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편지한통 굴러다닙니다_3편>
이 글은 그저 편지다.
편지지에 담아 보내지 않는 편지. 나의 마음이라는 편지지에 그저 당신을 그려보는, 이기적인 것 중 가장 이타적인 편지다. 나의 글자가 틀려 다시 지웠다 쓸 일 없는, 오로지 편한 상태에서 쓸 수 있는, 편지지의 빈 공간을 채워야 할 것만 같은 눈치를 보지 않아도 괜찮은, 나의 편지.
당신 몰래 쓰는 이 마음들이, 나도 몰래 당신의 복으로 가 닿길.
작년 여름 돈도 없는 나는, 동료들의 청춘과 낭만으로 가득한 제안과 따뜻하게 내민 손을 잡고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났다. 살면서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었던 환경이었는데,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지 몰랐을텐데, 유달리 2024년에는 인복으로 가득 찼던 해였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기 위해선, 초보자에게 가이드, 포터를 해주시는 현지인이 꼭 필요하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 여행천재 동료가 일사천리 다 정리해 주었다.
그래서 만날 수 있었다. "해리"를. 약 10일동안 해리가 아닌 다른 포터 분과 함께 트레킹을 했다면 이토록 좋지 않았을 것이다. 해리는 우리의 여행을 단단하게 지탱해주었다.
사진 : 해리 그리고 윤지언니
해리가 앞뒤로 짊어진 가방은 나의 근력으로 도저히 들기 어려웠다.
포터라는 직업은 트레킹을 하는 동안 우리의 짐을 들어주는 일을 한다. 4명 모두 트레킹을 할 수 있을만큼 짐을 가볍게 하였고, 나머지의 아주 무거운 짐을 들어주시는 거다. 이런 직업에 대한 생각과 경험이 전혀 없었던 나는 해리를 만나기 직전까지도 어떤 손수레 같은 걸로 우리 짐을 담고 끌고 가는건가 상상했다. 그러나 해리가 온전히 짊어지고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나였기에, 해리가 무거운 짐을 내내 들고다니는 모습은 경이롭고, 미안하다가도 존경스럽고, 멋있었다.
해리, 안녕하세요? 인스타로 종종 연락 주고 받고, 가끔 스토리에 한국 노래와 함께 업로드 된 걸 보면 반갑고 그래요. 해리와 앞으로 한번 더 꼭 만나면 너무 좋을 것 같네요. 해리도 한국에 너무 와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때 꼭 연락이 닿으면 우리 만나요.
해리를 처음 본 순간부터 감사한 일 투성이였어요. 만나자마자 지프 차 타고 이동하는데, 당연하다는 듯 가장 불편한 자리에 앉으신 모습. 그 이후 온갖 편한 선택지는 모두 우리에게 주셨지요. 해리는 수없이 오르내리던 산이어서 가능하겠고, 초고수 전문가이기 때문에 익숙하겠지만 그 모든 배려와 따뜻함은 제게 감히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경이로움이 넘쳐날 정도로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덕분에 저는 그곳에서 아주 많이 행복했어요.
아 맞다, 고산병.
저만 유독 고산병이 심했던 거 기억나요? 사실 한국에서 저보다도 고산병과 장티푸스 등의 병들로 걱정과 염려로 가득했던 언니 오빠가 있었는데 제가 말했어요. "아, 아니야. 왠지 우리 아무도 고산병 없을 것 같애. 진짜 아무도 안 아플 거 같은 느낌이 왔어!" 그런데 저만 고산병이 찾아온 걸 보니, 자연의 불확실한 패턴을 강하게 마주할 필요가 있었나 봅니다.
해리는 제가 고산병이 찾아오면 그때마다 멈춰서고 기다려 주셨어요. 서두르지 않고, 불안하게 하지 않고, 담담히, "30분만 오르면 그 다음 down down down 그러면 머리 괜찮아 good good, ok?" "저기 숲만 지나면, 계속 down down 괜찮아?"
고통이 사라질 것을 알려주는 일. 고통을 겪는 순간에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일. 나의 고통을 별거 아닌 것으로 여기지 않고 계속 살펴봐 주는 일. 그런 일들을 내내 받는 저는, 고산병이 와도, 아니 어쩌면 고산병이 왔기에 더더욱 히말라야 여행 오길 잘했고, 여행에 오기까지 살아온 내 삶이 참 다행스럽다고 느낄 수 있었어요. 해리라는 사람의 모든 배려가 저의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니, 당신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제가 저희 4명의 현금을 관리하는 총무 담당이었어요. 늘 식사를 마치거나 로찌(숙박 및 식당 등이 있음)에서 결제를 할 때, 해리는 한 번도 빠짐 없이 도와주셨잖아요. 정말 단 한 번도 대충인 적 없이 꼼꼼하게 체크해서 도와주시더라구요. 하나 하나 체크하며 혹시 틀린 것은 없는 지. 그런데 계산서가 틀린 적이 몇 번 있었어요! 그때마다 우리는 발견 못했는데 해리만 포착하고 해결해주셔서, 당신은 정말 진심으로 우리의 여행을 인도해주고 있음을 느꼈어요. 정말 너무 감사해요. 저도 과연 해리처럼, 늘 저의 일을 임할 때 그토록 진심을 다해 책임을 질 수 있을까요? 아니요, 부끄럽지만 꼼수 부리던 지난 순간들을 다시 반성하게 됩니다. 이 편지를 쓴 이후부터는 저의 책임에 대한 가치도 사뭇 깊어지고 싶습니다.
포터 해리, 해리 포터
해리는 포터, 짐을 들어주는 일을 하시는 분이잖아요. 그런데 매일 매순간 저희에게 가이드 역할도 해주셨지요. 이곳은 어디고, 어떤 것인지. 어떤 일들도 있었다든지. 무엇이 유명하고 맛있는 지. 그런데 원래 포터와 가이드는 따로 구성해서 함께 트레킹 한다는 걸 늦게 알게 되었어요. 가이드 분까지 섭외할 돈이 아까워서 해리만 섭외했던 건데, 해리는 그저 우리의 행복한 여정만을 위해서 모든 순간을 보냈더라구요.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서 해리는 포터가 아니라 함께 여행 갔던 친구 같아요. 이곳 여행을 좋아해서 우리 중에 가장 많이 와본 친구. 그저 같이 즐거우러 온 친구.
새로운 꿈
해리 덕분에 저는 앞으로 다양한 세상을 보고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낯선 땅과 거대한 대자연에 휘둘리지 않고 함께 공존할 수 있음을 경험했어요. 해리가 아니었다면 이토록 아름답진 않았을 거예요. 해리가 선물 주셨던 감동과 감사와 존중과 배려들이 잔뜩 쌓여 히말라야를 두려워하지 않고 아름답게 경험할 수 있었어요. 해리가 더 잘 살아가시면 좋겠어요. 몰래 쓰는 이 편지가 나 혼자만의 의미만 되진 않길 바라며, 조금이나마 해리의 삶에 저의 마음이 햇살 한 줌 되어 찾아가길 바라며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감사하고, 보고싶고, 존경합니다.
아름다웠던, 히말라야.
아름다웠던, 청춘낭만.
아름다웠던, 해리.
https://www.instagram.com/trekking_with_hari?igsh=MXJsMGZkbmE1ODg0c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