI와 동시에 유행하던 '퍼스널 컬러'를 받으러 가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색깔을 통해, 옷부터 화장까지 나의 안색과 어울리는 컬러를 전문 컨설팅을 통해 상담받는 것이다. 퍼스널컬러가 유행하기 시작한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내가 아직도 해보지 못한 이유는 돈이 없어서다. 아마 꽤 많은 청년들에게 10만원을 주고 나와 어울리는 색을 검진받으러 가는 일은 그리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취미생활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내가 검진받은 색들로 옷장을 갈아엎을 것도 아닌데, 늘 퍼스널 컬러가 궁금했지만 그 궁금함의 크기가 10만원의 크기는 아니었나보다.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어떤 이벤트가 떴다. '나만의 컬러를 찾고 싶으세요?' 바로 퍼스널 이미지 브랜딩이라는 네임의 자신과 어울리는 컬러를 컨설팅해주는 이벤트였다. 무료였다! 무료에 눈이 멀었던 나는 호기심에 지원을 했었는데, 연락이 오더라. 기쁜 마음으로 날짜를 예약하고, 당일날 찌질하던 나의 마음은 참지 못한 채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어떤 내용이냐면,
나도 참 웃기지. 방문했더니 돈을 내라고 그러실까봐 가슴 조리며 저렇게 질문했다. 역시 무료에 눈이 멀었던 게 분명하다!
그렇게 강남역으로 갔다. 오늘 기분 좋게 나의 컬러를 유투브에도 올릴 생각에 삼각대도 챙겼다. 몇년 전부터 유행하던 퍼스널 컬러를 드디어 진단받을 수 있음에 들뜬 발걸음이었다! 도착했더니 활짝 웃으시는 상담 선생님께서 아주 친절하게 커피를 내려주시고 아늑한 공간에 나를 앉혔다. 그리고 나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컬러를 상담받는 줄 알았던 나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바라보시며 대화가 시작되었다. "네, 우선은, 나의 내면과 어울리는 컬러를 과거/ 현재/ 미래로 선택해보시겠어요?"
적잖이 당황한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꽤나 수고를 했다. "어, 네, 과거, 현재, 미래요? 컬러를요?" 그렇다. 컬러를 활용한 심리테스트를 시작한 것이다. 분명 내가 알던 진행과는 달랐지만, 상담 선생님의 흐름에 맞춰가며 한시간 가량의 상담이 시작되었다. 실은 아주 꽤나 재밌었다. 나의 얼굴 이미지를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논하는 게 아니라 내면에 대해 상담하는 것이니 마음이 편해졌다. 평소에 이런 전문 선생님에게 심리 상담을 받아본 경험이 없었는데, 나의 어린 시절과 결핍에 대해 말하고나니 정말 개운할만큼 좋은 시간이더라.
그렇게 끝이 날 무렵, 오늘 예기치 못한 주제가 오히려 더 마음에 와닿았음이 감사한 채 선생님께 인사드리려는 찰나였다. "그래서 윤정씨가 미래로 선택한 컬러를 살펴보았을 때, 멘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현재 하시는 배우도 그렇고, 여러 일들이 사실 모두 모호한 부분이잖아요? 이런 모호한 부분은 인생에 있어서 좀 더 명확한 길로 방향 잡을 수 있도록 1:1로 멘토•멘티 과정을 보내는 게 좋을 듯 싶네요! 혹시 저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추천해도 괜찮을까요?”
내가 이렇게 기억력이 좋은 이유는 1시간의 상담시간을 진심으로 집중했기 때문에 이뤄졌다.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정말 새겨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런데 추천을 들을수록 어떤 기억이 스쳤다. 나랑 현재 가장 친한 친구가 대학 다닐 때 겪었던 사이비 종교에 관한 경험담이다. 그 친구도 처음에 이런 심리테스를 하다, 너무 선하고 좋으신 분의 말에 모임도 가지고, 상담도 받고, 멘토멘티 프로그램, 그리고 사적인 일상도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몇번의 만남 이후 종교를 강요하기 시작했고, 그때서야 깨닫고 빠져나오는데 힘겨웠다고 했다.
솔직히 내 마음에 이미 의심의 뿌리가 생겼지만, 나는 1시간 동안 선생님의 웃음에 적대감으로 맞서고 싶지는 않아, 이름과 주소, 연락처와 이메일까지 쓰고 나와버렸다. 주 3회 하루에 한 시간씩이라며 안내를 받고, 혹시나 정말 정부에서 지원하는 좋은 프로그램일지도 모르니 단체기관의 명칭까지 질문해보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 네이버와 구글에 아무리 검색해보아도 그러한 단체와 프로그램은 나타나지 않았다.
억울하거나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퍼스널컬러 대신 심리상담을 하게 된 게 좋다는 감정도 느끼게 해주셨으며, 나의 친한 친구의 경험담을 통해 그 단체와 함께 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으니. 친구에게 전화를 하여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그거 사이비종교 맞다고 알려주더라. 그 친구가 없었다면, 난 내일 오전에 1:1 멘토 상담을 하러 강남역으로 기분 좋게 가버렸을 것이다. 친구야, 소중해 너...
왜 무료에 눈이 멀었을까. 대가없는 것에 헤벌레 웃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순수함을 느꼈다. 아니, 순진함을 느꼈달까. 순수와 순진은 다를 터. 순진함으로 인해 좋지 않은 곳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게 되는 날이었다. 그래도 이 날 엄청난 계약 손실같은 큰 문제가 아니어서 다행스러웠으며, 작은 깨달음에서부터 큰 경험까지 헤아릴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는 결심까지 할 수 있었다.
오늘은 강해지기 D-챌린지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경험 및 도전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것을 해야한다는 의지에 무료 퍼스널 이벤트를 신청했던 경솔한 순간이 우연하게도 내게 깨달음을 주었던 경험으로 되었기에 간접적인 지혜를 얻어간 하루라고 정리했다. 이날의 경험으로, 앞으로 '무료'와 '대가 없는' 것에 헤헤 거리는 배고픈 강아지처럼 달려가지 않기를. 순진함으로 후회할 짓 하지 말기를.
아, 정말 재밌는 경험인 하루였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