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나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예민함을 사랑하게된

by 윤방이

얼마 전,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추천받은 책을 또 다른 친구인 내게 잠시 빌려준 것이다. 책을 읽고나서 내 주변에 극도로 예민한 사람들의 삶을 응원하게 되더라. 예민함이라는 것을 감추고만 살던 내가, 예민하다는 것은 그만큼 더 아름답고 소중한 감각임을 느끼고 있었다. 이 책이 나에게 오기까지 거쳤을 친구들의 세상에 감사하며 오늘의 글들을 남겨보련다.



BOOK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_무던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예민한 HSP를 위한 심리학]_최재훈 지음




"왜 이렇게 예민해?"


나는 평소에 "왜 이렇게 착해?"라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다. 그럴 때마다 마음 속에 이상한 죄책감이 밀려온다. 난 당신께서 느낀만큼 그리 착하기만 한 사람은 아닌데, 혹시 다른 나를 마주하고 실망할까 걱정하는 것일까? 이렇게 자주 비관적으로 깊이 빠지지는 않지만, 가끔은 진득하게 의심스러워한다.


돌이켜보니 "왜 이렇게 예민해?"라는 말을 들을까 두려워서 선택했던 행동들이 많았다. 그 적나라한 언어가 내 귓속으로 들어온다면, 곧장 심장으로 통과되어 하루종일 숨 쉬기가 어려워 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랄까.


그래서 깊은 속내를 잘 꺼낼만큼 친해진 사람들은 내가 예민하고 민감하다는 걸 인지하며 지내고, 그렇지 않은 분들 중 많은 이들은 나를 둔감하고 둥글둥글한 사람으로 본다. 아이러니하다. 내가 예민하다는 것을 들키기 두려워하지만, 나를 둥글둥글한 사람으로 본다면 죄책감을 느끼다니. 하나의 단어를 복잡하지 않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나보다. "예민함"과 "나쁜"은 동의어가 아니고, "예민한 성격"과 "까탈스러운 성격" 또한 동의어가 아닌데. 내 머릿 속에 떠다니는 단어들이 나에게 배신 당하는 것이다. 멋대로 이러쿵 저러쿵 판단하는 나는 지금 그 소중한 단어들에게 꽤 미안스럽다.



O 둥글둥글 O

세모 말고, 네모 말고, 동그라미는 자알- 굴러간다.
부드럽게도 굴러간다.
그만큼 유독 작은 돌맹이들을 만나면
덜컹- 덜커덩 거리는 게 동그라미다.
둥글둥글 동그라미.


사람들은 둥글둥글한 사람을 만나면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위로도 받는다. 때론 날카로운 상황 속에 동그라미 사람 덕분에 잠깐일지라도 보드라워진다. 그러나 그 부드러운, 편하다는 감각을 느낀 '타인이 가끔 함부로 대하는' 행동으로 잘 못 출력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만만해 보이나?'라고 의심하기 시작한 동그라미는 울퉁불퉁 상처를 받아 자신이 잘 못 된 것인지 혹은 변해야 하는 건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나는 수많은 동그라미를 좋아한다. 동그라미 끝에 피어난 꽃잎들. 마음을 춤 추게 하는 음표의 동그라미. 나를 따스하게 덮어주는 동그란 단추. 동그라미를 그리며 춤을 추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분. 수많은 동그라미들이 제발, 제발, 타인으로 하여금 그 아름다운 동그라미를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책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_최재훈]를 읽으면서 반가웠던 것이, 타인에게 둔해보이고 착하다는 사람이 의외로 예민할 가능성이 높다는 부분이었다. 관계로 인해 타인에게 발생되는 크고 작은 불편들을 겪게 하기보다 차라리 자신이 배려하고 참는 것이 훨씬 낫다고 판단하므로, 타인에게는 오히려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관계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모쪼록 타인이 최대한 눈치채지 못하게.


나는 평소에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게 참 양심에 찔리고 이질적이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안도감이 생겼다. 내가 예민한 것을 또 다른 가능성으로 마주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딱 이 책이 필요했는데 나의 손에 닿게 되어 무척 감사했다. (또, 진심으로 고마워, 이 책을 빌려준 친구들아.)




내향인VS외향인


어떤 사람에게는 내게 내성적인 모습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활발하고 무대에 서는 일을 하는 것을 의아해한다. MBTI는 ENFJ로 늘 나오는 편이지만, 2년 전 마음고생이 심했을 때는 INFJ였다. 그래 나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활발할 때도, 혹은 지쳐 영혼이 빠져나가 집을 찾아 도망가기도 하는 사람이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너무 좋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아주 필요하다. 이렇게 변덕스러운 스스로가 불편한 나는, 가끔씩 내 소개를 할 때 '저는 변덕스러운 인간이에요. 당신이 언제 불편해질 지 몰라요.'라는 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우물우물 대고 있다. 그래, 나는 아주 예민하다. 사소한 것에 생각이 많아지고, 내가 불편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것이 나를 폄하하는 행위일지라도 당장 선택해버린다.


활발한 모든 사람이 모두 HSP유형인 것은 아니며, 내향인 모두를 HSP라고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즉 많은 사람들을 간편하게 '이것이다'라고 규정 짓는 것은 재미질 수 있는 일이지만 지혜롭진 못한 방식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가 HSP유형이라고 생각하는 게 무척이나 흥미롭고 심지어 행복하고 평온했다.



나는 소리에 민감하다. 방에 어떤 갑작스러운 소리가 들릴 때 같은 방에 있던 사람 중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데, 나만 희번뜩 놀라는 경우가 잦다. 그리고 타인의 기분 변화나 눈치를 빠르게 알아챈다. 타인의 불편함과 변화된 감정에 내게 자주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공감능력이 좋아서 타인과 깊어질 때는 참 좋지만, 때때로 스스로가 원치 않는 감정들이 고스란히 내게 들어와 힘겨운 날들이 생기기 때문에 요즘은 현명하게 도망가는 법을 단련 중이다! (책에서 HSP유형의 사람은 잘 도망가는 것도 현명하다고 일러주더라. 가끔 힘겨워서 회피했던 상황들이 나의 꼬리를 잡으며 또 다른 죄책감에 시달렸던 기억이 존재했는데, 책을 읽으며 아주 큰 위로가 되었다.)

이런 저런 항목들이 내가 HSP유형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마 'HSP유형에 가까운 예민한 자' 정도로 판단될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너무 통쾌하더라. 속에 있는 예민한 기질들이 찝찝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던 내가 이제는 꽤 자랑스러울 정도로 나의 예민함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언젠가 동료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윤방이 시는, 윤방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같애. 윤방이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게 너무 좋아. 계속 시 써줘." 나는 이 말을 심장으로 들었다. 꿈이 생겼을 때 설레이는 박동과 비슷하게 나를 감동시킨 말이다. 나는 '나의 방식'을 진정으로 존중해주고 싶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 내가 표현하는 방식, 내가 버티는 방식, 내가 느끼는 방식, 내가 선택하는 방식... 그렇게 나의 빛과 어둠을 가리지 않고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인정해주는 것이 늘어날수록 '스스로를 사랑하는 인간'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로, 사랑을 한다.



2025.05.18

윤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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