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꽃에게 쓰는 편지

<여기, 편지한통 굴러다닙니다_4편>

by 윤방이

*이번 편지는 저의 감각적인 확장을 일으켰던 자연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편지라는 구조의 울타리 속에서, 오롯이 당신과 나만이 겪었던 세상을 되돌아보면서 '나'의 현재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 안에 묻어있는 은근한 이타성, 이타적인 생각 안에 여실히 드러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글자국들.

*"나는 어디로부터 왔고, 어디로 가는 중인가."의 질문이 마구 던져지며, 받아 씁니다.



To. 작년에 마주친 파란 꽃


너를 만났을 때 나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누른 충격과 비슷한 모양새로 멈췄어.

아주, 아주 작은 파란 꽃. 작년 봄과 여름 사이, 그때의 나와 어울리는 표현, '자꾸 갑자기 멈춰보는 나'.


아장아장 뒤뚱뒤뚱 신호등을 건너는 아이를 볼 때, 초록 풀에 코를 마구마구 가져다대는 강아지를 볼 때, 무심한 줄 알았던 고양이가 나의 다리를 살랑살랑 감쌀 때, 그때마다 얼음이 안쪽부터 녹듯이 그저- 멈춰버리는 사람들이 있지. 멈춰서 잠시 그 장면을 오롯이 느끼는 거야. 좀 더 머무르고 싶은 안정감이 입꼬리도 괜히 씰룩거리게 하고. 목적 없이 뛰고있던 나의 손목을 잡고, 숨을 고르게 해주는 듯.


나의 온 세상이 휘청거릴 때, 늘 내 어둠과 악수를 하고서야 다시 내 세상을 차근차근 보수해가며 짓더라. 어둠, 동굴, 그늘, 그림자 없이 밝고 당찬 기운으로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패기는- 매번 철이 지날 때마다 부끄러워 고개 숙이고선 그 친구들과 협의를 하는 거지. 이 감정과 이 성격도 모두 내 것이라고, 따끔하게 인정할 때까지 서로 대화하는 거야.


아직 그 받아들임에 익숙하지 않던 작년 나는 어두운 내면과 손을 잡기 싫어 시비를 걸다가 혼나버렸어. 도대체 무엇이 '나'라며, 무엇을 원하는 거냐며, 무엇인들 어떠냐며 혼이 난거야. 뜯어보며 질문하고, 뜯겨지며 답변하다 방황하게 되었어.


어둠은 빛을 잘만 받아들이는데, 왜 항상 빛은 어둠을 취급하지 않으려고 하는 지 모르겠어, 스스로도, 이 세상도. 끝끝내 어둠마저 사랑하기로 했을 때 비로소 마음은 놓여지게 되더라, 어떤 구름 같은 쇼파 위에 평화롭게. 그런데 내가 겪는 스스로의 사랑은 너무 여리고 미성숙해서, 20대 안에 과연 진정한 사랑에 닮아있기라도 할 지 모르겠다. 그래도 요즘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어보며 살고있어. 이게 사랑이 맞다며.


그렇게 작년에도 나를 사랑한다 믿기로 하며 어느 화창해진 날, 걷고 걷다가, 아주 작은 꽃 너를 본 거야. 커다랗고 화려한 노랑과 분홍 사이에, 아주 쪼그마한 파란 점. 나는 그 색에 온 마음이 이끌려 급히 멈추고 낮은 자리에 피어난 네게 인사하려고 허리를 허벅지까지 푹 숙였어. 그리고 나는 너를 봤어.


한참을 봤어. 새끼손톱보다 자-악은, 파아란 당신. 멈춰서 잠시 너를 오롯이 느끼는 거야. 좀 더 머무르고 싶은 안정감이 입꼬리도 괜히 씰룩거리게 만들고. 바톤 전해줄 사람 없는 이어달리기에서 혼란으로 가득한 꼬마 선수같던 나를 붙잡고, 숨을 고르게 해주더라고.


그날 이후로, 난 꽃을 좋아하는 것 이상의 감정이 생겼어. 피고 지는 것에 대한 시를 쓰던 내가, 지금 살랑이는 순간에 대한 시를 쓰더라고. 그래, 순간. 순간에 대한 강렬함. 과정. 지금. 앞에 놓여진 것. 펼쳐져 있는 것 중 내가 보는 것. 난 당신 덕분에 그것들을 사랑하게 되었어. 그리고 아주 작은 것에 웃음 지어도 괜찮다며 위로받았어.


1년이 지나고, 또 다시 어둠과 손 잡고 내 세상을 구출하던 중에 네가 떠올라 이 편지를 썼어. 당신의 어여쁜 위로가 나의 습관이 되어, 꽃을 보면 더 자주 웃거든. 고마워. 근데 내가 꽃 이름을 몰라, 누구니? 내가 마음으로 부르는 너의 이름은, 하늘을 한 스푼 담은 작디 작은 꽃!



From. 윤방이




2024년에 찍은 영상_윤방
KakaoTalk_20250517_132327083.jpg 이 요망지게 귀여운 아이는 이름이 뭘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